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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Sep 29. 2021

6. 나는야 집 옮기는 소라게

세어보니 1년 넘게 어느덧 숙소 54개

1년 2개월 넘게 남미를 여행하면서 호스텔, 게스트 하우스, 호텔, 텐트, 에어비엔비 등 정말 모든 형태의 숙박 시설에서 지낸 거 같다.


남미의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가면 항상 보자마자 물어보는 게 있다.

"Solo?" 한 명? 

"Matrimonial?" 두 명?

사실 matrimonial은 영어로도 있는 단어인데 '결혼의' 뜻으로 숙소에서는 더블룸으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럼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있다.

"Si quiero vivar una semana mas, puedes mas barato?"

직역하면 일주일 넘게 살고 싶으면 더 싸게 가능? 이런 느낌이다.


문법적으로 엉망진창이지만 뜻은 항상 전달되는 듯했다. Barato는 '싸다'라는 스페인어로 이 마법의 단어 하나로만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거 같다.


사실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만약에 1주일 넘게 있고 싶다면 좀 더 싸게 해 줄 수 있니?"

이다.


대부분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의 대답은

"sí!" 예스!


아무래도 오래 머물면 정기적으로 방값이 들어와서 장기 여행자들을 선호하는 거 같다. 막상 숙소에서 이렇게 더 싸게 네고가 가능하다 보니 여행하면서 우리의 레퍼토리는 우선 숙소가 많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를 여행 책자나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발품을 판다. 오래 머물 숙소일 수도 있으니 침실도 보여달라고 하고 부엌도 봐보고 화장실 물도 한번 내려보고 그다음에 네고를 한다. 마치 이사만 50번 넘게 한 느낌이다. 


가끔 도착했는데 마음에 안 드는 숙소만 있을 때가 있다. 숙소를 다섯 개 넘게 돌아다니다 보면 몸도 지치고 신경도 날카로워져서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도 원망하게 되고 나 자신도 원망하게 된다. 그냥 돈이 넘치면 여기서 이렇게 생고생 안 하고 내 앞에 보이는 저 국기 10개가 펄럭거리는데 호텔에 바로 들어가서 자는 건데. 그냥 돌아다녀도 힘든데 내 등에는 60리터짜리 배낭이 꽉꽉 차서 어깨를 짓누르는데 두 시간 넘게 돌아다니다 보면 입도 마음도 꾹 다물게 된다. 그럼 그럴 때 아무 데나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가방을 맡겨놓고 주변을 수색할 때도 있다. 쓰다 보니 사서 고생을 하는 스타일인가 회의감이 든다.


그렇게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천천히 지나면서 평균 1인당 매일 5,000-7,000원 미만으로 숙박비를 냈다. 여기 안데스 산맥 나라들은 워낙 물가가 싼 나라들이어서 숙소들도 싼 편이었는데, 장기 여행자다 보니 많이 네고가 가능했던 것도 있다.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가면 숙박비가 1인당 배가 되긴 한다.


그렇게 계속 떠돌아다니는 게 지칠 때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가 오래 머물기에 너무 좋아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에어비엔비를 따로 예약했다. 한 달에 $600 하는 곳이었는데 거실도 있고 부엌도 있고 테라스도 있는 매우 작은 집이었는데도 처음으로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아닌 내 집 같은 공간에서 머무니 천국 같았다. 그렇세 산티아고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됐다. 근처에는 한인식당이 가득한 한인 타운도 있고 아주 길게 뻗친 공원도 있었는데 처음으로 남미에서 만약에 정착할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여기다 라고 느꼈던 도시이다.




우리 같은 디지털 노마드한테는 숙소를 알아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인터넷이긴 하지만 그다음으로 제일 크게 보는 게 있다.


화장실과 부엌. 

화장실이 깨끗한지, 부엌은 장기 투숙 때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갖춰져 있는지를 본다.


숙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라별로 숙소 취향이 갈린다. 심지어 여행 책자들을 보면 어떤 나라 사람이 저자인지에 따라 다들 소개해주는 숙소들이 다르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서양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은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 사람들이 선호하는 숙소와 다르다는 점이다.


서양 사람들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 파티가 있는지, 해피아워가 있는지, 액티비티가 많은지 보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서양 청년들의 얘기다. 아마 중년으로 넘어가면 다들 좀 더 비싼 호텔에 머무는 거 같다. 어쨌든 서양인을 위한 책자들은 이런 곳을 좀 더 많이 소개해주는 거 같다.


동양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건 첫째 깨끗함, 둘째 깨끗함, 셋째 깨끗함인 거 같다. 특히 한국 여행 책자나 일본 여행 책자들을 보고 숙소를 고르면 대부분 깨끗함이 보장이 된다. 특히 화장실이 깨끗하다. 그다음으로 깨끗한 부엌 그리고 빵빵한 와이파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다. 아 그리고 장기간 여행하다 보면 한국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은 아침밥을 한식으로 줘서 가끔 한국 밥이 그리울 때 이런 곳을 애용하는 여행자들도 많이 본다.


동양 책자에서 호스텔을 소개해줬다 하면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다.

서양 책자에서 호스텔을 소개해줬다 하면 일반화지만 백 프로 시끄러운 파티가 있는 곳이다.




동양인들이 많은 호스텔은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깨끗하다. 심지어 호스텔 주인도 이를 아는 거 같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에 도착했을 때 다들 구시가지는 위험하니 신시가지로 가라고 했다. 구시가지는 을지로 느낌이면 신시가지는 강남 같은 느낌이다. 신시가지는 방들도 비싸고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구시가지 한번 가보자 해서 갔는데 찾고 있던 그 감성이었다. 구시가지는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인간미가 느껴지는 곳이다. 전통 시장도 많고, 숙소도 싸고, 점심 식사들이 세트로 나오는데, 국, 밥, 고기, 주스 구성으로 $1.5불 밖에 안 하는 곳이다. 돈 없는 여행자한테는 정말 꿀 같은 동네이다.


구시가지의 싼 호스텔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하루에 화장실까지 딸린 방이 $12불, 12,000원 정도 하는 곳이었다. 여기 주인인 호세 아저씨는 한국사람과 일본 사람이 너무 좋다고 우리를 볼 때마다 미 꼬레아 미 꼬레아 했었었다. 한국 사람들이 좋은 이유는 시끄럽지 않고, 배려가 있으며 돈도 꼬박 내서라고 했다. 사실 거기 있는 동안 아르헨티나와 다들 서양 여행자들이 밤만 되면 드럼 연습하고 저녁 내내 술 마시고 노래 불러서 호세 아저씨가 화난 적이 많았다. 심지어 얼마나 우리가 좋았으면 나중에 춥다고 하니까 자기 집에서 가져왔다고 엄청 보들보들한 극세사 이불을 주시기도 했다.


일반화일 수 있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조용하고 깨끗하다.


이건 살짝 다른 말이지만 미국 대학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이 나보고 OCD (강박장애) 있냐고 했던 때가 있다. 이유는 방에 들어오기 전에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다들 왜렇게 밖에서 뒹굴던 옷을 입은 채로 내 침대로 직행하는지. 특히 얼굴 대고 자는 베개에 하루 종일 입은 청바지로 앉는 친구들도 있어 "아악! 침대에 앉지 마!!" 해서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이렇게 깔끔 떠는 친구 못 봤다고 얘기도 들었는데 여기서 웃긴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는 난 더러운 친구로 불린다.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방도 항상 지저분해서 치우고 좀 살아라 듣던 아이였는데 나라 하나 바뀌었더니 사람이 갑자기 달라졌다. 


편견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한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깨끗하긴 한 거 같다. 에콰도르나 페루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편이다. 거기에 있는 숙소들 가면 매일 같이 계속 쓸고 닦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어쨌든 1년 동안 50개 넘는 숙소에서 지내다 보니 어딘가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평생 없던 집에 대한 갈망도 처음으로 느꼈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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