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며 14화

굿모닝 샌디에이고

by 무똥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브라이언과는 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카페에서 따로 만났다. ‘르 빵 드 마크’라는 어학원 근처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였다. 프랑스에서 자주 가던 고전적이고 앤티크 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된 카페가 아니라 온통 새하얀 인테리어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카페였다. 나는 이곳에서 가끔 빵 오 쇼콜라와 크루아상을 사 먹고는 했는데 제빵사가 프랑스인이어서 그런지 프랑스에서 먹던 빵의 맛과 꽤 비슷한 맛이 났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브라이언은 레모네이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 키스만 한 거 맞아요? 아니면 둘이 손을 잡고 거닐기도 한 거예요?”

“키스만 했어요. 클럽에서 같이 춤추다가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나는 시선을 피하며 거짓말을 했다.

“나는 우리가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아니더라도 서로 독점적인 관계로 지내기로 한 줄 알았어요.”

“그런 거 너무 헷갈리고 나는 잘 모르겠어요. 여자친구, 남자친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무 사이 아닌 거 아니에요?” 손톱 옆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살들을 뜯어내려고 살짝 손가락을 만져봤다. 브라이언은 화가 난 듯한 표정, 아니 적어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내 행동이 이렇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나는 더 안절부절 못 하고 손가락 끝만 만지작거렸다. 카페에는 음료를 제조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그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가 따로 주문한 음료를 카페 주인은 같이 내어줬다. 브라이언이 음료를 픽업하여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예지. 나에게 사랑은 좀 느려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예지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예지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몇 개월 뒤에 떠나잖아요. 우리 사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고민하고 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거 아니라고요, 나도.”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방법을 찾아보면 되잖아요. 내가 연락해서 샌디에이고에 있는 인턴십을 구해달라고 요청해 볼게요. 혹시 샌디에이고를 떠나게 되더라도 장거리 연애를 하면 되잖아요.”

“난 장거리 연애에 대해 부정적이에요. 내가 대학생 때 다른 주에 사는 여자친구와 만난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수개월 간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더군요. 장거리 연애의 끝은 좋지 않아요.”


우리가 연인이 될 수 없는 이유만 늘어놓는 브라이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우리가 이 관계에 더 헌신할 만큼의 케미가 서로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일방적인 강요로 성립되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았다. 창 밖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즐거운 듯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몇몇은 커플이었다. 나도 ‘브라이언과 저렇게 웃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좋아요, 브라이언. 당신에게 선택지를 줄게요. 나와 연인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어학원 직원과 학생 사이로 돌아가는 거예요.”

“최후의 통첩하지 말아요.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브라이언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고 깊은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니 골든 리트리버가 생각났다. 그에 반해 그의 새하얀 머리는 지혜보다는 아픔과 지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를 선택하지 않을 거란 얘기군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여기까지 해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브라이언이 체념한 듯 그러나 단호하게 이별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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