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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4

부모님 전상서

                                           

엄마 아빠!

한 달 지나면 내 발로 들어오려고 했어. 3주 만에 이렇게 큰일이 생겨 너무 놀랐어.

엄마 아빠 나 때문에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해. 그땐 잘 몰랐는데 내가 겁도 없이 큰일을 냈던 것 같아.     

엄마 주혜 알지?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애. 이사 가서 소식이 뜸했었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어. 엄마랑 둘이 사는 데 엄마가 새벽까지 장사하셔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대. 그래서 그 집에서 방학 동안 지내면서 주혜 이모네 분식집 일을 같이 도와주기로 했어. 주혜 엄마랑 이모한테는 부모님한테 허락받았다고 거짓말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바보였어. 엄마 아빠 간섭 없이 살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해서 다른 건 눈에 안 보였나 봐.      


주혜네 집에서 지냈던 일주일은 힘들었지만 참 재밌었어. 주혜 엄마가 새벽에 들어와서 자는 동안 나랑 주혜는 둘이 아침 해 먹고 주혜 이모 분식집에서 점심때까지 서빙했어. 그런 다음 집에 와서 주혜랑 그림 그리고 음악 듣고 저녁해 먹고 그렇게 지냈어. 그냥 내 힘으로 뭐든 한다는 뿌듯함 이게 제일 좋았어. 

그런데 일주일째 되던 날 저녁에 집 나가 몇 년 동안 소식 없었다는 주혜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 나타났어. 물건 마구 집어던지고 당장 주혜 엄마 데리고 오라고 소리 지르고 너무 무서워서 주혜랑 도망쳤어. 주혜 엄마가 이모 집에 가 있으라고 하는 데 나까지 갈 수는 없잖아. 갈 곳은 없는데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었어. 

집 나올 때 마구 솟아오르던 용기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엄마 아빠 볼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나는 거야. 비겁하지만 쭈니 아빠한테 도와 달라고 카페로 갔어.     


그때 카페에서 나오는 지나 언니를 봤어. 웃긴 데 가출한 사람끼리 통할 것 같아서 무작정 언니 차에 탔거든. 그냥 언니한테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조르면 들어줄 거 같았거든. 지나 언니는 말이 어른이지 나보다 할 줄 아는 게 더 없어, 운전 잘하고 돈 많은 거 빼고는. 혼자 현금 출납기에서 돈도 인출할 줄 모르고, 슈퍼나 마트 가서 장도 못 보고. 나 아니면 굶어 죽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제안했어. 나 며칠만 있게 해 주면 필요한 심부름 다 해주겠다고, 처음에는 집에 들어가라고 막 그러더니 막상 나랑 같이 있으면 재밌고 또 편리할 거 같았나 봐. 엄마한테 문자 하면 있게 해 주겠대서 함께 지낸 거야. 

     

그 이상하고 재수 없는 아저씨가 우리 사진 찍기 전까지는 정말 최고였어.

언니랑 별거 다 해봤어. 언니가 화장 안 하고 안경 끼고 모자 쓰고 평범하게 옷 입으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봐. 둘이 밤에 영화 보고 야간 개장 놀이동산에 가고. 새벽시장에 옷 구경 가고. 엄마랑 선영이 이모 나온 대학교 구경도 하고. 지나 언니 엄마 무덤도 갔었어. 언니가 너무 울어서 나도 그때는 엄마 생각이 나더라. 언니는 엄마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대. 엄마 있는 내가 제일 부럽대. 그런 말 들으니까 나도 괜히 눈물 났어. 엄마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거든.     


집 나가서 보니까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더라.

솔직히 내가 보기에 엄마 아빠 답답하고 꽉 막히고 재미없거든. 하지만 세상에는 진짜 형편없는 어른들이 많은 거 있지? 분식집에 오는 손님 중에 어리다고 나랑 주혜한테 명령조로 윽박지르면서 반말로 주문하는 어른 많아. 왜 이슬이가 알바를 배부른 애들이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는지 확 와닿더라니까. 주혜 아빠는 어떻고. 우리 사진 찍은 그 남자처럼 애들보다 무개념에 뻔뻔한 사람도 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이상한 소문내는 사람들까지.


나는 재수 좋게 돈 많은 지나 언니 만나서 집 나와서도 재밌었지만. 주혜는 아빠 피해서 엄마랑 지방에 아는 사람 집에 갔대. 당분간은 거기서 지내다 전학 갈 수도 있대.      


학교 밖 세상에는 공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다행이었어. 운전만 할 줄 아는 언니 대신에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은 내가 다 했거든. 하지만 괜찮은 어른들이 옆에 없으면 위험하고 무서운 것도 많다는 걸 알았어.      


그리고 돈 버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재밌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 내가 언니랑 여기저기 밤이며 새벽이며 구경 다니고 재밌게 노는 곳에서 누군가는 열심히 힘들게 일하고 있었어. 주혜 이모 분식집에 오는 손님들도 힘들게 일하고. 돈 벌기가 쉽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재미만으로는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 책임감과 인내심 뭐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봐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 예를 들면 학교 공부. 엄마 아빠랑 의논하기. 대화하기. 화나도 좀 참기. 행동하기 전에 잠시라도 생각하기 등등.      


여러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엄마 아빠 이번에 엄마 아빠 속상하게 하고 걱정 끼친 것은 용서해 줘. 

     

이번에 제일 좋았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쭈니 이후로 진정한 내 편을 만났다는 거야. 지나 언니. 나랑 너무 환상적인 파트너야.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둘 다 외동이라 말이 너무 잘 통하고. 뭣보다도 언니는 내 말을 진짜로 재밌게 잘 들어줘. 나도 언니가 말하는 거 너무 공감되고. 그래서 언니랑 이야기 무지 많이 했어. 밤새 이야기했던 거가 제일 기억에 남을 거야.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 낳아주고 키워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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