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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5. 2022

골프에 미칠 수 있을까?

내가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고 골프를 시작했을 때, 남편은 기존에 다니던 연습장 이용권이 만료된 상태였다. 만료된 지는 좀 되었는데 일이 바빠서 연장하지 않고 운동을 쉬고 있었다. 연습장에 등록한 다음 날 남편이 바쁜 일이 끝났다며 나를 따라 연습장으로 나섰다. 남편은 하루 이용권을 구입하고 연습했다. 남편을 내 앞 타석에 세웠다. 내 엉성한 자세를 남편에게 덜 보이고 싶다. 내가 똑딱이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남편은 드라이버를 꺼내 풀스윙을 한다. 채가 공을 맞추는 소리 공이 날아가 스크린 천을 강타하는 소리에 연습을 하다가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남편이 휘두르는 채에 감정이 실린 것만 같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나? 혹시 저 공을 나라고 생각하고 휘둘러 치는 거 아니겠지?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 상황일 걸까? 평송에 남편에게 좀 잘해야겠다. 남편이 따라오니 내 연습에 집중을 못하고 타석에 서서 남편의 스윙을 바라보게 된다. 


오늘도 연습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프로가 내 타석으로 다가왔다. 

"연습하던 거 해보세요."

타석에 서 있던 시간 대비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다. 어제 레슨 받고 연습했던 동작이 하룻밤만에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연습하는 자세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틀린 거면 어쩌지? 그럼 기다렸다가 다시 프로의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고 연습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생각한다. 연습 스윙을 한 번 하고 내 앞의 사람의 동작을, 내 건너편 사람의 동장을 넋 놓고 바라본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멀뚱히 서서 타인을 구경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다른 이용자들을 레슨 하면서 프로도 그런 나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 구경하지 말고 연습에 집중하라고 한다. 몸으로 익혀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중적으로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레슨이 끝나도 쉬지 말고 연습하라고 한다. 연습장에서 레슨 받는 시간이, 프로에게 내 동작을 보여주는 시간에 가장 집중하고 신경 써서 몸을 움직인다는 걸 간파당했다. 


연습장에 등록할 때 목표는 주중에 한번 연습장에 간다. 연습장에 가면 1시간 동안 운동한다였다. 나는 내 운동시간을 다 끝냈는데 나와 같이 연습장에 온 남편은 아직 연습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타석에서 내려와 연습장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아이폰 화면을 터치하고 SNS를 켠다. 그렇게 앉아서 시간을 때우다가 15분 정도가 흘렀을까 남편에게 다가가 묻는다. 언제 갈 거냐고. 남편은 딱 10분만 더 하고 가자고 한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앉는다. 그때 잠깐 자리를 비웠던 프로가 연습장으로 다시 돌아오며 나를 발견했다. 벌써 연습이 끝났냐고 묻는다. 내일부터는 연습 시간을 늘리라고 말한다. 하루에 1시간이 목표였는데 그것도 나에게는 큰 결심이었는데 프로가 내 사정을 알아줄 이유는 없다. 프로가 돌아오기 전에 집에 갔다면 레슨 끝나도 추자로 잔소리를 듣지 않았을 텐데 괜히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남편을 한번 노려본다. 10분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집에 갈 생각이 없다. 내 눈초리에 얼굴이 따가웠는지 딱 5번만 더 스윙하고 집에 가자고 한다. 나는 한 시간을 겨우 채워서 연습하는 데 남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운동이 재미있나 보다. 


차에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남편이 오늘은 프로에게 뭘 배웠는지 묻는다. 뭔가 배우긴 배웠는데 사실 프로가 뭘 알려준 건지 말로 설명도 못하겠다. 남편에게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한다. 

"골프란 뭘까? 골프는 누가 만들었어? 프로가 알려주는 채를 잡는 방법, 동작 같은 거?"

"글쎄...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불광 불급)?"

"하루 한 시간만 운동하고 싶은데 프로가 운동하는 시간을 늘리래. 집에 가서 할게 너무 많은데... 괜히 시작했어." 

골프라는 세계에서 슬쩍 한 발을 빼고 나와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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