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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Oct 21. 2021

9. 헬로우 하우 아 유

각기 각색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여행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반복된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주로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면 질문과 답들이 비슷해지는데:


"Hi, where are you from?"

안녕, 어디서 왔어?

"Where did you travel?"

어디 어디 여행하고 오는 거야?

"How long are you traveling for?"

얼마나 오래 여행했어?

"Bye."

잘 지내.


이런 대화가 주 흐름이다.


계속해서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미건조한 만남들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한번 만났던 친구들을 다른 나라에서 또 만나게 돼서 같이 밥 먹는 상황도 생기고, 또 지금까지 연락을 계속해서 하는 친구들도 생긴다. 그 많은 인연들 중에서도 기억에 제일 많이 남는 몇 분의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10년째 세계여행 중인 50대 부부 


이 부부는 일을 하면서 전 세계를 10년째 여행 중인 일본 부부였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꿰뚫은 사람들로, 아내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백엔드 담당을 하고 있고 남편은 프런트엔드 디자이너로 여행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프로젝트를 하나 맡아 같이 웹사이트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였다.


특이하게도 아내분은 광석에도 관심이 많아 전 세계를 누비며 각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광석 시장에 가서 원석들을 사 악세사리로 만들기도 했다. 요즘같이 연결이 잘 된 세상에서 만든 악세사리를 인스타그램으로도 팔고 일본 편집샵에도 가끔 소포로 보내 팔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없어서 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부부가 크게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해 그해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정해서 그렇게 3월은 아프리카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 가고 6월은 유럽에 있는 친구를, 6개월 동안 호주에서 지프를 하나 빌려 사막에서 캠핑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페루에서 좋은 인연으로 닿아 나중에 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한 마을인 우수아이아에서 만났었다.  그때 거기서 제일 유명한 킹크랩을 같이 나눠먹었는데 그렇게 빨갛고 단 게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남극 쪽은 심해가 깊고 온도가 낮아 게들이 더 맛있다고 한다. 서로 언어가 달라 손짓 발짓을 해가면 의사소통을 했지만 자유와 장기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일 부러웠던 건 부부 둘이 뜻이 맞고 소망이 같아 너무 재밌게 잘 살고 있었다. 나도 언젠간 이런 환상의 콤비가 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육해로만 5년째 여행 중인 청년


이 청년은 진짜 대단한 게 일본에서부터 중국을 통해 유럽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아프리카까지 가서 요트를 얻어 타 브라질로 들어와 남미를 여행 중에 만나게 된 사람이다.


이렇게 육해로만 지난 5년간 갔던 나라들을 나열하면 아마 이 청년이 유엔 대표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더 대단한 건 일본에서 요리사라고 했는데 여행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그 나라의 한 동네 식당에서 일을 얻어 그렇게 돈을 조금 모아서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안될 수도 있는데 식당에서 고용해주냐 물어봤었는데, 요리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 했다. 언어는 있으면 좋은 장식품일 뿐 식당 뒤 부엌에서는 요리로 소통한다.


이렇게 인생을 마치 통달한듯한 청년에게도 힘든 게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를 걸려 죽을뻔한 것도 아니요, 모로코에서 브라질까지 대서양을 피라미 같은 요트를 타고 항해한 고통의 한 달도 아니었다. 요트 경험을 잠깐 얘기하자면, 한 달 동안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이렇게 요트에서 죽나 싶었다고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육지가 안 보이는 날들이 일주일을 넘어가자 알지 못할 두려움과 한 달 동안 음식을 배분해서 먹어야 되는 불안감이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저 멀리서 땅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 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고 하는데, 옛날 고전 책에만 나오는 항해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쨌든 그렇게 칠흑 같은 위험한 여정을 한 청년인데 이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다는 건 뭐였을까?


What was most difficult for you?

제일 힘든 점이 뭐였어?


Loneliness.

외로움. 


정말 인간의 깊은 본능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한테도 제일 어려운 게 외로움이었다니. 사람과 수없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계속해서 이동을 홀로 해야 되는 삶 속에서 제일 그리웠던 건 함께 할 사람이었다. 


지금 세계 여행을 다시 하라고 하면 함께 할 동반자를 찾아 나설 거 같다고 했다.


그게 정답인가. 우린 서로가 필요한 존재인가.


유쾌한 60대 러시아 아줌마 


페루 쿠스코에서 만난 아줌마로 계단에서 다리를 헛디뎌 인대가 늘어나 잠깐 쿠스코에서 치료하고 있던 때에 만났었다. 6개월째 세계여행 중이라고 했다. 


60살이 넘었다고 하셨는데 말하는 것과 행동은 누구보다도 청춘이었다.  자기가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서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 산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남편.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에 살던 아줌마는 어느 날 집에 왔는데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편을 보고 머리를 맞은듯한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고 했다.


그 당시 유방암을 진단받아 치료를 받고 있던 아줌마는 내 인생의 암덩어리는 남편이었구나, 내 평생을 저 사람 위해서 희생을 했는데, 돌아온 건 병과 외로움뿐이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유방암을 악착같이 이겨내고 이혼을 해 아파트를 팔아 세계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60대지만 누 구보다고 트레킹을 좋아했고 혼자서 너무 잘 다니셔서 우리보다 더 젊고 건강하게 느껴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희망을 주셨던 분이다.


한국어가 좋은 브라질 아저씨 


디지털 노마드의 고뇌 편에서 여행 중에 인터넷으로 일을 하는데 어려움 등을 얘기한 적이 있다. 나중에 칠레를 통과하면 고정 수입이 하나 생겨서 좋아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인터넷으로 한국말을 가르치며 돈을 버는 방법이었다. 인터넷에 인지도가 없던 나는 좋은 리뷰를 위해 한 시간 수업당 8,000원이라는 돈을 받으며 그렇게 학생들을 늘려나갔다. 


가르치던 학생 중에 너무 즐겁게 살고 있는 브라질 분이 있었는데 아내가 한국 브라질 교포여서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럼 왜 한국어를 아내한테 배우지 않냐 했더니 운전과 마찬가지로 가족끼리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가르치기만 하면 아내분이 답답해서 화낸다고. 가족끼리는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도 엄마가 컴퓨터 관련 질문을 하면 상냥하게 하자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화날 때가 있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 왜 가족한테 유독 그러는지 누가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분은 포루트갈어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번다고 했는데, 아침에만 가르치고 먹고살 수 있는 정도로만 번다고 했다. 그럼 오후에도 일할 수 있는데 왜 일을 더 안 하냐 물어봤더니, 오후에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그리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를 배우고 공부하면서 이렇게 나랑 대화하는 거라고 했다.


그 순간 아 내가 너무 기계처럼 일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 길러졌구나 느껴졌던 때이다.  먹고살 수 있는 정도로만 벌고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데, 끊임없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일과 효율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채우고 마치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처럼 계속해서 채우려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던 때이다.


내가 진정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하루를 어떻게 채우고 싶은지, 뭐를 즐거워하는지 시야를 넓혀줬던 대화이다.


정년퇴직을 한 60대 한국 아저씨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 떨릴 때 가는 게 아니야."


사방 천지가 자연밖에 없었던 칠레 W트레킹에서 만났던 60대 한국분이다. 


4박 5일 동안 텐트를 짊어지고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돌산부터 설산 그리고 빙하까지 볼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관과 함께는 루트이다. 심지어 시냇물은 빙하와 위에 설산에서 내려오는 1급 수라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다.


마지막 날에 드디어 유료 캠핑장을 이용했는데 비수기 때 유일하게 열려있던 곳이자 유일하게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뜨뜻한 숙소 안에는 반갑게도 한국분이 계셨는데 한평생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세계여행 중이라고 하셨다. 근데 한쪽 다리 무릎 관절이 너무 아파와서 트레킹을 시작해야 되는데 좀 나아질 때까지 캠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시간 안에 세계여행을 하면서 쓰고 있던 책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셨다. 다리가 아픈 게 속상하셨는지 이 말씀을 하셨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 떨릴 때 가는 게 아니야."


"지금 나이대에 여행하는 게 어떻게 다르신 거 같으세요?"


나이대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껴지는 거 같다고 했다. 그래도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생각보다 몸이 안 따라주니까 조금 더 천천히 가야 되는 것도 있고 조심스럽게 가야 되는 것도 있고 못 가는 곳도 생기는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 어느 나이 때던 어떤 일을 하던 다른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후회나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분을 보며 어떤 나이던, 어떤 일을 했던, 여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늦은 때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좀 더 움직일 수 있을 때 많은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했다.


세계 음식을 파는 식당을 세우는 게 꿈인 부부


이 부부를 보면서 다음에 세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갖고 해야 되겠다 결심했던 순간이다. 이 부부는 전 세계를 1년 동안 여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나라가 있으면 잠시 머물러 거기의 대표적 요리를 배운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들이 제일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메뉴로 모아 전 세계 음식을 파는 식당을 세우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렇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하니 어떻게 보면 슬럼프가 생길 수 있는 장기여행의 원동력도 되고 성취감도 느껴지는 여정을 만들어가는 거 같았다.  


심지어 4살짜리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사실 아이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재밌게 잘 여행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겠구나 느꼈다.


아이와 여행하면서 힘든 점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사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성애가 생겨서 그런지 더 친절하게 대해줄 때도 많고 어느 나라이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들 자리를 내줬다고 한다. 


더욱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게 솔깃해졌다. 


아이가 커서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꼬마들이 너무 잘 노는 걸 보니, 아이가 있는 게 항상 희생이라고 느껴졌던 나는,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또 한 번 긍정적인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떻게든 더 넓은 세상을 보러 갈 수 있다는 거다. 간절히 원하면 할 수 있다는 건 진부한 얘기지만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도 엄청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세계 여행을 하는 모습들을 보며 불가능은 없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선택에 따라 다른 욕심을 버려야 될 때도 있다. 그래도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도 되고, 지금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도 되는 거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같이 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다.


어렸을 때 가봤어야지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시간이 있고 충분히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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