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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ug 14. 2021

[개샛길]사랑의 파편

개-샛길 프로젝트 네 번째, 지흔 이야기

이 글은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개-샛길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압박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샛길로 빠져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까지 주위 사람 100명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글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극적 장면임을, 삶이 풍랑 같다고 느끼는 이에겐 결국 삶이란 조각들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걸 전달해 따스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표현으로 글이 누군갈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제 주위가 되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사랑의 파편


어느 날 문득 그가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관계한 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마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한참 뒤일 것이다. 똑같은 온도와 시선으로. 그는 나와 그 사이에 생긴 자그마한 섬에서 날 기다렸다. 


평행선으로 달리는 우리에겐, 잠깐 머물 수 있는 작은 섬이 있다. 오래 머물 순 없지만 잠깐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자그마한 섬은 각자 삶의 굴곡에선 살짝 비껴간 위치에 자리해 있다. 삶의 굴곡이 이야깃거리가 되긴 해도, 굴곡을 통째로 짊어지고 갈 순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는 섬에 가기 위해 굴곡을 잠깐 내려놓았을 것이다. 


늘 있을 '그' 자리를 마련했단 건 두 타인 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한 공간이 생겼단 거다. 그 공유는 익숙함을 만들어내고, 기어코 서로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낯선 이에게 안전함을 느끼고 사랑의 파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년 정도의 시간이 나에겐 참 뜻밖이었다. 그에게서 찾아낸 사랑의 조각을 난 '기다림'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사실 사랑이란 흔한 얘기다. 아마 그건 사랑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실재하다는 걸 확인하고 실체를 마주할 때 우린 환희할 수밖에 없다. 순수함에, 순간의 아름다움에. 나 역시 사랑을 2차 가공하지만, 이 글에 사랑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담을 수 있길 희망한다. 내가 그에게서 사랑의 파편을 발견한 것처럼 글을 읽는 이도 그러하기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조각을 처음부터 발견한 건 아니었다. 그가 날 기다렸단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의아했다. 수많은 사람이 작은 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스쳐 가며 섬을 방문하는 시기가 엇갈리기도 한다. 기다림 뒤에 만남이 있을 확률은 낮다. 기다림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는 무엇일까. 시간이 의문에 답을 줬다. 


난 마음엔 주면 줄수록 대상에 매이게 되는 일종의 법칙이 있단 걸 알게 됐다. 우린 매주 같은 시간에 만났는데, 그는 점점 더 열렬해졌다. 열렬해지더니 어느 순간 높아진 온도를 지속하기 시작했다. 나는 온도의 변화를 그의 질문에서부터 알았는데, 열렬함은 관심을 섬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를 만나는 시간으로부터 종종 위로를 받았다. 고민의 해결책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 고민에 대한 질문을 받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섬세한 질문이 위로가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의 열렬함은 선택에서 비롯됐다. 대상을 사랑하기로 한 그의 선택에서. 그의 변화가 대상의 태도나 매력과 무관하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마음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의 법칙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주는 행위 뒤엔 받는 행위가 이어지는 게 매끄럽다. 만약 주는 행위 뒤에 끊임없이 주는 행위만 반복됨을 안다면, 그 누가 쉽게 주길 시작할까. 


어쩌면 마음의 법칙은 숨겨져 있는 편이 좋겠다. 하지만 몇몇은 마음을 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하다. 쉽사리 아무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심지어 공공연하게 법칙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한 책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다. 

난 지흔을 보며 그가 꽃을 닮아간다고 생각했다. 비단 그의 직업이 플로리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은 밀밭 색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왕자를 기다린다. 장미꽃 자신의 기다림에서 어린 왕자가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 그가 "그 꽃 한 송이는 너희들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라고 말할 때까지. 바라보는 것을 닮아간다면, 그는 바로 어린 왕자의 한 송이 장미꽃이다. 


내가 처음 '기다림'을 사랑의 조각이라 생각지 못한 건 내 사랑은 기다림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랑엔 여러 조각이 있다. 기다림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러한 사랑도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시작되는 사랑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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