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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Oct 11. 2021

8. 고생 끝에는 - 2

힘들어야지만 느낄 수 있는 행복


이미 어두컴컴한 밤이다. 심지어 여긴 가로등도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기찻길을 따라 또다시 3시간을 걸어야 되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표지판 하나.


Camino a machupicchu.

마추픽추로 가는 길.


기찻길에는 불이 하나도 없어 우리와 유럽 여행자들 다 같이 핸드폰으로 빛을 모았다. 가다가 바테리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어 핸드폰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추픽추 가는 여정이 무슨 쥬만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심지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다들 비수기 때 여행하지 말라는가보다. 비수기는 우기철을 얘기하는데 이때 비가 많이 내려 산사태 등 도로 자체가 미끄러워 사고가 많이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비수기의 뜻을 몸으로 격렬하게 느끼고 간다. 


그렇게 추적추적 한참을 걷는데 저 앞 어두움 속에서 엄청난 폭포 같은 소리가 난다. 다가가 보니 기찻길 다리가 하나가 나온다. 그 밑으로는 칠흑 같은 매서운 강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띄엄띄엄 놓인 기찻길 다리를 징검다리처럼 하나하나 조심히 짚으며 밑에 있는 검정 세상에 빠지지 않길 기도 하며 건넜다.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다리 옆에 보행길이 따로 붙어있었는데 너무 어두운 나머지 바보 같이 기차가 다니는 그 길을 건넌 거다. 어린 건지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기찻길 사이로 넘어져 강으로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는데 그 대단했던 심장이 지금 보니 감탄스럽다. 왜 지금은 두려움만 많아진 걸까.


그렇게 한 관문을 넘어 좀 더 가다 보니 이번에는 터널이 나왔다. 지나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차 소리가 난다. 환장하겠네. 저녁에도 기차가 운행하는데 아구아 깔리엔떼스 마을로 물품을 가져오는 기차라고 나중에 알게 됐다. 터널 끝으로 전력 질주를 해 서둘러 옆으로 피했다. 코가 낮아서 망정이지 좀만 높았다면 베어졌을 듯한 거리를 남겨두고 기차가 지나갔다. 비도 오고 기차도 이렇게 가깝게 보고 운치가 넘는 밤이다.


그렇게 오후 11시. 드디어. 드디어 입성한 아구아 깔리엔떼스 마을!


비수기가 좋은 점이 하나 있다. 호스텔 어디를 들어가던 방들이 텅텅 비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싸게 묵을 수 있다. 한 방에 40페소, 만원으로 3명의 친구가 한 방을 함께 썼다.


아구아 깔리엔떼스는 뜨거운 물이라는 스페인어로 이 마을의 이름인 이유가 있는데. 여기에는 페루의 작은 마을치고 엄청 잘 되어 있는 온천이 있다. 그래서 내일 가서 샤워도 하고 몸도 적실 계획으로 호스텔에서는 뻗어버렸다. 새벽에 마추픽추가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마추픽추 올라가는 날! 아구아 깔리엔떼스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입구까지 가도 되는데 무슨 돈을 아끼겠다고 우린 걸어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이쯤 되면 고생을 좋아하는 건가 의심이 된다.


오전 6시에 시작한 하이킹. 마을에서 마추픽추까지 한 2시간 걸린다. 와이나 픽추 입장은 정해진 시간에 가야 되는데 우린 아침 10시에 예약을 했기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하이킹을 시작한 거다. 


그렇게 시작한 산행의 지옥. 마추픽추 가는 지도를 보면 걸어서 가는 길이 지그재그로 한 20번 넘게 꺾이면서 올라간다. 번개 모양이다. 머리를 번개에 맞았었나 보다. 왜 사서 고생을 했는지. 심지어 해발 2,500 미터라 숨이 턱턱 막혔다. 한 구간 올라가다 5분 헉헉하면서 쉬고. 또 한 구간 올라가서 뻗고. 


그렇게 9시에 도착을 했다. 드디어 입구다. 입구가 보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까지 어려웠어야 됐나.


입구를 넘어 좀 더 걸었더니 보인다.

안개까지 그리워져 해리포터 같은 신비로움을 넘어 보이는 마추픽추의 전경.

이거 하나 보려고 이렇게 멀리 힘들게 왔네.

거기서 느낀 감동은 차마 말로 설명을 못한다.


"와..."


그리고 든 생각은 이렇게 고생을 안 하고 왔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분명한 건 기차를 타고 쉽게 왔다면 와 또 하나의 유적지다 하고 끝났을 거 같다. 

이 여정을 생각하면 그 감동이 아직도 마음에서 끓어오른다. 인생이 이럴까 싶다. 내가 노력을 하고 고생을 한 맛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만의 내가 오감으로 체험한 경험의 소중함.


그 이틀 동안의 생고생 끝에 아구아 깔리엔떼스 마을로 돌아와 뜨뜻한 온천에서 몸을 풀었을 때의 쾌감이란. 인간은 고생을 해야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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