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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15. 2024

중 2병

https://groro.co.kr/story/8339



 꽤 성실한 학생이었다. 유치원 시절까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고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확실하게 성실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폭력적일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 6년 개근을 할 정도였으니 성실이라고 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을 거 같긴 하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엔 어려서 그런 건지 어리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던 본래 천성 그대로 행동한 건지 모르겠지만 꾀병도 조금 부리면서 학교도 간혹 안 가고 했던 거 같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라 그러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라 그러면 저렇게 하는 순종적인 학생이기도 했다. 약속도 잘 지키는 학생이었다. 약속을 잡으면 보통 먼저 나가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늦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방과의 약속에서 늦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정 부분 겁이 많은 천성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도 있다. 기억에 의하면 중학교 시절까지도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렇다 할 사춘기를 겪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춘기가 극대화된 중 2병은 걸릴 수가 없었다. 역시 그런 연유로 공부를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중학교 시절 모두 공부를 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알아서 공부를 잘했다. 건방을 조금 떨면 초등시절의 공부는 너무 쉬웠고 중등시절의 공부는 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주도 학습의 완성! 당시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학교 수업 잘 듣고 정규 수업이 끝나면 전교 50등(당시는 한 반에 50명, 한 학년에 기본 12반 이상이던 시절이다.) 안에 드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보충 수업을 해 줬는데 그 수업까지 마저 듣고 집에 왔다.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한 두어 시간 쉬다가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 2시까지...



 누가 시키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그냥 그렇게 했다. 집에서 혼자 공부할 때 50분 공부하고 10분 쉬고 또 50분 공부하고 10분 쉬고 이렇게 반복하며 새벽 2시 정도까지 그날그날 필요한 공부를 매일 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초등학교 시절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그런 기반 위에 중학교 공부는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맛을 알게 됐다. 그러니 공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가 굳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특히, 당시엔 고등학교도 중학교 성적이 아닌 시험을 따로 봐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더 동기부여가 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거 같다. 기억에 의하면 그렇게 자발적으로 공부를 잘했음에도 혹시 고등학교를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중학교 3학년 때는 더 열심히 해서 일주일간 코피를 쏟은 적도 있다.



 정말 성실했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한 중학교 시절이었다. 앞에서 겁도 많았다고 했는데 겁이 많은 성격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정해진 무언가를 지키지 않거나 해야 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으로 연결된 거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틀어서 가장 그것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아닌가 한다. 해서 삶이 어렵고 뭐가 잘 안 되면 중학교 시절만큼만 하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라도 될 텐데 하면서 영광이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한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에게 들먹일 때가 가끔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랬던 난 고2시절부터 차츰 이전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100% 완벽한 성실함을 추구했던 모습에서 한 두어 번을 빼먹기 시작하고 빼먹기 시작하니 한 두어 번이 서 너 번이 됐다. ‘성실과 열심’이란 마음이 게으름이란 차를 타기 시작했다. 마음은 성실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데 차가 게으르니 뭐가 안 되고 안 나가는 느낌이랄까... 애써 핑계를 대 보자면 뒤늦은 사춘기가 기어이 오고 만 영향도 큰 거 같았다.



 결국은 다 지난 이야기, 중학교 때 사춘기가 왔건 고등학교 때 뒤늦은 사춘기가 왔건 한 때 성실했는데 지금 게으르건 어쩌건 결국 그 모든 걸 품고 있는 건 지금의 나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로 힘든 지금 그때 그 시절 그 누구보다도 성실했고 열심을 넘어 열정적이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다시 한번 소환해 보고 싶을 뿐이다.



 다른 의미의 긍정적인 병에 걸려 있던 중학교 당시의 나를 불러내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러 문제들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닌 내 모습, 내가 한 번 보였던 내 모습을 불러내는 거니까 상대적으로 조금 쉽겠지? 제발 불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 30여 년 전의 내가 너무 그리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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