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Oct 25. 2022

아직은 재미없죠?

세상에는 운동이 즐거워 바쁜 일상에서 애써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운동을 하지 않고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시작하면 뭐든지 개그가 되곤 했다. 남편을 처음 만날 날도 그랬다. 2014년 10월 18일. 친구들의 계속되는 추천으로 큰 용기를 내서 가입한 자전거 동호회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오프라인 만남이 성사된 날이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함께 라이딩을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일곱 명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닭볶음탕을 먹었다. 어색한 사이니까 벌건 국물이 옷에 튀지 않게 조심했다. 식사가 끝난 뒤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에 소화도 시킬 겸 두 팀으로 나눠 족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물론 반대했다. 마음속으로. 공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초면에 웃음거리가 될게 뻔했다. 심판을 하겠다고 먼저 선수 칠까? 신입 회원이던 나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크게 낼 입장은 아니었다. 번개를 주도한 사람의 뜻에 따라 한 팀에 들어갔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우리 팀원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질 테니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우리 팀의 큰 구멍이 되었다. 공이 바닥에 떨어진 뒤에야 나는 발을 들어 올려 허공을 찼다. 우리 팀 상대 팀 가릴 것 없이 빅 재미를 주었다. 족구를 하는데 왜 내 몸은 마치 제기를 차듯이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걸까? 진지하게 최선을 다 할수록 더 우스워진다. 다들 승패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나의 몸짓에 눈물을 흘리며 웃기 바빴다. 심판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 찍히는 사진은 분명 온라인 동호회 라이딩 후기에 올라와 나를 영원히 고통받게 하겠지. 족구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웃음과 함께 호감도가 상승했던 것 같다. 남편의 취향이 일반적인 느낌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와 우스워지기 싫어서 정적인 활동만 고집하는 여자는 결혼을 했다.


남편의 만나기 전 서른 살 무렵에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다. 운전을 할 줄 몰랐던 나와 친구는 둘이서 뚜벅이로 1박 2일 동안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뚜벅이 여행의 최대 단점은 여행을 하는 동안 짐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거다. 쌀쌀해진 날씨에 두꺼운 옷을 챙기며 생각보다 짐가방의 부피도 커졌고 무게도 제법 나갔다. 그 가방을 여행 내내 어깨에 메고 불국사에도 올라가고 가을 경치가 너무 좋아서 숙소에서 나와 황리단길까지 하염없이 걸어서였을까? 여행 후 몸에 통증이 찾아왔다. 하루 이틀 푹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넘게 통증은 지속되었다. 결국 나는 회사 근처의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다. 구부정한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도수치료와 함께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1년 넘게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재활운동을 했다. 자세를 바로 잡는 과정은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병원을 찾아가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다.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다. 둘째를 임신하고 안정기에 들 때까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 100일이 지날 때까지 필라테스를 쉬었다. 나머지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다. 여전히 TV에 나오는 고난도 동작을 하지는 못한다. 어깨를 살짝 돌리고, 골반을 척추를 곧게 세우는 동작을 한다. 남들이 보기에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움직임에도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마흔을 앞둔 나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등원시키고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에 골프 연습장에 다녀온다. 둘째가 후두염에 걸려 가정보육을 하게 되면 운동을 갈 수 없다. 일주일 동안 가정보육을 하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남편이 퇴근하고 아이들을 볼 테니 저녁 먹고 연습장에 다녀오라고 한다. 이왕 남편이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으니 여유를 부른다. 차를 두고 걸어서 연습장으로 간다. 저녁 시간은 직장인들로 연습장이 붐빈다.  비어있는 타석이 없다. 연습장 입구의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다가 순서대로 빈 타석으로 간다. 프로가 퇴근하기 전에 레슨을 받기 위해 서둘러 연습을 시작한다. 아직 동작이 몸에 익지도 않았는데 연습을 쉬고 나왔으니 동작이 좋을 수 없다. 레슨 시간이 두렵다. 프로가 내 타석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왜 이렇게 빠졌는지 묻는다. 프로에게 나는 연습장에 한동안 빠진 불성실한 회원이다. 연습에 빠진 만큼 자신감은 더 떨어졌다. 힘 있고 절도 있게 동작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채를 휘두르고 동작의 마무리도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 나아진 것 없이 레슨 시간이 끝나고 연습장 이용시간을 채웠다. 남편은 내가 육아에서 잠깐 벗어나 생기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길 바랬을 것이다. 아마 남편이 연습장에 왔다면 연습하는 시간이 재미났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퇴근하는 프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6층에서 1층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프로가 묻는다.

"똑딱이만 반복하고 아직은 재미없죠?"

기운 빠져 있는 모습이 프로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아... 뭐 그렇죠......."

대답마저 어정쩡하게 프로의 말에 동의한다. 실은 프로의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운동이 재밌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지금까지는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니까 통증 없이 살고 싶어서 운동을 할 뿐이었다. 계속해서 연습을 하고 나도 남들처럼 골프장에 나갈 만큼 실력이 쌓이면 공치는 게 재밌어질까? 그런 날이 올까? 다른 목적 없이 운동 그 자체를 즐기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전 05화 골프에 미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