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빤해진 날, 오랜만에 동네 공터로 마실을 나갔다. 국민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이어서 한산했다.
그날따라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대문 하나가 이례적으로 활짝 열려 있었고, 못 보던 몇몇 어린아이들이 대문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놀고 있었다. 그중에서내 또래인 듯한여자 아이가 바닥에 고인 빗물을 장난감으로 퍼 담고 있었고,양 옆에는 동생들로 보이는 여자애, 남자애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친구는 내가 근거리에서 보고 있는데도 나를 전혀의식하지 않고 고개 숙여 빗물놀이에만 열중했다.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이 바람결에 떨어졌던 걸까. 그 친구는 손바닥을 내밀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때였다. 친구의 얼굴이 햇살에 드러나며 어디선가 파란 이온음료 광고에 나올 법한 상큼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샤라라라라라 라 라~'
그것은 나에게 컬쳐 쇼크였다.
머리를 곱게 양 갈래로 땋고 멜빵치마를 입고 있던 그녀는 뽀얀 피부, 긴 속눈썹에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린아이에게서 어떻게 그런 우아한 몸짓이 나올 수 있는지, 세련되지 않은 여섯 살의 안목으로 봐도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함이 느껴졌다.
첨탑 종소리가 울릴 시간이 아님에도 어디서 댕댕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소년이 소녀를 만난 것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친구는 나긋한 말투로 동생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지내 쪽으로는 눈길 한번 안 주었다.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여봐요, 나 보여요? 이거 몇 개예요?'
······
'여봐요, 씨름은 좀 해요? 물 놀이도 좋지만 국민학생이 되려면 튼튼해야된다구요.'
마음만 굴뚝같을 뿐, 차원이 다른 두 세계는 좀처럼 섞이기 힘들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께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지금도 잘 묶여졌다 하시면서도 다시 양 갈래로 땋아 주셨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오빠가 물었다.
"정아 오늘 나갈 거야?"
나는 우아하게 방바닥만 쳐다보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엄마, 정아 야단맞았어요?"
"아닌데, 왜?"
나는 오빠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장판의 올록볼록한 양각 무늬만 만지작거렸다. 안 살아 본 삶을 흉내 낸다는 건 참 생경스럽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엄마와 목욕탕에 갔을 때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오수를 비누 뚜껑에 퍼 담고 있었다. 한결같구나, 물 좋아하는 건.
나는 또 그 옆에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했고, 역시나 투명인간이었다.
'여봐요, 그 물은 더럽잖아요. 위험해요, 엄마로부터 등짝스매싱이 날아올 수도 있다구요!'
친구의 거침없는 행보를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정아, 때 밀자."
엄마가 부르셨다. 그 친구 보느라고 미리 때를 불려 놓지 않아서 아플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엄마가 타올을 집어 드셨다.
"아 아파요, 살살."
"아직 손 대지도 않았다."
파란 이태리타올은 보고만 있어도 몸에 전율이 왔다.
엄마와의 주고받는 밀당 속에 그 친구와는 그렇게 흐지부지 헤어졌다.
그 후 그 친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더 이상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문은 바람 따라 어디든 날아가는 법. 얼굴도 예쁘면서 공부도 매우 잘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중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를 잘하려면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모를 만큼 집중을 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야말로 내가 옆에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제 일에만 열중하던 애였으니 이미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마음에 나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 아이. 첫 만남이 영화 속의 한 장면인 듯 착각하게 만든 마법의 소녀.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어제 본 듯한 생생함이 경이롭기만 하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비처럼 살포시 앉아 선한 날갯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친절이나 아름다움, 따스한 말과 글.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나비들은 우리 마음속에 날아들었다가 다시 우리 삶 속으로, 행복한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그 친구와의 기억이 이 글을 쓰며 즐거워하는 나를 만들고, 또한 이 글을 읽으며 잠시 자신의 나비를 찾아 떠나는 누군가의 즐거운 여행을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 깃털 같은 행복이라도 그것이 수없이 날아들고 날아간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울하고 불행할 틈이 없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