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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여행 Oct 24. 2021

Epilogue


예전에 블로그를 보면서 세계 여행을 하던 분이 쓴 글의 제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생 전환점은 개뿔"


남미에서의 1년 2개월 넘는 여행 끝에 다시 온 한국. 바뀐 점은 딱히 없다. 경쟁사회에서 다시 한번 스펙을 쌓고, 취업을 준비하고 돈을 벌어야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어있다.


하지만 30대가 돼서 돌아봤을 때 제일 잘한 선택은 뭐냐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 여행이다. 아무 생각 없을 때, 두려움이 채 형성되지 않았을 나이에 갔던 장기간 여행이 나한테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줬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80살 할머니가 돼서도 오 20대에는 이 할미가 남미를 버스 타고 다 돌아봤지. 손주들한테 얼마나 멋진 할머니가 될까.


여행을 갔다 와서 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여행작가가 된 것도 아니며, 그 경력으로 엄청난 걸 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전혀 연관이 없는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깨달은 점이 있다.

이 경험은 거의 10년 후인 미래에 나한테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와 원동력이 된다.




다시 사회로 돌아와 나는 두려웠다.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취직을 못하면 어쩌지. 대학 졸업하고 너무나 긴 기간 동안 이력서가 비어있는데. 근데 그건 내 걱정뿐이었다. 물론 여기저기 똥을 많이 밟기도 했지만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20대를 거쳐 눈 깜짝할 사이에 30대가 됐다. 여행 후에 수많은 직장들을 거쳐 다양한 사회 문제들도 정면으로 부딪혔다. 슬럼프도 왔었고, 커리어 변화도 여러 번 있었다. 고민과 혼돈의 20대 중후반을 보내면서 어렸을 때 내가 뭐를 좋아했었지? 나는 뭐를 평생 업으로 삼고 싶은 거지? 평생 업이라는 게 있는 걸까? 나의 열정은 무엇인가? 알면서 피하는 걸까? 의 폭탄 같은 질문들을 안고 정말 열심히 고군분투하게 살았다.


직장 면접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졸업하고 나서 일 년 반 동안 뭐를 했냐고 물어봤다. 여행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경험이 너의 생의 최대한 오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남들 다 치열하게 스펙을 쌓고 잇는데 너는 뭐한 거냐. 이래서 너는 취직을 할 수 있을 거 같냐. 내가 아니면 너는 아마 평생 취준생일 거다. 그렇게 면접 후에 너덜너덜해진 나의 마음을 부여잡고 집에 가는 길에 서럽게 울었다. 나도 사회 초년생 때는 저 말이 정말이라고 믿었다. 그래 다들 바쁘게 스펙 쌓고 잇는 동안 나만 놀았나? 우리는 흔히 우리보다 사회경험이 많은 분들의 말들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크다. 특히 사회초년생이면 더 그렇다. 근데 가끔은 그분들도 그들의 불안을 우리한테 투사할 때가 많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30대가 되면 와 20대 때의 그 경험이 가장 큰 추억거리이자 제일 멋진 경험이었다고. 그리고 그 경험 덕분에 30대에 도전을 다시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거라고 정말 꼭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 사람 말대로 그렇게 놀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난 굶어 죽지도 않았고, 취직도 계속 잘해서 돈도 다시 잘 모으게 됐다. 부모님이랑 매년 같이 여행을 갈 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뭘 하던 굶어 죽지는 않을 거 같다. 그래서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할 용기도 생겼다. 여태 잘 살았으면 아마 다음 10년도 이렇게 열심히 잘 살지 않을까. 


20대에 다 던져놓고 유일하게 내 열정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뛰어든 것처럼, 수많은 사회 경험과, 폭풍 같은 20대를 넘어 난 내 30대를 다시 잘 살아보려 한다. 내가 40대가 되었을 때 지금처럼 뿌듯해 할 수 있는 추억거리 한두 개를 더 쌓기로 결심했다. 평생 나한테 숙제였던, 내가 피하고 싶었던 연기를 제대로 하고자 한다. 30대는 배우의 꿈으로 다가가는 추억을 쌓아보고 싶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에서 두 사람만 만족시키면 된다. 8살 때의 나와 80살 때의 나. 8살짜리인 내가 봤을 때 와 저렇게 크구나 설레어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80대 때 할머니가 되어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참 야무지게 잘 살았구나만 느끼면 된다는 거다.


한때 심리학 전공한 친구가 추천한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20대 후반이 돼서야 전두엽이 완전하게 생성되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럼 그전에 좀 더 불안정할 때 더 도전을 많이 해도 되지 않을까?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뭐 어때 내 전두엽이 좀 덜 형성이 돼서 그런 거야 하고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Avicii의 노래 중 The Days에 이런 가사가 있는데:


"My father told me you live for your younger days."

"어렸을 때의 추억으로 나중에 산다라고 아버지가 그랬지."


나이가 먹으면 어린 시절 추억으로 먹고사는 거라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정말 공감되는 가사다. 근데 어떻게 보면 오늘이 내가 인생에서 제일 젊을 때 아닌가.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 많은 작고 큰 추억을 만들어가야 될 것 같다.


감정은 쉽게 옮는다.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걸 많이 해보고 좋은 에너지를 서로 공유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국가 전체가 긍정의 집단이 돼서 앞이 불안하고 미래가 망설여질 때가 많은 나한테도 계속 힘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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