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시련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청년-남편-아빠'의 사이클에 들어와 보니, 어느새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은 잊은 채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항상 쫓겨 살게 된 것 같다. 그래도 행복을 포기할 수 있으랴.. 그래서 어느 순간 연도별 큰 사건들이라도 기억하며 행복을 느끼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특히, 최근 2년은 아주 스페셜했다.
- 23년 : 우리 소중한 딸이 처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온 해
- 24년 : 고생한 엄마가 복직하고, 우리 딸도 첫 친구 사귄 해
가은이에게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고, 와이프는 엄마가 아닌 본인의 삶의 활기가 돌아왔다. 24년, 그해는 우리 가족에게 ‘푸른 용이 뻗어나가는 해’ 같았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분명 달콤했다.
그런데,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 한 줄기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땐 몰랐다. 가을 빛이 짙어진 11월의 한 저녁.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마친 아내와 통화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가은이 왼쪽 눈이, 뭔가 이상하다고 얼른 병원 가보래.”
그날 어린이집에서 딸 아이를 눕히려다 형광등 불빛에 반사된 눈에서, 하얗게 빛나는 물방울 같은 게 보였단다. 일으켜 세우면 사라졌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다시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처음엔 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아내는 증상을 검색해 본 뒤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망막모세포종’. 망막 시신경 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 소아암 중 하나라는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병.
설마, 설마 하며 부정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직접 가은이의 눈을 카메라로 찍어보며 확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터넷 속 그 증상과 우리 딸이 너무나도 일치함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갑자기 사진만 수차례 찍혔던 가은이가 잠든 후, 우리 부부는 드디어 서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아내가 그제야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오빠! 나 너무 무서워!”
솔직히 나도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냉정해야 했다고 생각했기에 "괜찮아"를 외치며, 침착한 남편인척 하며 일단 그녀를 위로해 주며 잠이 들었다. 아내는 교사 직업상 출근을 해야 했고, 나는 급하게 연차를 내고 병원을 알아봤다. 첫 방문은 동네 소아과였다.
“아버님, 암은 그렇게 쉽게 오는 병 아니에요. 걱정 마시고, 안과 먼저 가보세요.”
서울엔 안과는 많았다, 특히 강남에! 하지만 소아 진료가 되는 안과는 드물었다. 결국 폭풍검색 끝에 분당까지 가서 겨우 진료를 받았고 의사는 무겁게 말했다.
“저도 동공에 하얀색 점은 처음 봅니다. 진심으로, 큰 병이 아니길 바랍니다”
나는 들은 그대로 아내에게 전달했고, 아내는 곧바로 대학병원 진료를 문의하기 시작했다. 의료파업 여파로 병원 예약조차 쉽지 않다고 언론에 도배된 상황. 바로 진료를 보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우린 세브란스 병원 진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24년 11월 5일,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기력함과 공포를 느낀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제 막 두 돌도 안 된 내 딸에게 ‘암’이라는 단어가 내려진 날. 의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심장은 ‘쿵’ 하고 꺼졌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혹여나 내 슬픔이, 가은이에게 ‘죄책감’이 될까 봐. 아빠를 슬프게 했다는 감정, 그 무게를 조금도 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가은이는 잠이 들었다. 비로소 나에게 울 자유가 허락된 시간, 룸미러로 다시 한번 얼굴을 확인하고, 빨간불 신호 앞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오열했다.
장마처럼 쏟아지던 눈물. 그제야 실감 났다. 아, 세상이 진짜 무너질 수 있구나. 집에 와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진실. 수업을 마치고 내 전화를 받았던 아내도 교무실 문을 잠그고 오열했다고 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 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딸이 이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맞다는 걸. 의사를 통해 통보된 그날의 확진은 단지, ‘부정’을 ‘현실’로 바꿔놓은 선언이었을 뿐.
그날 밤, 가은이를 재우고 우리 부부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그리고 내 사랑 와이프가 나를 더 울렸다. “혼자 병원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자기는 마음껏 울 수라도 있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위로해 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의 부부 갈등이, 직장 스트레스가, 육아 피로가.. 너무나도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행복’은 단 한순간 눈앞에서 와장창 부서졌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분노가 치솟았고, 온몸으로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