그땐 몰랐던 당신의 따듯함
안녕하세요, 수지씨!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세브란스 소아암 병원에서 잠시 뵈었던 가은이 아빠예요.
가은이 2번째 항암치료가 하필 크리스마스 시즌에 진행되어 너무 속상하고 우울했었는데, 저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셨죠! 그런데 그 당시 너무 많은 분들이 한번에 병실을 찾아주셔, 제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렸던 것 같아 계속 마음에 걸려요.
사실 저는 그때가 너무나 힘든 시기였기에, 처음 뵙는 분들이 갑자기 좁은 병실에 모여 가은이를 응원해 주시는 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불편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서 연예인과 함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는 게, 추억보다는 오히려 홍보를 위한 수단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기분이 아주 묘했던 것 같아요.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저 자신을 통해 알게 되네요)
그날 아침 수지씨가 올 거라는 소식이 암병동에 돌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연예인이 연례 행사하는 것처럼 오나보네. 어차피 '우리 가은이는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라며 저도 모르게 참 방어적이고 부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 시기에 제가 우리 딸이 아프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 가족의 모습들이 타인에게 비치는 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연히 며칠 전에, 과거 수지 씨가 유퀴즈 나온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야 왜 그날 병원에 수지씨가 오셨는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건 바로 소아암을 가진 아이들과 부모들의 아픔을 충분히 아시기에 조금이라도 따듯함과 위로를 전달해 주시고 싶었다는 걸! 그런 따듯한 진심도 모르고, 제 마음은 한 명의 피해자가 되어 한없이 방어적이었네요.
가은이가 아프고 나서, 저도 이제는 더 넓은 시각들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것들에 관해서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수지씨가 정말 바쁜 와중에, 그리고 처음 보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같이 웃고 추억을 만들어 주신 거잖아요. 연말이면 각종 행사로 더 바쁜 시기에 에너지가 부족하셨을 텐데, 처음 보는 가은이에게 전달해 주신 따듯함이 이제 와서 보니 생각보다 더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었네요.
가은이가 앞으로 조금만 더 크면, 본인이 가장 아프고 힘들 때 세상에서 얼마나 따듯한 에너지로 응원해 줬는지 알게 될 거 같아요! 3살 이전에 소아암 치료를 받은 친구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기억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한다네요. 아무튼 때가 오면 꼭 제가 얘기해 줄게요.
"예쁜 수지 이모가 가은이 이름 하나 하나 다 불러가며, 웃을 때까지 맘껏 웃겨줬다고"
저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그리고 소아암으로 힘들어하는 환아와 부모들에게 따듯함을 전해 주셔 너무 감사드려요.
즐거움을 드리는 게 너무 기쁘다는 수지 씨처럼, 저도 제가 이 세상에 받은 따듯함들을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
그때 투병하는 아이들을 위해 보내주신 진심을 몰라보고 마음 한켠에서는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봐서 미안해요. 미안한 만큼 이제부터 더 수지씨를 응원할 테니 한번 봐주시고요. 그리고 항상 건강이 최고라는 거 수지씨도 잊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