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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식물 그러니까 초록이들과 함께 하기 이전의 나의 삶 속에 초록은 없는 데 있다. 있는데 없다. 가까운 곳부터 보자.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보려고 들고 온 지역신문 표지도 여름에 걸맞게 초록색이다. 아이 장난감 중에 아이스크림 모형도 초록색이다. 역시 아이 장난감 중에 작은 접시와 작은 냄비 뚜껑도 초록색이다. 심지어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오면서 타온 약봉지도 초록색이다.
책상에 있는 물건만 둘러봤는데도 초록색이 상당히 많다. 뒤를 돌아 책장을 보니 겉표지가 초록색인 책들도 상당수다. 집 전체를 둘러보면 더 많을 것이다. 이제 보니 창문도 연한 초록빛이 나는 필름을 붙여 놨다. 1층으로 내려가면 앞 쪽 그리고 주차장 쪽에 작은 화단이 있는데 초록이들의 서식지다. 그냥 초록색이다.
주변 건물을 돌아봐도 작은 화단이 없는 곳이 없다. 흔히들 도심은 빌딩이 숲을 이뤄 답답하다고들 하는데 그런 빌딩 사이사이로 여기저기 조경이 참 많이도 꾸며져 있는 건 잘 모르는 거 같다. 그건 볼 생각을 안 하고 고개를 한껏 들어야 겨우 끝을 볼 수 있는 빌딩만 보면서 답답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 자체가 답답하다.
그럴 거면 저기 시골에 내려가서 사세요. 안 그래도 지역에 사람 없다고 난리인데 가면 좋아할 겁니다. 불편해서 그건 또 싫죠? 도시의 편의시설은 답답해 보이는 빌딩들, 크고 작은 건물들, 여기저기 나 있는 큰길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 답답하다고 생각할 시간에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조경과 은근히 관리가 잘 된 작은 공원들이 넘쳐 납니다.
아 뭐 여하튼 이렇게 우리 주변엔 초록이 많다. 뿐 만인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같은 계열의 색이라 할 수 있는 푸른색도 넘치고 넘친다. 비 오는 날, 구름 낀 날을 제외하면 우리 머리 위는 그냥 푸른색이다. 도심이라고 해도 조금만 시외로 나가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초록을,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의 지형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마음먹고 동쪽, 남쪽,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푸르른 하늘과 맞닿은 더 푸르른 바다를 볼 수 있다.
소위 식집사로 초록이를 키운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삶의 특별한 변화는 없다. 그저 신경 써야 할 녀석들(?)이 조금 더 늘어난 정도... 귀찮지만 은근한 책임감과 기대를 주는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이 주는 힘은 글쎄... 잘 모르겠다. 가족이 뭔 특별한 힘을 줘서 가족인가? 가족은 가족 자체로 힘이 되기도 때론 짐이 되기도 한다. 초록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여기저기 둘러보면 어디에나 있는 초록은 그냥 초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