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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y 07. 2023

맨날 술이야 1

 일단 맨날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난 거 같다. 나이가 40대 중반이니까(만 나이로 한다고 해서 1~2살은 깎일 예정이다.) 중등시절부터 술을 마셨다는 계산이 나오고 실제로 기억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 그보다 이른 시기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중학교 3학년 때가 처음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여하튼 가장 강렬한 기억이 중학교 3학년 때의 맥주였다.



 자, 그럼 도대체 격한 말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교 꼬꼬마 시절에 왜 술을 마셨을까? 요즘은 고등학교 진학을 중학교 내신으로 결정하지만 당시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 대학교 진학을 위한 수능과 비슷한 개념으로 시험을 봤다. 물론 시험을 본다고 해서 지금은 일반계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때는 인문계였던 고등학교에 못 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방법이 바뀐 지금도 중학교 성적에 의해 원하지만 일반계(인문계)에 못 가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은 것과 같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대체적으로 일반계를 진학하는 데 별 문제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시험이 주는 긴장과 압박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참 어린것들이 100일 주라는 걸 몰래 알음알음 마셔대는 풍조가 있었다. 당연히(?) 나와 내 친구들도 100일 주를 마시기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작당모의를 같이 꾸미던 한 친구 녀석의 엄마가 ‘야, 니들 이상한 데서 몰래 술 마시지 마라. 엄마가 챙겨 줄게.’하시면서 우릴 집으로 초대하시고 맥주 한 잔과 닭고기 순살 튀김이었는지 탕수육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안주까지 준비해 주신 기억이 난다.



 꼰대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통용되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못하던 시절에 어른이면 당연히 어른답게 아이들을 꾸짖고 혼내던 시절. 이해보다는 잘못에 대한 체벌과 처벌이 당연하던 시절에 어른이었던 친구의 어머님의 마음이 참 고마웠고 오히려 학생들이었던 우리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까지 했던 첫 음주의 기억이다. 물론 그 뒤로 학생시절에 술을 안 마셨다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ㅋ



 나름 강렬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첫 음주 이후에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특별히 술을 마신 기억이 없는 거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렇다 할 특이할 만한 기억이 없다는 거지 마시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소 어리벙벙했던 고1 시절을 지나 고2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거 같다.



 내가 조금 노안이다. 지금은 제 나이로 봐주지만 고등시절엔 상당히 노안이었다. 고등시절부터 아저씨 소리를 듣고 지내서 실제로 아저씨 소리를 듣게 되는 나이가 됐을 때, 그냥 그랬다. 나이를 먹은 것도, 누군가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여하튼 고등시절의 나의 노안은 일정한 부분에 있어 은근한 무기가 됐다. 그건 바로 술과 담배였는데 지금은 술과 담배 등을 사려면 신분증 검사를 그때에 비하면 상당히 철저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당시엔 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사러 가면 그냥 팔았다. 그래서 난 정말 많은 아이들에게 담배를 사다 줬다. 아 물론 ‘담배셔틀’이나 하는 왕따는 아니었다. 아마 고2부터 ‘선도부’ 활동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선도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조직이다. 선도부학생이 왕따일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여하튼 정말 많은 아이들의 ‘제발’이라는 부탁과 함께 그 아이들의 폐부를 훈연시키는 데 일조했다.



 고2 시절엔 술을 사다 적당한 곳에서 몰래 마시는 수준이 아니었고 당당히 술집에 가서 마셨다. 잘했다는 건 아닌데 시대가 그랬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도 대부분은 대학교에 진학을 하려 했다. 하지만 나보다 한 세대정도 앞선 세대는 대학교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야말로 성인이다. 지금도 대학교의 진학 여부를 떠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성인이 되는 건 맞지만 대체적으로 대학교를 가지 않고 성인을 맞이하던 시절과 대부분이 대학교를 가는 시절에 맞이하는 시절의 20살은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후자는 아직 학생의 느낌이 강하고 실제로 학생이기도 한 반면에 전자는 그냥 성인 그러니까 어른이었다.



 그런 시절의 끄트머리에 고등학교 생활을 했으니 사람들의 그런 인식, 고2나 고3 정도 되면 거의 반성인이라는 생각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넘어가던 사회적인 통념으로 너무 어려 보이지 않으면 담배도 팔고 술집에서 학생들도 받아 주고 그랬다. 그런 시절에 노안이었으니 ‘프리패스’였다. 참고로 TMI이긴 한데 술집에 가면 주로 시켜 먹었던 안주는 골뱅이소면이었다.



 여러 곳을 다녔는데 주로 간 곳은 한 호프집이었는데 이름도 기억나고 장소도 아직 기억이 난다. 글을 쓸 때 가급적이면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지만 해당 술집의 이름과 장소는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30여 년이 흘러 버렸고 지금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어 별 의미가 없지만 시대가 그랬다는 사회적인 통념을 들이대도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3이 돼서 그 어느 시기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다. 자율이 아닌 야간자율학습시간엔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했다. 자율이 아닌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자율적으로 빼려면 담임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자율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야간자율학습은 웬만한 이유가 아니면 뺄 수가 없었다.



 그런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하고 있던 어느 날,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삐삐로. 쨌으니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순간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음성메시지로 들어온 이유를 들어 보니 여자 친구하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하... 이 놈의 의리. 나가야 했다. 걸릴 각오를 하고 나가야 했다. 나가서 순대거리의 한 가게에 가서 순대와 곱창 볶음을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부어라, 마셔라. 19살 밖에 안 된 어린것들이 세상 다 산 것처럼 맛깔나는 순대와 곱창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셔댔다. 친구의 허한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고 기분 좋게 취한 우린 웃으면서 헤어졌다.



 다음 날, 너무나도 확실하게 걸렸고 담임에게 불려 내려갔다. 담임이 나를 보고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 어제 잘 드셨어? 대가리 박아.’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군말 없이 머리를 박았고 이어서 엉덩이에 빠따 10대가 내리 꽂혔다. 죽도록 아팠지만 어제 먹고 마신 안주와 술 그리고 친구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버텼다.


4R(3), #10, Jang Hye-jin - Drinking, 장혜진 - 술이야, I Am A Singer 20110724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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