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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2. 2022

4인 플레이


"니 골프 칠 줄 아나?"

집무실에서 통화를 마친 상사가 나에게 물었다. 임원의 지시대로 예약해 두었던 토요일 1부 라운딩. 라운딩 전 5일까지 예약 취소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취소가능기한이 지났다. 골프는 보통 4명이 함께 하는 운동인데(3인 플레이가 가능한 골프장도 있지만 4인 필수인 골프장도 있다.) 동반자에게 일이 생겨서 새로운 멤버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취소가능기한이 지난 후에 예약을 취소하게 되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원하는 시간에 예약을 잡을 수 없다.

"아니요."

설마 평사원인 나를 데리고 진짜로 라운딩에 가실 생각이었을까? 나는 내가 골프를 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휴일 아침. 6 시대 라운딩을 위해 경기도에 위치한 골프장에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할 거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휴일 아침잠을 반납하는 건 둘째로 치고 운전도 못하는 내가 당연히 차도 없는 내가 그 새벽에 경기도 외곽으로 어떤 방법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무사히 시간에 맞춰 골프장에 도착한다고 해도 문제다. 나는 공치면서 비서의 업무까지 수행하게 될 게 뻔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싫다. 골프를 배울 수 없었던 여건에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골프를 배울 마음도 없었던 과거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나는 직급이 높은 순서부터 이번 주 주말 라운딩이 가능한 팀장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라운딩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팀원은 많았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일을 그만두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긴장상태(퇴근할 때면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내 휴대폰으로 받을 수 있게 착신 전환을 하고 퇴근했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모든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받아야만 했다.)가 지속되는 상황을 떠나 좀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어쩌면 기혼 여성이 재취업될 확률은 미혼일 때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를 갖게 되었고 복직은 무기한 보류되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워킹맘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외벌이로 살아가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을 느끼고 변화를 생각했다. 우리는 서울의 신혼집을 정리하고 시가가 있는 마산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싫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남편의 의욕을 꺾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다. 시부모님과 우리는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게 되었다. 남편은 시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며 함께 일하게 되었다.


마산에 자리를 잡은 지 햇수로 3년 차. 허니문 베이비는 4세가 되었고 그 해 봄 우리 가족에게 둘째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입덧이 심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첫째는 미운 네 살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일 때문에 골프를 배우기로 했다고 시아버지이자 사장님의 의견이라고 했다. 이쯤에게 첫째 임신을 하고 먹덧(위가 비면 입덧이 심해져 조금씩 자주 계속 무언가를 먹어야 했던 시기)으로 고생하는 아내 두었던 나의 남편의 과거가 떠올랐다.


남편은 아침을 원래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새벽에 깬 나는 남편 출근길에 집 밖으로 따라나섰다. 혼자서 맥모닝을 사 먹었다. 출근한 남편은 회사에서 점심을 먹었고 나는 점심도 혼밥을 해야 했다. 갑자기 쌈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산부란 원래 먹고 싶은 게 갑자기 너무나 강력하게 떠오른다. 검색해서 찾은 처음 방문한 쌈밥 집은 차돌박이를 구워 먹어야 했다.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나는 혼자지만 뱃속에 아이까지 2인이니까, 당당하게 차돌박이 2인을 주문하고 얇은 차돌박이가 타지 않게 불판에 부지런히 구워서 야무지게 먹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함께 저녁은 먹어주겠지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바람이었다. 남편은 갑자기 퇴근 후 구민체육센터 PT 수업이 듣고 싶다며 등록했다. 운동을 하는 김에 식단관리도 하고 싶다며 저녁을 먹지 않고 닭가슴살을 먹겠다고 했다. 나는 저녁까지 혼밥을 해야만 했다. 삼시세끼 혼밥을 하는 것도 서럽고 하루가 다르게 배는 불러오면서 살도 찌고 튼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내 몸을 보며 우울했다. 운동을 마치고 땀을 흘린 뒤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복근이 생긴 것 같지 않냐며 상의 걷어 올렸다. 과거의 남편 눈치 챙겨!


그랬던 남편이 또. 이번에도 평소엔 하지 않던 운동을 아내가 임신해서 배가 부르고 살이 찌고 입덧으로 힘들고 우울한 나날에 혼자서 골프를 배우겠다니, 이런 만행이 있나. 곧 둘째도 태어날 텐데. 공치러 가면 애 둘은 나 혼자 보라는 말인가? 아니지 나는 절대 보내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이번에도 그래 둘째 신생아 태어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생각했다. 시아버지에게 내가 지금 너무 우울하니 남편 운동 시작하는 꼴은 못 보겠다며 폭탄을 터트릴 의욕도 없었다. 남편은 2019년 10월 28일 첫 라운딩을 갈 수 있었다. 멤버는 시부모님과 남편 이렇게 셋이었다. 3인 플레이가 가능한 골프장이었다. 내 예상대로 남편은 필드에 처음 경기를 한 후에 둘째 육아를 돕는다고 라운딩 갈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21년 여름, 서울에 살고 계신 시숙이 윗동서와 조카들을 두고 혼자 시가로 내려온다고 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모두 골프장 1부 시간대에 예약을 했다고 했다. 그럼 시부모님, 시숙, 남편 이렇게 넷이서 운동을 가고 나는 주말 동안 두 아이를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말? 골프를 못 치는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4인에서 제외되었다. 아니 뭐, 내가 부모 입장에서 두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지는 않겠는데 이틀 연속으로 며느리에게 독박 육아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골프를 배울 수 없었던 여건이 싫었다. 과거의 나 골프 안 배우고 뭐 했어!?


[잠깐 골프 용어]


골프 1부, 2부, 3부로 나뉜다. 보통 1부는 06시 대 ~ 08시 대, 2부는 10시 대 ~ 12시 대, 3부는 14시 대 ~ 16시 대로 생각하면 쉽다. 골프장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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