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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정도에 하루가 시작된다. 알람이 필요 없는 시작이다. 빠르면 7시 늦으면 9시 보통은 8시면 여지없이 딸아이가 일어나 우리 부부를 깨운다. 아내는 먼저 일어나 아이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고 난 5~10분 정도 더 밍기적거리다 일어나 먼저 씻는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아침을 준비하고 먹이고 있던 아내가 바통 터치 하듯이 씻으러 간다.
아내에 이어 아침을 먹이면서 아이와 조금 놀다 보면 아내가 나와 역시 옷을 갈아입으며 화장을 한다. 그 와중에 아이는 아내와 함께 입고 나갈 옷을 고른다. 나는 밥을 얼추 먹였다 싶으면 시간을 보고 아이 세수를 시키고 로션을 발라 주고 옷을 갈아입힌다. 그러면 이어서 아내가 아이 머리를 해 준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척척박사님이 되고 아내는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이 된다. 감기 등이 걸려 약을 먹을 필요가 있다면 아내가 머리를 해 주는 동안 약을 타서 먹이고 유치원에 보낼 약도 가방에 싼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우리 가족은 아이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간다. 아이를 보내고 아내가 바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 부부는 아점을 먹는다. 아점을 먹고 보통 아내가 11시 정도에 나가면 나는 바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더불어 필요하면 집 청소를 하는데 안과 밖을 보고 지저분한 부분을 찾아 여기저기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나고 나면 이제 빨래할 게 없는지 확인한다. 세 명의 가족이 매일 속옷과 겉옷을 벗어 놓으니 빨래 거리는 돌아 서면 쌓여 있다. 해서 세탁기를 하루 걸러 거의 늘 돌리고 있다. 세탁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세탁기를 돌리면서 하루나 이틀 전에 빨아 널어 둔 다 마른 옷가지를 게기 시작한다. 결혼을 했구나 그리고 아이를 낳았구나 하는 걸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느끼는 순간이 여럿 있는데 다 마른빨래를 게는 순간도 그중에 하나다.
내 옷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의 옷 그리고 아이의 모든 옷을 게는 순간 아내와 아이가 생각난다. 당연하지만 내 옷을 게는 순간은 이렇다 할 감흥은 없다. 아내 옷을 게는 순간은 아내라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현실, 아이 옷을 게는 순간은 역시 아이와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현실이 생각난다. 특히 아이 옷을 게는 순간 그 감흥은 더 커진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아내 옷을 게는 순간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이 옷을 게는 순간의 마음이 조금 더 신기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내는 내가 만나기 이전부터 이 세상에 있던 존재였지만 아이는 그런 아내와 내가 만나 그야말로 이 세상에 없던 만들어 낸 존재다. 그 지점에서 오는 신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불어 아내나 나 같은 성인의 옷에선 날 수 없는 그 순수한 아이의 향은 마음이 정화되는 수준이다.
아이 옷을 게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반성하게 되고 보다 나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더불어 그 순간이 너무 따뜻하다. 그저 집안 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아니 그냥 집안일이 맞지만 아이 옷을 단정하게 게는 그 순간 아이의 존재 때문인지, 그런 아이를 같이 만들어 내고 키우고 있는 아내를 향한 사랑 때문인지, 앞으로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신기함을 넘어 따뜻함이 마음으로 밀려들어 온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이 따뜻함은 이질적이지 않게 부드럽게 마음으로 들어온다. 하물며 겨울을 맞이하는 이 시점의 그 따뜻함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따뜻하다.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