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by 고운로 그 아이

잎 지고 낙엽 지니

또 한 진다


저무는 길 위에서

뒤돌아 나를 바라

저기 걸어오는 나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가위를 꺼내

타인의 허물을 자르려다

나에게 흠집을 내 버렸


윗돌을 들고

불의를 향해 던지려다

내 발등을 찍었


보자기를 펼쳐

내 욕심껏 다 주워 담으니

너무 많아 고 갈 수 없었


승리를 쫓을수록

돌아오는 것은 패배


저물어 가는 해는

부끄러운 뒤안길을 비추며

헛된 마음을 가볍고 하게 만든다

깃털 하나 겨우 바람에 나부


내가 이길 상대는

깃털이 된 나뿐인 것을 느








어제 꿈속에서 시를 썼습니다.

드디어 꿈속에서 시를 쓰는 경지에 이른 것? 이 아니구요,,

가위 바위 보 라는 제목과 함께 첫 줄만 남겼습니다.

나는 늘 진다...


1연 정도는 써 줘야 조상님이 도왔다고 생각할 텐데, 가위 바위 보에서 나는 늘 진다라니..

확률이 1/n 인데 왜 나는 늘 질까.. 이유를 모른 채 가위 바위 보라는 시제를 가지고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위 -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보이지요. 그것을 변화시키겠다고 간섭하는 순간 내 허물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내 약점을 훤히 보고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사려 깊은 사람들이었는지 모. 남의 잘못을 재단하면 그것이 내 약점이 되고 내 인격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위 - 사회에 불만이 많습니다. 정치는 이래서 안 되고 경제는 살아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미디어에서 신뢰를 쌓아오던 유명인들이 한순간 본색이 탄로 나 무너지는 일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양심과 정의라는 것이 이 사회에 존재하기나 하는지, 목청껏 비난해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정의로운 사람인가? 냉정히 물었을 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잘하게 저지르는 비양심적인 행동들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카페에서 차를 시키고 휴지를 필요 이상으로 한두 장 더 들고 오는 것. 남아서 넣어 오는 것. 엄밀히 따져 이런 행동도 불의이지요. 큰 불의만 불의이고 작은 불의는 애교란 말인가, 부끄러워집니다.


보자기 - 무소유를 외치던 ㅎ스님이 알고 보니 풀소유자였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었지요. 누구나 소유욕이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마음도 인간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백화점에서 코트를 사고 나면 그것에 맞는 목도리도 갖고 싶지요. 이왕이면 신발도 어울리는 것으로 사고 싶고 백도 하나 들어서 풀장착을 하면 좋겠지요. 다 가지고 나면 잠시 동안은 발걸음이 가볍겠지만 돌아올 카드대금 청구서는 무겁기만 합니다.


이제 올해도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를 반성하고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대문사진 - 동화 가위바위보를 좋아하는 아이, 마쓰오카 교코 글, 오코소 레이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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