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Oct 23. 2022

성실한 바보의 등장

남편이 골프를 시작할 때 바로 필드에 나가지 않았다. 시아버지에게서 쓰지 않던 골프채를 물려받고 시부모님이 다니고 있던 연습장에 등록했다. 그리고 연습장에 상주하고 있는 티칭프로에게 레슨을 받았다. 레슨을 받고 배운 동작들을 몸과 머리로 기억하며 혼자 연습을 하고 다시 레슨을 받고 연습하고를 반복하며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았다. 주 3회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 그리고 그 뒤 6개월 동안 혼자서 연습했다. 나보다 운동 신경이 좋은 남편이 골프장에 나가기 전에 1년 이상 연습을 했다면 나는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의 연습이 필요할 테다. 시부모님이 다니는 연습장을 가고 싶지 않다. 집에서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돈만큼이나 중요한 게 나의 개인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에서 오고 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친절한 프로에서 레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는 언제나 마음을 찌르는 지적보다 따뜻한 온도의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뒤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마침 얼마 전 골프를 시작한 지인의 추천을 받고 같은 연습장으로 등록했다. 연습장 이용과 레슨을 함께 받는 패키지를 선택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레슨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사장님의 영업에 설득되어 덜컥 6개월을 한 번에 결제했다. 그래야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까. 시설이 좀 낙후된 단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작심삼일의 법칙이 이번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면 시작했다가 할인이 의미가 없다.


운동을 시작한 지 2주 정도가 흘렀다. 연습장에 도착하면 복도의 락커에서 등록할 때 받았던 연습용 장갑을 꺼낸다. 연습장으로 들어와 비치되어있는 골프채 중 7번 아이언을 꺼내 들고 빈 좌석으로 간다. 손에 장갑을 껴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목을 좌우로 돌려 원을 그려보고 손목과 발목을 돌려본다. 2021년 07월 15일. 연습장에 온 첫날 프로에게 배운 한 동작을 반복한다.


다리를 어깨만큼 벌린다.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골반을 접는다. 상체는 곧게 편 상태로 앞으로 약간 숙인다. 몸의 중심을 발 앞꿈치에 둔다. 양팔을 겨드랑이에 딱 붙인 상태에서 팔을 무릎으로 쭉 뻗는다.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는다. 7번 아이언 채를 왼손이 채의 위쪽에 위치하고 바로 그 밑에 오른손이 이어지도록 잡는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어깨가 팔이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어깨가 밑변인 이등변 삼각형이다. 척추를 축으로 몸을 고정한다. 왼쪽 어깨를 앞으로 오른쪽 어깨를 뒤로 돌린다. 채가 몸의 오른쪽 보낸다. 다시 오른쪽 어깨를 몸 앞으로 돌리고 왼쪽 어깨를 몸 뒤로 돌리다. 채는 몸의 왼쪽으로 보내진다. 채를 가볍게 흔드는 느낌이면 좋다. 그동안 하체는 고정되어 있다. 마치 메트로놈처럼 팔을 좌우로 흔들어 바닥에 놓여있던 공을 채로 맞춰 몸의 왼편으로 가볍게 날려 보낸다. 몸에 과도하게 힘을 줄 필요는 없다. 골프를 시작하면 처음 배우는 일명 똑딱이 자세다.


연습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나면 프로가 다가온다. 프로는 연습했던 동작을 보여달라고 한다. 똑딱이가 얼마나 몸에 익었는지 확인한다. 프로가 내 몸 구석구석을 유심히 관찰한다. 고쳐야 할 동작을 찾아내기 위해서. 서너 번의 똑딱이를 반복하고 나면 프로는 나를 타석에서 내려오게 한다. 그리고 본인이 타석에 올라서 설명과 함께 몸소 시범을 보여준다. 나의 잘못된 동작을 조금 과장해서 따라 보여준 뒤 비교가 되도록 바로 이어서 올바른 동작을 보여준다. 그리곤 우리는 다시 자리를 바꾸고 방금 설명 들은 부분을 신경 써서 전과는 미세하게 달라진 동작을 해내야 한다. 프로가 만족할 때까지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한다. 물론 15분 정도의 레슨 시간 동안 프로에게 그날의 OK를 받지 못하는 날도 있다. 오늘은 레슨이 끝나기 전에 용기를 내어 프로에게 질문을 건넨다.

"프로님, 6개월 동안 똑딱이만 반복한 사람도 있었나요?"

"지금까지 그런 바보는 없었어요."

프로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한다.

"... 그 바보 여기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인다. 머리로는 프로의 설명을 알겠는데 내 몸은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인다. 아이들이 등원하는 평일엔 매일 출석한다. 동작은 좀처럼 변화가 없다. 오늘보다 내일 더 성실하게 바보가 된다.


[잠깐 골프 용어]


어드레스 : 공을 칠(스윙) 준비 자세로 생각하면 쉽다.

공을 치기 전 자세를 잡고 클럽(골프채)을 공 뒤 땅에 댄 자세를 말한다.



이전 03화 진심을 감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