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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Nov 15. 2024

아들과 다시 친해지기

22개월 아들과의 관계 회복하기 

며칠 전 아들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 싫어 아니야 저리 가" 꽤나 충격이 컸다. 아들 앞에서 가짜로 우는 척하다가 진짜로 눈물이 터질 뻔했다. 뽀로로를 틀어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고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앉아서 그간의 우리들의 행동과 선택들을 돌아보며 해결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암 선고를 받은 그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치료받고 검사하고 그러느라 남편과 아주 정신없이 보냈고 그때마다 아들은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아들이 우리들을 찾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있어주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라서 아무것도 모를 때라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몇 개월 후 생각보다 내성이 빠르게 왔고 다음 약 처방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집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약 한두 달 동안 육아는 손도 못 대는 동안 평일이고 주말이고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이 발 벗고 나선 덕분에 나는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른 어느 순간 아들이 일상 속에서 나를 찾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나 모든 걸 아빠와 함께하고 싶어 했고 "아빠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으며 아빠가 잠시만 눈에서 안 보여도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처음엔 그냥 '아빠가 엄청 좋은가보다.'라고만 생각했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아이에게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별생각 없이 그저 나 혼자 편하게 지내는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엄마인 나는 아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일상생활도 무리 없이 지내고 있다. 그래서 내년엔 나도 다시 일을 해보아야겠다고(가족 모두가 반대했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남편과 같이 하루를 보내지만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면(올해가 마지막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나도 한 푼이라도 생활비를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다. 근데 그깟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내 아들과의 관계가 어긋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차 싶었다. 아들은 몸도 마음도 생각보다 빨리 컸고 정신을 차려보니 많이 변해있었다. 이래서 아이 어릴 적에는 아이와 보내는 매 순간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남편이 복직하기 전까지 나와 아들의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해야 했기에 우선적으로 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친정 부모님이 매일 퇴근하고 집에 오셔서 두어 시간 정도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밥도 챙겨주시고 아이와 놀아주시고 했는데 사실 좀 힘들긴 해도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당장에 너무 편하니까 으레 당연하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면서 육아에 일관성도 없어지고 집 안에 이렇다 할 규칙도 지침도 없는 상태로 얼레벌레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부모인 우리가 중심을 잡고 올바르게 생활하도록 지도했어야 했는데 사공이 많다 보니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고 아들은 떼만 쓰는 어리광쟁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와의 시간을 늘리면서 일관된 육아를 통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하고 특히 엄마인 내가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기로 했다.   


요새 아들은 아는 것도 많아지고 말도 엄청 늘었다. 보고만 있어도 이뻐 죽겠는데 왜 여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나 싶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하는 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가 아픈 상황을 방패 삼아 그 뒤에만 숨어있었다. 반성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어떻게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준다고 했은니 아들을 믿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빠랑 엄마랑 다 같이"라고 말해주는 날이 금방 오겠지. 나는 오늘도 아들과 다시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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