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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05. 2021

산책

 오늘은 일이 없는 날이다. 그래도 해야 되는 업무는 있다. 오전에 약간의 교육을 받고, 점심을 대충 때운 뒤에 필요한 서류를 출력하기 위해 잠깐 사무실에 나간다. 서류를 출력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가 아이를 재우려는지 업고 자장가를 불러 주고 있다. 아이는 아직 잠들기 전이라 아내와 아이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아내와 아이의 상의, 포대기가 모두 노란색이라 상당히 귀여워 보인다.     

 


 옷을 갈아입고 설거지통에 담겨 있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내는 자장가를 부르며 내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오전의 교육과 서류를 출력하기 위해 나간 일 그리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린 이야기 등을 한다. 아이를 재우려고 애를 쓰면 잘 안 자는데 그냥 업은 채로 신경을 끄고 아내와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든다.     

 


 아이가 잠든 길에 아내도 같이 낮잠을 잔다. 나도 보통은 함께 자는 편인데, 일은 쉬는 날이지만 필요한 업무는 확인해야 돼서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에 앉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엔 밤새 게임도 잘했는데 요즘엔 조금만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봐도 눈이 아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할 때와 일을 할 때의 차이 같기도 하다. 상대성 이론이 이런 건가?     

 


 한 시간이 채 안 돼 아이가 깨어나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깨어난 아이를 안아 들고 아내가 방문을 연다. 산책을 갈 시간이다. 아이를 위한 산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 보느라 집에만 있는 아내를 위한 산책이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산책이란 걸 특별히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 지금 이야기하는 산책은 동네 산책이다. 마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도 하지만 마실은 근처에 이웃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누굴 찾아가는 건 아니니 마실 느낌의 동네 산책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혼자 살 때도 그랬고, 아내와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혼자 살 때는 동네슈퍼에 맥주나 사러 갔지 산책을 나가진 않았다. 아내와 연애할 때도 차를 끌고 조금 먼 곳엔 자주 놀러 갔지만 동네 인근을 산책하진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연애할 때 일 때문에 매일 늦은 시간에 만나 대학가에 가서 야식을 자주 먹긴 했으니 산책을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하튼 지금의 산책은 그때의 산책들과는 또 다르다. 둘이 아닌 셋의 산책이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전혀 다른 산책이 된다. 아이 옷을 입히고, 약간의 간식과 아이 물건을 챙긴다. 베란다에 자리하고 있는 유모차를 꺼내 아이를 태우고 나간다. 아직은 날이 그렇게 춥지 않아 아이와 산책을 나가기엔 제격이다.     

 


 그리곤 동네를 그냥 돈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는 그런 산책이다. 더 정확히는 바람을 쐬는 그런 산책이다. 아이는 살짝 얼어 있는 듯하다. 물론 그때그때 다르다. 주변이 그냥마냥 신기해 시종일관 두리번거릴 때도 있고, 오늘처럼 약간 긴장한 듯이 얼어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건 간식인 ‘쌀떡뻥’ 하나 쥐어주면 잘 먹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다른 유모차들이 많이 보인다. 안 보는 척 은근히 쳐다본다. 저 아이는 몇 개월일까? 우리 아이와 비슷해 보이면 저 아이는 통잠은 잘 자나? 이유식은 잘 먹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친다.     

 


 동네를 정처 없이 도는 것 같지만 나름의 목적지는 또 있다. 아까 서류를 출력하고 들어오는 길에 닭강정과 닭똥집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닭강정을 좋아하고 아내는 닭똥집을 좋아하니 바로 오늘 저녁이다. 그 가게를 향해 천천히 유모차를 몰아간다. 얼어 있던 아이는 간식 덕분인지 어느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내 버릇 중에 하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거다. 피는 못 속인다고 아빠를 닮은 건지 그저 아직 어려 세상에 나온 경험이 적어 그런 건지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천천히 20분쯤을 걸었을까? 목표했던 가게 앞에 도착한다. 닭강정과 닭똥집 세트메뉴를 시킨다. 10분 정도 기다리라고 하기에 다시 유모차를 끌고 주변을 돈다. 사야 될 책이 하나 있어 잠깐 서점엘 간다. 유명한 책은 아닌 듯해서 동네서점엔 없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없다.     

 


 10분 정도가 지나 시킨 세트메뉴를 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이제 신이 났는지 연신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아이 모습을 따라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를 질러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내가 따라 하는 건 귀여워서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대답을 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런 산책을 아내와 틈만 나면 한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이런 산책이 행복이 아닐까 같은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오글거려서 쓰기가 별로다. 그런데 그런 것 같다. 행복이 뭐 별거냐? 이런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지 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다. 비슷한 느낌으로 낯간지러워서 별로다. 그런데 역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오글거리며 낯간지러운 이런 산책을 앞으로도 틈만 나면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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