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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2. 2022

진심을 감춘 시작

2017년 12월 첫째의 첫돌까지 서울에서 보내고 연말에 우리 세 식구는 마산으로 이사했다. 일하지 않던 나는 서울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유치원에 대기를 걸어 놓고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아이보다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입소가 우선되었다. 이사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대기 등록을 하려 문의해보니 바로 입소가 가능하다고 했다. 마산으로 이사가 나쁜 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는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남편은 바빴다. 업무차 전주로 출장을 가서 일주일에 한 번 또는 이주일에 한번 집에 왔다. 아침에 일어나 등원 준비를 하고 등원시켰다. 하원 후 아이가 잠들 때까지 혼자서 육아를 담당했다. 아이를 재운 후에는 침대를 빠져나와 남은 집안일을 했다. 친구 한 명 없는 새로 자리 잡은 지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 아이는 예쁘지만 딱 그만큼 육아는 힘들었다. 어쩌면 남편은 아내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는 과정 중에 수시로 우울감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울감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게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행복한 상상을 했다. 그중에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실행했다. 시부모님도 친정부모님도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게 아니냐며 걱정하셨지만 만약 하루 종일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냈다면 나는 버티지 못하고 우울감에 침몰했을 것이다. 아이가 등원한 동안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었다. 꽃을 좋아하지만 꽃꽂이에는 영 소질이 없는 한 사람이었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모를 것만 같았다.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매일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첫째와 둘째는 성향과 기질이 달랐다. 첫째 육아를 통해서 얻었던 팁이 둘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육아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에 대해 매일 깨닫게 해 줬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하나도 아니고 아이는 왜 둘이나 낳았을까 자책하는 순간도 있었다. 체력적으로 피곤한 날이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 확률이 높아졌다. 건강도 챙길 겸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왕 시작할 운동 격렬하게 움직이고 많은 땀을 흘리고 싶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던데, 육아를 하면서 쌓이는 필연적인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땀으로 내 몸속의 노폐물과 함께 배출하고 싶었다.


SNS를 팔로잉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던 모델이 있다. 모델을 하면서 요가를 한다. 취미를 넘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가 강사로도 활동했다. 길고 가는 팔다리를 유연하게 뻗고 고난이 동작을 평온한 표정으로 해내는 그녀가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요가원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 척추뼈가 휘어서 영화 <반지의 제왕> 속 '골룸' 같아 보인다는 놀림을 받던 몸은 유연하지 못했다. 강사가 새로운 동작을 시범 보이며 따라 하라고 할 때마다 나는 난감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동작을 해낼 수 없었다. 평소에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을 수도 없는 몸이었으니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강사는 내게 다가와 자세를 수정해주며 동작을 완성시켜 주려 애썼다. 강사분의 나에게 집중할수록 다음 진도는 미뤄졌다. 강사가 내 옆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수강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나의 몸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다른 수강생들 더 많은 동작을 배워 볼 기회를,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미안했다. 등록했던 한 달만 겨우 다니도 재등록은 하지 않았다. 요가는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새롭게 테니스를 시작했다. 라켓이 공을 맞출 때마다 울리는 경쾌한 소리. 코트를 여기저리 뛰어다니며 겨드랑이를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라켓을 쥔 팔로 공을 맞추기 위해 손을 쭉 뻗어 올리는 동작. 요가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편에게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창원에 인기 좋은 테니스센터에 등록해서 레슨을 받고 싶다고. 센터 홍보글에는 강사들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나보다 어려 보였고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근육으로 터질듯한 몸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그 강사들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테니스 대신 골프를 배워서 운동 친구가 되자고 꼬셨다. '골프 그거 뭐 땀이 나긴 해?'라고 생각하면서도 골프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골프를 못 치는 나를 빼고 시부모님과 함께 라운딩 가는 남편이 정말 꼴 보기 싫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싫어라는 마음이 내겐 언제나 더 강력하다. 시가 붙은 가족과 함께 운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나 빼고 셋이서 운동 갈 때 마음을 좀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남편에게 숨긴다. 그냥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배우고 싶었던 테니스를 포기하고 골프를 시작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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