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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다 Sep 09. 2024

있는 힘껏 돌려대는 긍정회로

10. 아직은 괜찮고 싶은 기다림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기 배 둘레 쪽으로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보여요. 물이 차있어 보인다는 것은 아기 배 쪽이 부어있다는 뜻이에요. 지금은 목투명대 볼 시기가 아니긴 한데, 목과 등 쪽이 부어있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보려고 해도 아기가 도저히 자세를 바꿔주질 않네요. 최대한 이쯤일 것이다 해서 재보면 2.7mm 정도 나옵니다. 목투명대는 2.5mm까지 정상범위로 보고 있고, 11주에서 12주 사이가 검사 시기니까 다음번 진료 때 산부인과에 가서 정확하게 다시 재보세요."


"??... 네...??!! 물이 차 있다고요? 왜 그런 거예요?"


"원인은 밝혀진 게 없어요. 기형일 확률도 있고, 다음번에 을 때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좀 걷다가 다시 와서 볼 수 없을까요? 그럼 아기 자세가 바뀔 수도 있고..."


"지금은 투명대 잴 시기가 아니라 봐도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일단 나가서 이야기할게요."





초음파실을 나와 진료실에 앉았다. 잠시 적막감이 흘렀다.


"쉽지가 않네요. 올 때마다 이벤트의 연속인 것 같아요."

내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


"그렇죠, 다음에 왔을 때 돌아올 수도 있고 하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저희 병원 산부인과로 전원 하신다고 하셨죠? 제가 산부인과 선생님이 보실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놓을게요."


"걱정한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대로 안 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물이 찼다는 증상이 다른 분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일인가요?"


"자주는 아닌데 가끔 있긴 해요."


다른 때보다 초음파를 엄청 꼼꼼히 봐주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좋은 사인이 아니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무지해서 크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고, 그저 남들도 다 겪는, 지나가는 이벤트 정도일 것이라고만 여겼었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만 챙겨 왔던 도넛과 쿠키들이 민망하게 놓여있었다.

그동안 나를 담당해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을 전했고, 순산하시라는 인사를 뒤로한 채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나는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이벤트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덕분에 진료실에서 그 어떤 효용성 있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저 답답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 아기의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진단명은 태아 수종 또는 낭성히그로마인 것으로 보였다. 관련자료가 많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0.01%~0.02% 태아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카페와 블로그 글들을 찾아 들어가 보면 대부분 예후가 좋지 않았다.


입에 담기도 무섭지만 다수가 뱃속에서 심장이 멈추어 태어나지 못했고, 어찌어찌 24주(태아치료가 가능해지는 시기)를 버틴 태아들은 태아치료를 받아가며 태어나도 몇 가지의 기형을 동반한 경우가 많았다.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글도 몇 개 있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래서 다수의 의사들은 살아도 건강하지 못할 거라고 미리 포기를 권해 보였다.


정말이지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나를 미치게 하는 소리들만 적혀있는 것 같았다. 금세 눈물이 차 오르더니 뚝하고 떨어졌다. 가혹한 현실에 미어지는 가슴을 잡고 제어가 되지 않는 눈물만 흘렀다.


그 후로 나는 시간시간마다 아기가 내 뱃속에서 심장이 멈추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는 혼란해지려는 정신을 겨우 겨우 다잡아 보았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아직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우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점검했다.


1번. 융모막 검사 선택.

내가 그 병원에서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난번 초음파를 보기 위해 다녀왔던 우리 동네 유명한 산부인과 예약이 불가피해 보였다. 태아 기형아 검사시기에 맞추어 융모막 검사를 예약했다.


2번. 기다리기

그리고 나에게는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확인받으려 하던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내 기다림이 조금 덜 힘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함이 결국 열무를 위함일 것이다.

열무를 위해서도 나는 조금 더 괜찮게 기다려야 했다.





또다시 2주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에 떠도는 글보다는 신뢰가 가는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관련 논문들을 찾아 읽고 지난번 초음파를 보러 다녀왔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섭렵했다.


선생님 블로그에 적혀 있는 글 일부이다.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바로 폐암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건조했거나, 음식을 빨리 삼키는 것 등인 원인입니다.


후경부 투명대가 두꺼운 경우 많이 불안하고 걱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융모막검사도 하고, 미세결실 검사도 하고, 초음파 검사도 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공연히 자신의 아이를

중환자로 만드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평가나 판단을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랬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우리 열무는 조금 달리 보이는 소견을 들은 것뿐이었다.





2주 후 우리 열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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