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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26. 2024

카페살이

카페는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나는 2층 선영이 방에 머물며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손님들은 들고나고 G는 아일랜드 바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윤은 점심때쯤 와서 자신이 하던 일을 하다 해가 질 무렵 돌아갔다. 선영은 전주 집에 내려가 소식이 없다, 티는 일이 바쁜지 카페 출입이 뜸했다. 지나 아버지가 다녀갔다. 면목이 없다며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2층 계단을 올랐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 없는 얼굴로 내려왔다. 조용히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잘 부탁한다며 돌아갔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일곱 시. G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몸이 피곤하다. 날씨가 춥다. 위풍이 센 주택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지나가 신경 쓰여 평소보다 보일러 온도를 높게 설정해 두긴 했었다. 건조하지만 방이 훈훈하니 좋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일어나셨어요?”


지나는 요리 하는 중이다. 


“새벽에 동네 한 바퀴 뛰었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같이 있을 때 하나한테 배웠어요. 즉석밥이랑 참치 통조림이 있길래 냉장고에 있는 양파랑 당근 썰어 넣고 죽 끓여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고 빨간 케첩을 잔뜩 뿌린 오믈렛이 식탁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나의 손놀림은 어설프고 표정은 밝았다.

따뜻한 죽과 오믈렛. G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차려 준 아침을 먹는다. 즉석 재료를 사용했는데 먹을 만했다.  


“하나가 진짜 야무지고 똑똑해요. 이런 걸 편의점에서 사다가 절 가르쳤어요. 남의 도움 없이 먹고살 수 있어야 인간 되는 거라며. 히히”


지나는 수다스럽고 명랑하고 산만스러울 만큼 활기차다.


“찬바람 쐬면서 신나게 뛰고 나니까 가슴이 뻥 뚫렸어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촬영장 가는 새벽에 차 안에서 한강을 보면 자전거 타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부러웠어요. 나도 달리고 싶다. 쌩쌩 달리고 싶다. 촬영장이 아니라 저기로 가야 하는 데하고, 오늘 소원성취했어요. ”    

 


지나가 온 지 10일이 지났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카페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윤은 점심때 와서 G를 도왔고 저녁에 돌아갔다. 가끔은 이 층에 있는 지나를 들여다봤다. 단골들은 늘 자신이 오던 시간대에 맞춰 다녀갔다. 선영과 티는 계속 소식이 없다.      


지나는 해뜨기 전에 일어나 달리기를 했다. 아침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달리기 나가기 전에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 놓고 돌아와서는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을 한 공기씩 먹었다. g의 누이들이 보낸 김장 김치와 김 계란 프라이가 반찬의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두부를 사 와 기름에 부쳐 먹는 날도 있었다. 지나는 밥을 참 맛있게 먹었다. 시리얼이나 빵으로 요기하던 G도 덕분에 따뜻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나는 라면을 좋아했다. 하루 한 끼는 라면을 먹는 날이 많았다. 전주에서 보내준 가래떡을 넣고 알맞게 익어 맛이 오른 김치를 큼직하게 썰어 곁들여 먹었다. 저녁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레시피로 찌개나 국을 끓였다. 생전 처음 끓였다는 참치김치찌개는 김치 맛 덕분인지 지나의 솜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법 맛이 있었다. 청소와 빨래도 매일 했다. 세상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처럼 집안일을 신나게 했다. 


자신만을 위해 완벽하게 조율되고 통제되던 G의 생활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소 소란스러운 일상의 방해꾼이 생겼지만 2층에 아침저녁으로 음식 냄새가 퍼졌고 활기와 온기가 흘렀다. G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기운이다. 은퇴설이 불거지고 선영과의 불화설이 터지고 바깥세상은 자신 때문에 여전히 야단법석이었지만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지나는 평온했다.       



2월이다. 카페가 쉬는 날이다. G는 지나의 성화에 처음으로 함께 새벽 달리기를 했다. 지나가 앞장을 섰다. 지나는 어느새 카페에서 나와 길상사까지 이어진 언덕진 주택가 골목길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깜깜한 골목길은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이 추운 새벽에 집 밖을 나온 사람은 없었다. 가끔 새벽 귀가를 하는듯한 차량이 골목으로 들어오거나 이른 외출을 하는 차가 큰길로 나가곤 했다. 젊고 건강한 지나는 잘 달렸다. 키가 크고 다리도 길어서 달리는 보폭이 가볍고 경쾌했다. G는 무리하지 않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코끝이 시렸지만 곧 몸에서 열이 나고 훈훈해졌다. 지나가 와 있는 동안 새벽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손님이 외출을 했으니 주인장은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니 일곱 시다. 지나는 돌아오자 세수를 하고 바로 주방으로 갔다. 가스 불을 켜고 어제저녁에 끓인 콩나물국을 데우고 사각 햄을 두툼하게 썰어 프라이팬에 구웠다. 냉장고에서 썰어 놓은 김장 김치를 꺼내고 네모진 밀폐 용기에서 구운 김도 꺼냈다. 마지막으로 방금 한 밥을 주걱으로 잘 섞은 후 소담하게 공기에 담았다.


“맛있겠다. 식사하세요.”


지나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갓 지은 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기름기 흐르는 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G는 제일 먼저 콩나물국을 한 수저 먹었다. 따뜻하고 개운했다. 


“진즉에 사장 아저씨랑 같이 나가는 거였는데. 운동하고 나니까 밥이 너무 맛있죠. 요리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오늘 카페 쉬는 날이라 하나가 작가언니랑 놀러 온대요. 다행히 학교 애들은 소문에는 별로 신경 안 쓴대요. 다음 주가 개학인데 반성의 의미로 집에만 있대요. 엄마랑 아빠랑 가출 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대요. 하나도 묻지 않아서 말을 안 하는 데 불편하대요. 차라리 꼬치꼬치 물어보면 속 편하겠대요. 조만간 자기가 먼저 얘기할 거래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면 너무 양심에 꺼리고 부모님한테 예의가 아니래요, 하나는 참 야무지고 똑 부러져요.”


지나는 밥상머리에서 아이처럼 조잘댔다. 하지만 며칠 째 소식이 없는 선영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들어만 주는 사람. 이곳을 자주 오는 단골들처럼 지나도 당분간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다 어는 순간 G에게 하는 말이 사실은 스스로에게 했던 자신과의 대화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카페의 많은 단골들처럼. 그들은 G가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위로받았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 실컷 수다를 떨다 자신의 진실을 스스로 말하고 들었을 뿐이다.  자신의 진실과 클릭되는 순간 그들은 위로받고 오랜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때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했다.      

G는 카페 주방과 화장실까지 대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마침 청소와 빨래를 끝낸 지나가 조심스럽게 카페에 내려왔다. 카페에 내려온 것은 이곳에서 지낸 이후 처음이다. 막 내린 진한 커피를 커다란 머그잔에 담아 주니 아이처럼 좋아했다.

오래 지 않아 카페 문이 열리고 하나와 윤이 나타났다. 


“언니!”


하나는 들어서면서부터 지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꼬맹이!!”


지나는 하나에게 뛰어가 서로의 두 손을 붙들고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했다.


“지나 씨 잘 지냈어요?”

“언니 오셨어요?”


지나는 윤의 인사에 머쓱해하며 답을 했다.


“쭈니 아빠 안녕!”


하나는 손을 마구 흔들었다. 지도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지나와 하나 윤이까지 웃었다.


“오빠 귀엽다. 나도 커피요~”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다.


“엄마 우리는 2층 갈게!”


지나와 하나는 후다닥 이층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빠 선영이 연락이 안 돼. 사무실은 아예 전화도 안 받아. 사업을 접으려나? 오빠가 전주 언니들한테 문자라도 좀 해봐. 근데 지나 씨는 얼굴 너무 좋다. 밖에서는 난리 났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너무 말짱하네. 하긴 우리 하나도 속 편해요. 잘 먹고 잘 자고 티브이 보고. 둘이 아주 똑같네요.”


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층을 힐끔 쳐다봤다.


“근데 오빠 세상일이 웃기지. 오늘 아침에 한류 스타 에이가 팬을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났어요. 인터넷이 난리야. 지나 일은 자연스럽게 묻힐 것 같아. 지나랑 하나한테 다행이지. 선영이는 어쩌고 있는지 답답해요. 그날 지나 말에 상처 많이 받았을 텐데. 걔가 원래 상처받으면 화내잖아요. 센 척만 하고. 화를 내니까 위로는커녕 무섭다고 가까이도 안 가지. 상처받은 선영이 맘을 누가 알까? 어디 가서 혼자 울 거야. 그러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나타나겠지. 아휴 바보 같아!”     


지나와 하나가 이층에서 점심상을 차려 놓고 지와 윤을 불렀다. 메뉴는 콩나물을 넣고 끓인 떡 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층에서 함께 밥을 먹기는 준이 죽고 나서 처음이다. 준은 콩나물과 떡을 넣어 라면을 끓이곤 했다. 준이가 끓인 라면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하나였다. 지는 가슴이 울컥했다.

점심을 먹고 지와 윤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일주일 동안 카페에서 쓸 식자재와 지나가 부탁한 반찬거리와 과일 등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윤의 단골 분식집에서 만두와 찐빵을 샀다. 지는 오래간만에 가족과 함께 지내는 아버지의 정을 느꼈다. 간식을 먹고 나자 해가 졌다. 하나는 마지못해 윤을 따라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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