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좋을 때든 안 좋을 때든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은 무적권(무조건보다 더 강력하게) 광릉 수목원에 간다.
그 얘기는 여기서는 사족이니 추후에 하기로 하고, 지난 봄 수목원에 갔을 때 우연히 할미꽃을 보았다. 내 카메라에는 담겨 있지 않아 네이버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봤다.
어째서 줄기가 올곧게 자라지 않고 휘어질까.그 바람에 꽃들은 딱하게도 하늘 한번 못 보고 축 늘어져 있었다.
생전 엄마는 70세가 넘어가면서 허리가 조금씩 굽기 시작하다가 점점 저 할미꽃처럼 땅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되셨다. 15년 동안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가꾸며 소일하셨는데, 아버지는 양호하신 편이었다.
일찍이 병원에 가서 더 정밀하게 검사도 해보고 부족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확인도 해보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늙어서 그런 거다 하고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으셨다. 굽은 것 외에는 아프거나 디스크 등의 다른 증세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으로만 보셨다.
할미꽃은 엄마와 굽은 각도가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것이다.
골격의 변화는 유전이 큰 요인이라고 한다. 쌍둥이들은 환경이 달라도 디스크 변화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것을 어디서 들은 아들이 나보고 건강 관리 잘하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척추를 만져본다. 의사라면 직업병이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늘 엄마의 척추 배열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유, 야~ 굽어도 나중에 굽지 벌써 굽냐."
돌아가신 엄마는 요즘 내 꿈에 잘 안 나타나신다. 엄마가 아무리 생각이 나도 꿈에 나타나시는 것은 행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만큼 잘 안 나타나신다는 거다. 오빠들도 요즘에는 잘 안 나오신다고 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아들이 엄마의 소식을 전해 왔다.
꿈속에 E(큰오빠 딸)의 결혼식에 외할머니가 오셨는데 젊고, 피부에서 윤이 나고, 허리가 완전 꼿꼿하더라고 했다. 그리고 만면에 미소를 짓고 계시더라 했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고맙다는 말부터 먼저 나왔다. 그리고 큰오빠에게 꿈 이야기로 축하의 말을 대신했다. E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그 어떤 선물보다 더 기쁘다고 했다.
사실 우리 형제 중에 엄마를 제일 못 잊는 사람은 큰오빠이다. 건강하신 엄마의 소식을 조카의 꿈에서나마 확인했으니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웠겠나.
애들만 보면 나 몰래 10만 원씩, 20만 원씩 용돈을 푹푹 찔러 주는 오빠가 이번에는 얼마를 찔러 줄지 사뭇 기대?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은 이제 외삼촌이 주시는 용돈을 미안해하며 부담스러워한다.
한창때 기골장대하던 엄마처럼 할미꽃이 허리를 쭉 펴고 하늘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4~5월이 개화 시기인 할미꽃은 지금은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