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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4

일상다반사

오월. 종일 카페에 단골뿐 이다. 바깥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계절은 손님이 준다. 7시. 카페 문을 일찍 닫은 지는 지하 작업실에서 목공 일에 빠져 있다. 윤은 집에 들어가서 오전에 미뤄뒀던 집안일을 처리하고 다시 카페에 나왔다. 본격적인 책 작업을 위해 지나를 만나는 날이다.

지나가 격식 차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베이지색 투피스에 자연스럽지만 꼼꼼하게 정성 들인 화장과 끝에 웨이브를 살짝 넣은 긴 머리까지. 완벽한 연예인이다. 선영은 몹시 피곤한 기색이다.


“저 물 좀 주세요. 영화제 홍보 행사 다녀오는 길이에요,”


지나는 들떠서 말을 이어갔다.


“작가 언니, 선영 언니 졸라서 저 카페 쉬는 날 여기 두 번이나 왔어요. 사장님이 저를 잘 모르셔서 너무 좋아요. 국민 연인 지나 이런 거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진짜 편한 거 있죠? 저 화장 지우고 옷 좀 갈아입고요. 빨리 오고 싶어서 그냥 막 왔어요.”


“저쪽 화장실 사용해요. 오빠는 지하에 있어서 한참 동안 안 올라와요. 밤이라 커피는 부담스러울 거 같아 집에서 허브차 좀 챙겨 왔어요. 로즈메리 향이 좋아요. 어때요?”


윤이 작은 유리병에서 찻잎을 꺼내며 말했다.


“그냥 커피 주세요. 저 커피광이라 허브차는 별로요."


지나는 망설임이 없이 대답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나 씨 처음 봤을 때 하고 좀 달라졌다.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명랑하고 뭐랄까 좀 왈가닥 느낌이네.”

“저게 원래 모습이야. 그런데 별일이네.”


선영이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다 몸을 살짝 일으켰다.

“뭐가?”


윤을 커피 내릴 준비를 하면 선영을 쳐다봤다.


“왜 그래. 원래 저렇다며?”


윤이 희미하게 웃었다.


“평소의 지나라면 네가 권해준 차 그냥 마셨을 거다.”


윤은 의아한 표정이다. 


“자기 배려해 주는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 그게 제 특기야. 단호하게 저 차 안 마셔요. 이런 말은 절대 안 해.”


선영이 기운을 차렸는지 생생하다.


“스타 연예인이 그런 걸 다 신경 써?

“지나가 고등학생 때서부터 이 바닥 생활만 했잖아. 한참 어른들 선생님들만 상대해서 지나치게 깍듯해. 거절 못하고. 누구한테든 좋게 보이려 하는 게 몸에 뱄거든.”

“뜻밖이네”

“연예인 이미지 관리하는 게 보통일 아니다. 지나처럼 스캔들 없이 10년 이상 톱클래스 유지하기 힘들지. 좀 뜨면 그동안 힘들었던 거 보상받고 싶잖아. 한눈팔고 실증내고. 그러다 사고 치고, 근데 쟤는 신기하게 그동안 한 번도 안 그랬어. 엄마 영향이 크지만. 지나 엄마 깐깐하고 엄하기로 소문 자자하잖아. 근데 쟤가 여기만 오면 풀어지네!”

“좋은 일 아냐?”

“그렇지! 그런데 한 방에 갈까 봐 걱정이지.”

“요즘 내 촉이 말이다. ”


선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 몸짓을 동반하며 아랫배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렸다.  


“빵!!”

“깜짝이야. 왜 그래? 미쳤어?” 

“한꺼번에 ”빵“ 터질 것 같단 말이지.”

“뭐? 뭐가? 저렇게 말간 얼굴로 무슨? 그만해. 정신 사나워!”

“쌓아 둔 게 많거든. 쟤 열받아 뚜껑 열리고 터지기 전에 슬쩍 압력 좀 빼 주라. 숨 쉴 구멍 좀 만들어 주라고.”

“왜 그래? 부담스럽게. 돈 벌라고 하는 거 아냐? 대박 아이템이라며?”

“물론 대박은 대박이지.”

“중요한 건 지가 힘든 것도 모르는 저 바보가 아직은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해”

“잘 나가는 것들이 나 같은 인간 앞에서 잘한다,”

“일단 시작은 좋아. 짬만 나면 여기 가자는 걸 보면. 자기한테 심드렁한 오빠도 편하고. 잘 보일 필요 없으니까. 뭐 너 두 맘에 드는 것 같고. 지가 찍은 사진이니 말은 많이 할 거다. 그래봐야 다 듣기 좋은 소리겠지만. 그냥 들어주면 돼. 수다라도 떨면 스트레스 풀리잖아. 그러다 속 얘기까지 하면 더 좋고. 본인도 잘 모르는 안 좋은 감정 끄집어내서 고백하게 만드는 거. 네 전문이잖아. 나 같은 강철 심장을 울린 유일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강철 심장 좋아하네. 지나보다 네가 더 위험해.”


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영을 쳐다봤다. 선영은 나 몰라라 묵묵부답이다.      



선영은 오빠가 있는 지하 목공실로 캔 맥주 2개를 들고 내려갔다. 지나와 윤은 카페 중앙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 중에 책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걸로 추려 왔어요. 한 번 봐주세요.”


지나는 태블릿을 윤 앞으로 밀어주었다. 사진이 꽤 많다. 윤은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사진을 넘겼다. 

“오호~”


선영이 칭찬했지만 윤은 솔직히 지나의 사진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예쁜 여배우가‘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라며 취미 삼아 찍은 사진이 좋아야 얼마나 좋을까 했다. 국민 연인 지나를 닮아 죄다 샤방샤방하고 예쁜 사진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지나의 사진은 직관적이고 단순하고 강렬했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클로즈 업 한 흑백 사진.

자신을 키워주셨던 할머니의 얼굴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고 했다. 장소를 가름하기 어려운 곳에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키가 큰 중년 남자의 뒷모습. 뒤풀이 장소인 듯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의 클로즈업된 얼굴.

 선영이 모델인 사진도 꽤 있었다. 영화 촬영 현장의 카메라 밖에서 카메라 안을 피곤하게 쳐다보고 있는 선영. 아무도 없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옆얼굴. 카메라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정면 사진. 


“선영이 사진이 많아요.”

“언니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거든요. 훌륭한 피사체예요.”


윤은 많은 사진 중에 유독 한 장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프레임을 꽉 채운지나의 아름다운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의 뒷모습. 부스스한 파마머리. 편안한 실내복 차림에 약간은 구부정한 자세.  


“어머니예요?”

“네”

“이 사진이 참 맘에 들어요. 뭐랄까 인생이 느껴져요. 한창 피어나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박제해 놓은 시간에 흘러간 세월을 포개 놓은 것 같은.” 

“어머 언니 표현력 너무 멋지고 고급스러워요.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이에요. 미술 작품 같지 않아요? 몇 년 전 화보 촬영 때 찍은 건데, 작가님이 저 사진으로 상도 받으셨어요. 엄마가 무척 맘에 들어했어요. 요즘도 한참 쳐다보고 그래요. 몇 달 전에 광고 촬영 끝나고 새벽에 들어갔더니, 딸내미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거실에서 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이 괜히 찡했어요.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어요. 저렇게 있다가 내 곁을 떠나 버릴 것 같기도 하고.”


지나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느새 눈물이 빰을 타고 흘렸다. 

윤은 휴지를 가져다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짐짓 무심하게 굴었다.  

지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팽 소리가 나도록 코도 풀었다. 지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언니 갑자기 사람을 울리고 그러세요?”

“내 가요?”


윤이 반문했다.


“많은 사진 중에 하필 저게 제일 마음에 드시다니.”

“어머니 성함이?”

“네에? 차자 혜자 순자요.”

“잠깐만요.”


윤은 사진 아래 댓글을 달았다. 


“박제된 젊은 앞에 선 나이 듦. 엄마의 뒷모습을 처음 본 날이다. 엄마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내게 뒷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내게 들켜 버린 엄마의 뒷모습. 하필 찬란한 내 청춘이 박제된 곳에서. 구부정한 어깨. 눈 내린 머리카락. 영원히 잡아 둘 수 없기에 시간을 멈춰 내 눈에 내 가슴에 담는다.” 

사랑하는 차 혜순 여사의 어느 날 새벽”


지나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신기해요. 그냥 느낌이, 어떤 끌림이 오면 셔터를 눌러요. 말로 설명하긴 힘들어요. 그런데 사진이랑 글이랑 붙여 놓고 보니까 왜 이걸 사진으로 찍었는지 더 명확해져요.” 

“언니는 나도 잘 모르는 내 맘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요?”


지나가 진지하다.


“글쎄요? 그냥 지나 씨 말을 듣다 보면 느껴져요. 그걸 글로 옮겼을 뿐?”


지나는 자신도 잘 몰랐던 감정이 드러나자 좀 낯설었다. 


“지나 씨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뭐죠?”

“이거예요”


지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환한 얼굴로 잽싸게 사진 한 장을 집어냈다.

양복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한 5-6살 정도의 꼬마. 정원에서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바가지 머리, 상기된 통통한 볼, 커다란 눈. 꼬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 


“어머 귀여워라~” 


윤의 얼굴에 엄마 미소가 피어났다. 


“저예요. 엄마가 찍었으니 제 솜씨는 아니에요.”

“어머 남자애 같아.”


윤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지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눈 코 입이 지금이랑 똑같네.”

“너무 예쁜 티 내면 남들 구설에 오른다고 엄마는 남자애처럼 입히고 키우셨어요. 저 때가 자전거 처음 타던 날 일거예요. 엄청 개구쟁이였거든요. 주택에 살았었는데 마당이 꽤 넓었어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탔어요. 너무 신나게 타다가 멈추질 못해 작은 연못에 빠진 적도 있어요. 팔이 부러져서 깁스하고 다녔죠. 아빠가 그 이후로 연못을 모래로 메워 버리셨어요, 저 나무 타기도 잘해요. 마당 가운데 오래된 벚나무가 있었는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얼마나 신났게요.”


지나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들뜬 표정이다. 


“반전 있는 지나 씨 매력적이네요~”

“아 진짜요? 사실 저 목소리 크고 힘도 세고 엄청 활동적이에요. 몸으로 하는 건 다 좋아해요. 제가 왜 사진을 찍게요? 카메라 앞에서만 있다가 잠시 짬이 나면 가만히 있질 못해 그래요. 연예인 되고 나서는 조심해요. 엄마가 늘 그러거든요. 이 직업은 실수하면 한순간에 공든 탐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항상 겸손하고 예의 발라야 한다고. 그런데 여기 오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서 너무나 좋아요. 언니랑 사장 아저씨한테는 저 생겨 먹은 대로 막 보여 줘도 될 거 같아서요.”

“어머 그렇구나~ 우리 앞으로 잘해봐요~


윤과 지나의 만남은 제법 훈훈했다.      



카페 다용도실의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G의 목공 작업실이다. 정사각형의 작업실은 아늑하다. 커다란 작업대가 공간의 반을 차지하고 각종 목공 장비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3단 나무 선반이 벽에 붙어 있다. 선반 옆은 그동안 주인장의 손을 거쳐 간 나무 소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선영은 들고 온 맥주를 작업대에 올려놓고 두리번거렸다.


“그새 물건이 또 늘었네.”


선영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동그란 스툴에 앉았다.


“오랜만에 한 잔해”


선영은 캔 맥주 하나를 건넸다. 

맥주를 받아 G는 선영을 마주 보고 작업대에 걸쳐 앉았다. 


“펑엉”

지하 작업실에 맥주 캔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선영은 맥주 든 오른손을 향해 들어 올렸다. G도 가볍게 응대했다. 


“크으으 시원하네!”


침묵이 흐르고 지하 작업실엔 두 사람의 목구멍으로 맥주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언니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지 않아?”


G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


“며칠 전에 언니랑 통화했어. 잘 있대. 목소리도 많이 편안하고. 오전에는 영어 배우러 다니고 오후에는 조카들 픽업하고 장 보러 가고 그렇게 지낸대. 주말에는 한인 교회에 나가고. 오빠 안부는 안 물어보데.”

“참 허무해.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라더니, 그렇게 사이좋던 언니랑 오빠랑 서로 너무 매정한 거 아냐?”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버린 G는 사포질을 시작했다. 선영은 우두커니 앉아 그런 오빠를 바라봤다.


선영은 남아있던 맥주를 들이켰다. 빈 캔을 발로 구겨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규칙적인 사포질 소리뿐 적막하다. 


“오빠 나 저번 주에 준이한테 다녀왔어”

G가 사포질을 멈췄다, 선영에게로 나가와 의자를 가까이 대고 앉았다. 

선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음 달이 준이 생일이잖아.”


G가 가만히 선영을 쳐다봤다. 가슴에 선영의 깊은 슬픔이 전해 졌다.


“오빠는 어떻게 견디는 거야.”


선영이 물었다. G는 선영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가슴에서 따뜻한 빛이 나와 눈물을 흘리는 선영의 가슴에 가 닿았다. G의 가슴으로 선영의 슬픔이 왔다 잠시 머물다가 환하게 사라졌다. 슬픔이 사라진 깊은 침묵. 


“하긴 우리 식구들이 좀 독하지. 아마 언니도 그래서 도망갔을 거야.”


남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싱겁게 웃었다. 


“주말에는 엄마 아버지 산소 가려고. 그래도 내가 젤 효녀지.”

“큰 언니랑 작은 언니가 전주에 한 번 다녀가래. 보고 싶대.”


G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한테 일 준 거 잘했지?” 

“망할 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또 툴툴해”

“윤이 사람 속 얘기하게 만드는 희한한 재주는 있지.” 


G가 빙긋 웃었다. 

선영은 위에서 윤이 부를 때까지 독백처럼 오빠에게 말을 걸다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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