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Sep 18. 2022

추석엔 호캉스지 1

2022년 9월 2일 ~ 5일

# 나비효과 20220902 ~ 0904      

 

 사람의 정상 체온은 섭씨 36.5도다. 성인 기준이며 아이들은 조금 더 높은 37.5도까지도 정상 체온으로 본다고 한다. 정확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의학적인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니 정확도는 대충 이 정도에서 넘어가려 한다.     

 

 여하튼 금요일 밤 10시 혹은 11시경 딸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38도를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고열은 아니지만 어린아이는 열이 나는 게 가장 무섭다고 하니 다소 긴장을 하며 해열제를 먹였다. 문제는 해열제를 먹이는 자체다. 개월 수를 고려하여 4ml 정도를 먹이면 되는데 4ml가 그렇게 많은 양인지 몰랐다. 어른 입장에서야 한 모금도 안 되는 수준의 양이지만 먹기 싫어하는(정확히는 먹이면 게워 내는) 아이에겐 많아도 너무 많은 양이다.     

 

 걱정과는 달리 그래도 조금 컸는지 기특하게도 나름 꾹 참고 잘 먹어 줬다. 아이가 커 가고 있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금요일 밤에 해열제를 2~3번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먹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인 토요일이 됐는데도 안타깝게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힘들어할 걸 알기 때문에 가기 싫지만 별 수 없이 병원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이 쉬는 날이라 다른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열이 있으니 우선적으로 코로나 검사도 받았다. 코로나는 음성이었고 가벼운 목감기 같다고 하면서 목감기 약과 해열제를 처방해 줬다.     

 

 먹일 생각 하니 아뜩하다. 해열제는 점성이 있는 시럽이었고 목감기 약은 가루약을 조금 더 묽은 시럽에 타 먹이는 형태였다. 목감기 약 시럽에 해열제 시럽이라니 고난의 연속이다. 병원에서 나오기 전에 열이 나니 우선 해열제 한 번 먹자고 해서 간호사가 먹이는데 그냥 그대로 다 게워 냈다. 기다렸다 다시 먹고 가라고 해서 기다리다 조금 더 안정적인 집에서 먹이는 게 낫겠다 싶어 간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받아 집에 왔다. 바로 해열제를 먹였는데 병원에서 보다는 나았지만 반 정도는 역시 뱉어 냈다. 어쩔 수 없다. 우선 반 정도는 먹였으니 아이도 힘들고 엄마, 아빠도 힘드니까 다음 약 먹일 시간을 기약하며 우는 아이를 다독였다.     

 

 나는 볼 일 하나를 보고 글쓰기 오프라인 모임이 예정돼 있어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열이 나는 아이가 밟혀 모임 참여를 취소했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꼬박 목감기 약과 해열제를 번갈아 먹였다. 아이도 사람이라고 처음엔 게워 내다가 자주 먹다 보니 내심 체념한 듯 받아들이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영 짠했다.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흰색의 도화지 같은 아이에게 낙서하는 느낌이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낙서가 더 많아지겠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낙서를 조금은 늦추고 싶은 게 또 부모 마음이다. 다른 부모는 몰라도 첫 아이를 키우는 초보 아빠인 내 마음은 최소한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열이 이렇다 하게 떨어지질 않았다. 떨어지는 가 싶더니 다시 오르고를 반복했다. 급기야 일요일 아침에는 오한으로 아이가 몸을 벌벌 떨기까지 했다. 어찌나 안쓰러운지…. 약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이 번 약이 마지막이라는 거짓말을 계속해 가면서 아내와 함께 계속 해열제를 먹였다. 일요일 밤이 돼도 열은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화가 났다. 만능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많이 배웠다는 의사가 약을 처방해 줬고, 열심히 먹였는데 그것도 주말 내내 먹였는데 도대체 왜 열이 안 떨어지는 건지. 약이라는 게 조금 과하면 결국 독인데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런 걸 계속 아이에게 먹이는 마음이 영 불편했다. 월요일에 우리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 그렇게 기다린 오줌이었건만…. 20220905     

 

 월요일 아침이 됐는데 다행히도 어젯밤까지 냈던 화가 무색하게 아이의 열이 떨어졌다. 이제 나아지나 싶으면서도 진료 예약은 했고 괜찮아졌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 병원엔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오후 2시 예약이었다. 별 탈 없으면 넉넉잡아 1시간 정도 진료받고 집에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떨어졌던 열이 다시 올랐다. 엄마, 아빠는 코로나에 걸린 적이 없고 당시에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었다. 아이 역시 코로나는 걸린 적이 없고 열은 있지만 다른 특징적인 증상이 없었다. 예를 들면 기침, 재채기, 콧물 등등 이렇다 할 증상이 거의 없었다. 어린이 집에도 아직 가지 않는 아이였다. 열이 나는 상황을 설명할 만한 역학적인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혈액 검사를 하기로 했다. 새우깡보다 얇은 손가락을 따고 피를 뽑아야 했다. 아이가 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바라보는 게 안쓰럽고 안쓰러운 일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라는 거짓말을 계속하며 아내와 나는 아이를 꼭 잡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안 나오길 바랐지만 염증 수치가 조금 높게 나온 걸 봐서는 세균 감염 같다고 했다. 요로감염이 의심되니 소변을 받아 검사해 보자고 했다.     

 

 순간, 어! 아이 소변검사를 어떻게 하지? 어른들이야 별 일이 아닌데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 소변을 어떻게 받지. 놀랍게도(?) 세상은 웬만한 부분에 나름 준비가 돼 있었다. 약간의 조치를 통해 소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집에서 나오기 전 오후 1시 30분 정도에 기저귀를 갈았다. 진료받고 피 뽑고 어쩌고 저쩌고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기저귀를 간지 거의 2시간이 다 돼 가니 조금 기다리면 소변이 나오겠지 했다. 웬 걸 오후 6시가 다 돼 가는데도 영 소식이 없었다. 소변을 많이 볼 때는 1시간 정도만 돼도 기저귀가 빵빵해지는데 5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소변이 나오질 않았다. 문제는 선생님 퇴근 시간이 오후 6시였다.     

 

 기다리다 안 되겠는지 선생님이 들어오라 했다. 아무래도 탈수 증상으로 소변이 안 나오는 거 같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큰 병원으로 가서 마저 소변을 기다렸다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아무것도 안 나오면 집에 가면 되고 세균 감염이 확실하면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갑자기? 우린 주말 내내 목감기인 줄 알고 약을 열심히 먹였고 확인이나 받자고 기꺼운 마음에 병원에 온 건데 왜 갑자기 입원을 할 수도 있다는 상황으로 연결이 되는 거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내 몸이었다면 그냥 열 좀 나는 건데 됐다고 집에 갔을 거 같은데 아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별 수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혹여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입원할 수도 있으니 하루치 정도의 가벼운 짐을 챙기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일을 다 뺄 수밖에 없었다. 대학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 30분이 넘은 시간이라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별 일 아닌 거 같은데 아이니까 확인만 하려는 건데 입원이라는 단어에 이어 응급실이라는 장소를 보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더욱이 코로나라는 정말 거지 같은 시국이라 보호자는 한 명 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니 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빠라고! 엄마랑 같이 들어가서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그래야 되는데 코로나라는 성벽은 높았다.     

 

 결국엔 아내와 아이만 들여보내고 응급실 밖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코로나 관련된 부분은 확인을 했는지 여차저차 아빠인 나도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갔더니 이전 개인병원에서 한 코로나 검사는 유효하지 않다고 다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짜증 나는 건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응급실까지 오는 긴 시간 동안 나오지 않던 소변이 나왔는데 새서 소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은 뭐가 되는 거지. 또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건가? 탈수 증상에 의해 그런 거 같으니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작은 손에 주삿바늘을 꽂고 수액을 걸어 버렸다.     

 

 아빠도 아직 맞아 보질 않은 수액을 20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맞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주삿바늘 꽂을 곳을 잘 찾지 못해 오른손 등에 바늘 자국을 내고 난 후에 왼손 등에 겨우 바늘을 꽂았다. 생채기 하나만 나도 마음이 아픈데 주삿바늘을 한 번에 꽂지를 못하다니! 전문가들 아니냐고! 따져 물을 힘도 없었다. 아니 이러면 진짜 뭔가 분위기가 어디 정말 많이 아픈 거 같잖아! 입원을 할 수도 있다, 시간이 다소 늦어 응급실에 왔다, 그리고 수액이라니!!! 아니야, 별 거 아니야. 그저 우린 소변을 기다릴 뿐이야.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하염없이 소변을 기다렸다.     

 

 월요일 하루를 꼬박 병원을 옮기며 보낸 끝에 날이 넘어 화요일 새벽 2시가 돼서 결국엔 소변을 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내도 나도 함께 기다리던 간호사도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소변본 걸 이렇게 좋아해야 되는 거냐고. 그 와중에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어른들이 다소 큰 소리를 내며 좋아하니 울기 시작했다. 참고로 아이가 조금 큰 소리에 민감하다. 너무나도 기다린 소변이기에 순간 깜빡했다. 아이를 달래며 이제 정말 끝났다고, 이제 검사 결과만 나오면 집에 가자고 아이를 달랜 건지 나를 달랜 건지 모를 순간을 보냈다.     

 

 1시간이 조금 안 돼 검사 결과가 나왔다. 조금 애매한 결과였다. 쉽게 말해 요로감염이 확실하면 세균이 100마리 있어야 하는데 10마리 남짓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로감염이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집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세균을 키워서 요로감염 세균인지 확인이 필요하고 초음파 등의 검사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건 열이 안 떨어지니 어떠한 형태로든 세균 감염은 맞다 고 했다.     

 

 결국엔 입원이 결정됐다. 최소한 2~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검사를 하는 도중에 우선 감염은 확실하니 항생제를 투여한다고 했다. 투여 전에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 확인이 필요하다고 팔뚝에 주삿바늘로 조치를 했다.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운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듯 한 공포에 서린 눈빛이었다. 입은 벌벌 떨고 있었다. 보기 힘들지만 아이 눈을 바라보고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줘야 했다. 입원이라니! 입원병동에 들어가기 위해 추가적으로 엄마, 아빠도 코로나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새벽 3시가 넘은 그 시간에 아내와 난 코에 면봉을 꽂았다.


     


작가의 이전글 끔뻑, 소 같은 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