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10년 만에 엄마를 보고 왔습니다. 내가 가족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형님은 어째 매번 다 알고 있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만요. 하하.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저를 다 이해해 주시는 거 아닙니까? 오늘은 제 살아온 이야기 좀 길게 할 겁니다. 제가 오늘 마음이 촉촉하니 좀 그렇습니다.
제가 워낙 부티 나고 귀티 나서 다들 금수저로 곱게 자란 줄 알아요. 그런데 저 무당 집 아들이었요. 우리 엄마가 경기도 일대에서 엄청 유명한 무당이었어요. 점괘도 잘 맞추고 굿도 잘하고 얼굴까지 예뻐서 내로라하는 대관고작, 재벌, 부잣집 마나님, 잘 나가는 연예인들까지 굿당이 늘 문정성시였죠. 돈은 무지하게 많이 벌었으니 부잣집 아들은 맞네요. 하하. 아무튼 엄마가 무당이라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앞에서는 다들 굽신거리는데 뒤에서는 얼마나 멸시하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 빠른 내가 모를 리 없었죠.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가 무당이니 어린 시절 어땠겠어요.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어요. ‘박 보살’ 이러면서 마치 점 보러 온 고객처럼 굴었어요. 매일 쌈질이었죠. 자격지심 때문인지 별일 아닌 데도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험한 말과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주머니에 돈은 많으니까 공부 안 하고 뒤에서 건들거리는 애들 몇 명 거느리고 다니면서 밥 사주고 영화 보여 주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중학교 내내 그렇고 지냈어요. 우리 박 보살이 신기가 영험해서 남들 인생은 쥐락펴락하면서도 자기 아들내미는 감당 못하겠는지 중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아버지한테 가라며 미국으로 쫓아냈어요.
아버지란 사람은 박 보살이랑 사랑해서 아들까지 낳았는데 내 여자가 알고 보니 신 내렸다니 같이 살기는 힘들었겠죠. 미국에서 자리 잡고 가정 이루고 잘 살고 있더만요. 제가 뭐 그리 반가운 존재였겠어요? 그냥 먹여주고 재워 주고 학교 보내주고 뭐 하숙집주인아저씨처럼 그리 대해줬습니다. 다행인지 뭔지 우리 아버지랑 결혼한 여자가 미국 사람이었어요. 나한테 엄청 쿨했어요. 그 집 애들도 그렇고. 뭐 내가 무당 아들인 거 아는 사람도 없고. 거기선 잘 지냈어요. 공부도 제법 하고 운동도 잘하고.
계속 미국에 살 수도 있었는데. 대한민국이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돌아가고 싶었어요. 우리 박 보살도 보고 싶고. 20살에 돌아와 공부 열심히 해서 경찰대 갔습니다. 제복 입은 경찰이 멋있었죠. 경찰처럼 나쁜 놈 잡는 데 힘쓰는 일 해야지 아니면 감옥 갈 팔자라는 박 보살 말도 영향을 좀 줬죠. 참 미국 살 때 내 이름이 토니 탁이었어요. 한국 가면 예전의 내가 아닌 토니 탁, 티로 살거라 했죠. 그래서 내가 티가 된 겁니다.
유명한 무속인 단골 중에는 경찰들도 많아요. 과학 수사를 표방하며 증거로 사건을 해결하는 직업이라지만 형님도 잘 아시잖아요. 나쁜 놈들 잡아들이는 직업에 동물적인 본능이 얼마나 중요한 질. 사냥감 찾는 맹수처럼.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방향이 증거와 다르거나. 도무지 오리무중 감이 안 올 때, 무당 찾아와서 조언 구하는 경찰 검사들 많이 봤어요.
그런데 형님! 나는요 경찰대 입학하면서 결심했어요. 절대 감이나 촉으로는 수사하지 않는다. 내 디엔에이에 무당의 신기가 흐르는 데 여기에 의존하는 순간 나도 박 보살의 길로 가게 된다. 그 이후 제법 유능한 형사로 살았습니다. 실적도 좋았고 구설수도 없었고.
10년 전에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잡아들였어요. 부인과 어린 딸을 살해한 혐의로. 나쁜 놈인 건 분명한데 명확한 증거가 없었어요. 용의자 풀어주고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어요.
놈이 범인인데, 잡아 감옥에 처넣어야 하는데. 놈이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악몽도 꾸고 먹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어요.
웃기게도 너무 힘드니까 박 보살을 찾아갔습니다. 놈이 범인이냐고 물으니 살인마가 풀려났으니 놈이 죽인 불쌍한 영가들이 억울해서 저승에도 가지 못한다며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고 합디다. 풀어 준 놈은 범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나 봅니다. 괜히 왔구나. 후회가 들었어요. 그 후로 10년간 발을 딱 끊었어요. 참 독한 놈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박 보살이 천도재를 지냈는지 이상하게 그날 이후 이상하게 괜찮아졌어요.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열심히 범인들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때 제가 형님이랑 처음 만난 거 아닙니까? 다단계 사기단 검경 합동 수사본부. 참 그때 저랑 형님이랑 손발이 참 맞아서 펄펄 날아다녔는데.
인생 참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해요. 하아!
형님도 아시죠? 3년 전 친모 살인 피의자가 자신은 결백하다고 취조실에서 손목 그은 그 사건 말입니다.
10년 전과 달리 3년 전 사건은 모든 증거가 피의자를 범인이라고 가리켰었죠. 하지만 어이없게 내 촉은 너무 강렬했어요,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그를 그냥 풀어 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위에서는 증거가 충분하니 빨리 구속영장 청구하라고 성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그 사달이 난 거였습니다.
취조 중 피의자가 사망했으니 경위서를 써야 하는데, 내 감이 맞고 증거에 치명적 오류가 있었나? 아니면 내가 틀렸고 피의자는 풀려나려고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쇼를 한 건가? 명확하게 에스라고 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 이제 더 이상 이 일은 할 수는 없겠구나 싶어 그렇게 일을 관뒀죠. 참 그때 형님도 준이 그렇게 가고. 우리 둘 다 참 힘든 시절이었네요.
저번 주에 그 사람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이제는 상관도 없는 일 있은데 참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날 비도 오고 여기와 형님하고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가는 데 박 보살한테 전화가 왔어요. 괜찮나며 한번 다녀가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보면 우리 박 보살이 영험하긴 합니다. 하하.
10년 만에 보는데 박 보살은 별로 늙지도 않았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주길래 실컷 먹고 물었어요. 그때 10년에 혹시 천도재 지냈냐고. 아이고 우리 박 보살 말이 천도재뿐 아니라 3년간 제사도 지냈다고 하네요. 아들내미한테 그 모든 공덕이 가라고. 게다가 그 살인자는 얼마 안 가 비명횡사했으니 더는 걱정하지도 말라고 합디다.
그 사람 천도재를 지내달라고 했어요. 그가 범인인 지 아닌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죄인이면 죽음으로 죗값을 치렀으니 구원받고 억울한 사람이었으면 달래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말이죠.
박 보살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오늘 박 보살이 웃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무당이 아닌 평범한 엄마의 정을 느꼈습니다.
세상에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박 보살이 진짜 영험하다고 해서 모든 걸 알 수 없고 제가 아무리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수사를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도 많았고요. 그냥 모두가 이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고 또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안심이 되었습죠. 그리고 박 보살이 그럽디다. 이제는 나쁜 놈 잡는 데 힘쓰지 말고 억울한 사람 도와주는 일 하라고.
오늘은 참 기분 좋게 취하네요. 형님은 제 맘 다 아시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