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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Sep 27. 2021

5. 디지털 노마드의 똥줄 타기

꿈같은 라이프스타일의 고충

아마 이 책을 처음부터 보신 분이라면 애초의 계획이 남미를 6개월 동안 여행 하기인 걸 기억하실 거다. 근데 이 6개월이 1년 넘는 여정으로 길어졌는데, 우선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만 남미 대륙 전체를 여행을 했고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맘껏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걸렸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 보니 더 적은 돈으로 여행이 가능한 것도 알게 되어서 더 길어졌고,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일하면서 여행하는 게 가능하구나 알게 되어서 1년 넘는 기간을 남미에서 보내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여행이 디지털 노마드의 길이 된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인터넷에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했다. 막상 찾아보면 정말 인터넷에는 별게 다 있다. 팟캐스트를 듣고 대본 고대로 받아 적어서 대본화 하기. 화상으로 언어 가르치기. 구글의 하청 업체를 위해 인터넷에 있는 정보 팩트체킹 하기.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먹거리에 대해서 쓰기. 한국과 미국에서 롱디를 하고 있는 연인의 편지를 번역하기. 학교들 가상 투어에 필요한 목소리 녹음하기 (실제로 고성능 마이크를 하나 들고 다녔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많은 세상이다. 요즘 같이 특히 SNS와 영상 콘텐츠가 활발한 시대에서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건 한층 더 쉬워진 것 같기도 하다. SNS 마케터, 유튜브 편집자, 영상 자막 다는 사람, 웹 디자이너, 비대면 고객지원 등 세상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디지털 노마드로 얘기하자면 사실 쉽지 만은 아닌 삶인 거 같다. 어떤 직업이던 마찬가지이겠지만 디지털 노마드도 어떻게 보면 개인사업자라 항상 일을 찾아 나서야 되고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사는 것 같다. 만약에 어떤 기업과 거의 평생 계약을 맺어서 꾸준히 일이 들어온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특히 entry-level 같은 입문 일을 할 경우에 조금 더 불안한 거 같다.


아무래도 그때 갓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라 했던 일들이 다 최저시급의 일들이었다. 처음에는 번역이나 블로그 쓰기 등의 일들을 인터넷으로 했는데 일이 있다가 끊기다가 해서 불안할 때가 많았다. 나중에 칠레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하나 찾았는데 바로 인터넷으로 한국말 가르치기였다. 그렇게 한 달에 꾸준히 50만 원 이상은 벌었다. 남미에서 50만 원이라는 고정 수입이 있는 게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떤 직업군이던 같은 말을 하겠지만 어딜 가나 전문직이 먹히는 것 같다. 요즘 디지털 세상에 좀 더 높은 노동 가치의 스킬이 있다면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장기 여행을 한다면 고급 기술을 하나 배우던지 뭔가 자고 있어도 돈이 생기는 그런 일을 꾸려놓고 가고 싶다. 코딩 같은 기술이 있었다면 여행하는데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실제로 같이 여행을 한 친구는 인터넷으로 팩트체킹 하는 일을 찾았는데, 위키 같은 웹사이트의 정보가 진짜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한 달에 $2000불 넘는 돈을 받았다. 흠이라면 매주 40시간을 일해야 돼서 이건 일하는 건지 여행을 하는 건지였지만 그래도 스케줄의 유동성이 있어 새벽에 일하고 하루 종일 돌아다닐 수 있는 루틴을 터득했다.


근데 디지털 노마드한테 숙소를 찾으면서 제일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


인터넷이 빵빵 터지는 한국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해외로 나가면 와 한국이 대단한 나라였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심지어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미국이나 유럽도 외지만 나가면 데이터가 안 터지는 경우가 수다한데 남미라니.


남미의 대부분 대도시는 그래도 인터넷 상황이 좋지만 제일 힘들었던 나라는 볼리비아였다. 진짜 볼리비아는 수도와 대도시 다 떠나서 그냥 나라 전체가 인터넷이 잘 안 된다. 제일 평화로워 오래 있고 싶었던 외지의 마을일수록 더 안 터져서 속상했다. 처음에는 호스텔 문제인 줄 알고 계속 돌아다녔는데 알고 보니 도시 전체 문제였고 나중에는 급히 도시까지 옮겨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했었다.


특히 마감 날짜가 정해진 일일수록 있는 모든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결국 우유니에서 터졌다. 세상의 거울이란 멋진 곳에서 하루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하루만 머무는 우유니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최고의 사진을 위해서 일주일로 여정을 늘리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하늘에서 걷는 거 같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날씨와 물의 고임도 중요하기 때문에 똑같은 투어를 몇 번이나 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나도 욕심이 나서 그러고 싶었는데 우선 인터넷도 인터넷이지만 처음으로 계획을 좀 해라 인간아 라고 내 될 대로 돼라 성향을 심히 혼내고 싶었던 때이다.


소금 사막 같은 경우에는 그 거울 같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서 우기와 건기를 잘 맞춰서 가야 한다. 우기는 12월부터 4월 사이이다. 우리는 어쩜 딱 건기에 맞춰 5월에 갔다. 물론 건기에 가면 또 다른 광경이 나온다. 차로 달려도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새하얀 벌집 세상이 펼쳐진다. 투어 아저씨 덕분에 물이 조금이라도 고인 곳으로 가서 원하던 사진을 찍었지만 이래서 사람이 없었구나 느끼는 건기였다. 물론 이게 장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투어를 갔다 오자 마자 저녁에 일을 해서 마감을 맞춰야 됐는데 도시 전체에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여기 호스텔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진짜 생쇼를 한 끝에 간신히 일을 하루 미룰 수 있었지만 바로 새벽에 버스를 타고 칠레로 넘어가야 했다.


우유니 근처에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는 패키지들이 많은데 우유니 소금 사막에 지어진 소금 호텔에서 머무는 패키지도 있고 근처에 플라밍고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붉은 호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똥줄 타는 것만 아니었으면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다. 아 우유니 갈 때 꼭 세상에서 제일 밝은 옷을 가져가면 좋겠다. 하얀 세상과 대비돼 사진이 기가 막히게 나온다.


여행하면서 돈 벌 수 있다고에 많은 사람들이 솔깃할 거다. 근데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쉬운 일은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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