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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Oct 29. 2024

광릉숲에 부는 바람

국립 광릉수목원에서



 간절히

나를 부른다


, 폭염, 폭설

떠한 악천후에도

나는 기꺼이 그 숲 앞에 선다


내가 머무른 자리

하나둘 는 숲 속의 빛


앙다문 풍년화 꽃순 리고

애호랑나비 날아오른다

나를 쫓아 달리는 사슴

나를 딛고 날아오르는 팔색조


주린 다람쥐 앞에

굴러오는 열매 한 알

순결한 눈꽃송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


숲이여,

대관식을 준비하라

황금빛 낙엽 모아 왕관 만들고

붉은빛 단풍으로 주단길 놓아


내가 아니면 그 누가

구름 속 태양을 꺼내며

달빛 아래 나뭇잎 춤추게 하랴

나는 이 숲의 이니

나를 따르라, 흥을 올려라


전나무, 서어나무

길을 열어 도열하고

꽃봉오리 앞다퉈 축포 터릴 때

비단옷 갈아입은 육림호 잉어들  

쏟아져 나와  펼치리


하늘이여

이 숲을 지키소서

모든 생명의 삶에 곱절을 더하소서

평성대 이루어 주소서


하늘을 우러르며 부르짖는 그때,


돌연 뒤덮는 검은 구름 떼

교목  개 조아리고

낮은 들풀 숨죽이며 파르르 떤다

쾅, 고막을 찢는 뇌성


나를 정조준하는 화살촉

멀리서 날아와 심장 스쳐간

 혼비백산하여 바닥에 엎드린 채

꺼이꺼이 쉰소리를 낸다


이 숲은

장구한 역사가 깃든 세조의 능림(陵林)*

600년 전 세조가 노닐던 사냥터

거룩한 숨결이 휘감고

두 눈 부릅떠 살아 있는 곳


나는 그저 떨며 사라지는

 줄기 바람이었다


광릉숲,

그곳에 서면

그대도 홀연히 왔다 가는

한 줄기 바람이 된다

쓸쓸히 떠돌아다니는

한 가닥 소슬바람이 된다







*능림(陵林)은 왕릉 주변에 조성된 산림을 말한다.

                 


광릉숲은 조선시대 나라에서 사용하는 나무를 생산하고, 왕실 가족들의 사냥, 활쏘기가 이루어졌던 숲이다.

1468년 세조가 승하한 후에 세조의 능인 광릉이 조성되고 나서 능림(陵林)으로 지정되어 엄격하게 관리되어 오고 있는 숲이다.

흔히 광릉수목원으로 불리는 국립수목원(공식명칭)은 이 광릉숲 내에 조성된 수목원으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하고 있다.


광릉숲은 560년간 훼손되지 않고, 6.25 전쟁 때도 잘 보전되어 전 세계적으로 온대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활엽수 성숙림이며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식물 945종, 곤충 3,977종, 조류 180종, 버섯 699종 등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산림생물다양의 보고이다.

이를 근거로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Man and the Biosphere)은 2010년 6월 2일에

광릉숲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광릉수목원 내 호수인 육림호 (왼쪽은 얼어서 눈이 쌓인 육림호, 오른쪽은 여름의 육림호)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시간을 내서 광릉수목원에 간다.

매달 간 지는 2년이 넘은 것 같다. 신혼 때 몇 번 갔었는데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발길이 끊겼다.


몇 년 전 그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바쁜 도시 생활을 잠시 잊고 쉼을 갖는다는 의미로 광릉수목원에 다니면 어떻겠느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남편은 꽃과 식물 마니아이기 때문에 대환영이었다.


때로는 둘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고, 날씨가 악조건인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슬슬 꽁무니를 빼는 반면, 남편은 정해진 날 상황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진행시키자고 했다. 평일 일부러 다른 스케줄을 조정해 가며 맞춘 시간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면 월 1회 실천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 말도 맞다.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온갖 잡동사니 이유가 생길 것이다. 나도 동의했다.

봄가을은 약간 비가 올 수는 있겠지만 악천후는 없다.

하지만 올 7월에는 일기예보에 잡히지 않는 돌발성 물폭탄이 빈발했다. 8월은 36도를 넘는 폭염이었고, 9월도 더위가 이어져서 35도를 넘었다.


지난 7월은 우리가 예약한 시간을 포함해서 약 4시간 정도의 비 소강상태가 예보되었다. 사실 돌발성 비는 매우 위험하고 수목원 내 깊숙한 산책로는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이런 날씨는 피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소강상태라는 예보를 믿고 평지를 골라 돌아다녔다. 마침 산책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8, 9월은 찜통이었다.

물을 수시로 마시고 손풍기를 들고 다니며 열을 식혔다. 위에서는 직사광선이, 아래에서는 복사열이 찜통처럼 푹푹 쪄대니 바를 것 바르고 가릴 것 가려도 얼굴이 완숙토마토가 되었다.

자주 건물 안에 들어가서 음료를 마시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온열 질환을 예방했다.


10월은 날씨가 좋았지만 단풍 들기엔 일렀다. 11월은 좀 앞당겨서, 때가 일러 구경 못했던 단풍을 보러 갈 생각이다.


12월은 폭설 없는 편이고 1, 2월은 재난 경보가 발령되지 않는 이상 예외 없이 찾아갈 것이다.


이렇게 악조건을 마다 않고 광릉수목원을 찾는 사람이 우리 부부 말고 또 있을까 모르겠다.

경기도에서 명예시민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혹은 수목원 홍보대사로 위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상상도 해 본다. 정도로 광릉수목원에 진심인 우리 부부다.


이번 시는 그런 진심을 담아 써 보았다.




7월,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수목원의 여름꽃들. 왼쪽 위부터 수국, 알리움, 벌개미취, 무궁화, 원추리꽃.




광릉수목원 평면도



https://kna.forest.go.kr/kfsweb/kfi/kfs/cms/cmsView.do?cmsId=FC_003161&mn=UKNA_01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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