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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다 Sep 02. 2024

누구나 이벤트는 있으니까

8. 잘못될 확률 같은 건 없다

9주 차 태아가 8주 차 크기라고 한다.





머릿속엔 아기가 작다는 선생님의 멘트만 맴돌았다. 바라던 난임센터 졸업이 코앞인데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생긴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던 선생님의 말씀과,

걱정보다는 행복을 선택하겠다던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온몸이 걱정으로 둘러싸여 버렸다.





진료실에 앉아 더 많은 질문을 해본들 과연 9 태아의 미래여부를 선생님이 답해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확인받고 싶은 마음을 꽁꽁 붙들어 맨 채로 걱정 한 짐을 업고 한없이 무거워진 채로 진료실을 나왔다.





단지 작은 아이라면 걱정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인공수정은 자연임신과 다르게 수정 날짜가 명확히 나와있어 주차가 정확한 편이다. 별일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태아가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고 자라는 임신초기인데 그 차이가 일주일이면 발달에 좋은 사인은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서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병원에 다녀온 그날은 수많은 걱정과,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자기 위로를 하며 힘겨운 하루를 보냈다.

2주 후가 병원 가는 날인데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2주를 기다릴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아기크기 확인을 위해 다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예약을 해보기로 했다.





이전에 기형아 검사 고위험군 산모들이 전국에서 몰리는 유명한 병원이 우리 집 근처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게 기억났다. 단지 초음파를 보는 거지만 동네에 좋은 병원이 있다고 하니 잘된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 후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하니 예약은 몇 달 치가 다 찼고 내일 오면 기다렸다가 진료를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다. 일주일간 아기가 얼마나 컸을지 확인이 필요했는데, 일주일 후는 휴가기간이라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다음날이라도 방문하기로 했다.





병원은 집에서 도보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병원을 조금 설명하자면, 몇 가지 기형아검사  융모막, 양수 검사라는 것도  있다. 이 검사들은 일반 피검사(선별검사)와는 다르게 아기에게 직접 침투하여 조직을 검사하는 확진검사이다. 융모막 검사는 유산의 위험이 있어 아무 데서나 할 수 없고 반드시 경험 많은 의사를 통해서만 진행이 되는데 그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전국에 몇 안 되는 병원이었다. 





명성답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예약이 안된 터라 많이 기다려야 해서 그런지 1인 회복실 같은 곳으로 안내해 주시며 편하게 기다리라고 배려해 주셨다.

진료는 검사까지 이어해서 그런지 한 분 한 분 보시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책(그 와중에 걱정을 다스려보겠다고 1회독을 했던 '자기 관리론'을 들고 갔다)도 한 권을 들고 갔지만 도저히 읽히지가 않았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간혹 유쾌하신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도 들렸고, 참 다행이라고 웃는 부부도 있었다.  누구는 오열했고,  누구는 오열하는 그들을 달랬다.





이 병원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깊고 길게 마음 졸이며 아파하며 찾아왔을 것이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모두가 건강한 아기를 만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3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간단한 신상파악 후 선생님은 가장 먼저 우리 아기의 태명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설 때까지 내도록 '열무'라는 태명으로 아기를 언급해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감사했더랬다.





일단 자초지종 설명을 드리고 초음파를 보았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일주일이 늦었고, 이 병원에서는 5일이 늦었다. 이틀 정도 차이는 측정하시는 선생님들마다, 아기의 자세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수치였다.





오늘 내가 병원을 방문한 이유, 아기가 대략 일주일가량 늦다는 것이 확인 된 셈이었다.





선생님께 물었다.


"이렇게 오는 산모들도 있나요?"





"다른 산모들은 상관할 것 없어요. 채원 씨만 보세요. 확률만으로 아기를 속단할 수 없어요. 인공수정 성공률은 10%~15%이지만 채원씨 한번만에 됐잖아요. 채원씨에게는 열무의 확률은 그저 100% 일뿐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가 고3인데 내가 한시도 빼놓지 않고 계속 걱정만 하고 있다면 아이도 나도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겠죠? 이제부터 채원 씨는 걱정 없애는 연습을 할 겁니다.


산모들은 초음파 기계를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이 기계로 9주 된 아이의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알아도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물론 열무가 건강한지 안 한 지 지금으로서는  당연히 알 수 없습니다.


인공수정  도전에 임신이 된 거면 0.5%도 안 되는 확률로 기적처럼 생긴 아기죠? 더군다나 만 35세 이상 노산은 8주 이전까지 유산확률 30%가 넘는데 지금 9주이면 열무는 너무나 잘해주고 있는 거예요. 열무엄마인데 본인 아기를 의심하면 되겠어요? 그게 무엇이든 확인하려 들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을 즐기세요!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는데 무엇을 해도 웃음이 나야 정상아닌가요? 이런 귀한 시간들을 인터넷 정보들 찾아보면서 걱정으로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매달 평균 4~6명이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아가요. 채원 씨는 현재 9주이지만 보통 이 진단명을 진단받기까지 20주가 걸립니다. 그분들은 아기의 태동도 느끼고 있어요. 누가 그 마음을 헤아릴 수나 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열무도 벌써부터 엄마가 걱정만 하고 있길 바라진 않을 거예요. 자~ 더 궁금한 거 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덕분에 2주 후 다음 검사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편안할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의사를 만났다기보다 스승 같은 철학가 한 분을 뵌 느낌이었다. 힘든 마음으로 방문한 임산부들을 한  한 명으 진심으로 대하시 음성만으로도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정성스러운 분이셨고, 대단하신 분이셨다.

마음속으로 다지고 다져도 안되었던 것들이 선생님의 말씀들로 제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걱정만 하고 있지 않았다.

늦어진 일주일을 채울 수는 없어도 이제부터라도 잘 따라가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몸에 좋은 음식들만 골라서 먹었다.

가족모임에도 갔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 우리 열무가 나에게 온 이상, 것은 우리만의 백분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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