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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Jul 23. 2024

거울을 보다가



언제부턴가

거울 속 그녀가 눈에 거슬렸다

"넌 그 점이 안 좋아."

"진작에 그럴 기미가 보였어."


결점을 가려도 소용없다

모조리 투시되니까

작위적인 웃음은 그만

어색한 골짜기만 깊어져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은

가식에 대한 응징

진실을 겨냥한 스모킹건이

각자의 손에 있다


그녀와의 동일시를 거부하는

거울 밖 페르소나는

이 팽팽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접이식 거울을 닫아

그녀를 차단해 버렸다







요즘은 거울을 잘 안 뜯어본다. 한창 시절에는 거울 보는 맛에 살았던 때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거울 보면 피부과가 절실해진다. 점도 올라와 있고 착색되어 있기도 하다. 별로다.

화장실에서 손 씻을 때도 거울을 안 보고 나올 때도 있다. 보면 뭐 해, 아는 얼굴인 것을.


외출할 때는 기를 쓰고 가려야 한다.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 잡티가 숨어 있는지 좌표를 안다.

"어머나 요즘 관리받아?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졌어?"

아침에 작심하고 분칠을 좀 했으니까 그런 거야.

요즘 화장품이 잘 나오더라.


거울 볼 때의 내 마음을 반영한 시를 썼다.

되는대로, 느낌대로 자유롭게 써 보았다.






3년 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태주 시인이 나오셨다. 어찌나 재밌으시던지 유재석 씨도 웃다가 끝난 회차였다.

편수로 3500~4000편의 시를 쓰셨다고 말하시면서

"약간 미쳤어요, 내가 미쳤다구요."

"...아, 시에~"

"아니, 그것도 진짜로. 좀 사이코고. 시인은 좀 사이코예요. 본래가 시 쓰는 게 어떤 착란 상태에서 쓰는 거예요. 제정신으로 쓰는 게 아니고, 약간 살짝 갈 때. 그래서 보통 때 못 보던 것을 보고, 보통 때 못 듣던 걸 들어요. 약간 귀신 소리를 듣는다든가 이런 식으로."


개그맨보다 더 재미있게 말씀하셨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었겠지만

나름대로 풀이하자면, 시심이 차오르고 영감이 찾아왔을 때 시를 쓰라는 말씀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 보는 재미가 있다.

오빠들은 내가 중고등학생 때, 나를 문학소녀라며 시집 선물을 종종 해 주었었다.


매 저게 몇 년도인가

책값이 1800원

큰오빠가 나한테 선물한 이해인 시인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다.

오늘따라 너어무 고맙다.


"그려요

힘닿는 데꺼정 써 볼게요

헌디 기대는 하지 마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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