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엔 나가고 싶지만 연습장엔 가기 싫고 작가는 되고 싶지만 글쓰기는 어렵고 살은 빼고 싶지만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거 아니죠? 빠른 사람은 골프를 시작하고 3개월 만에 골프장에 나가서 라운딩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몸치인 내가 남들보다 빨리 골프장에 나가 머리를 올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평균의 사람은 되고 싶었는데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언제까지 7번 아이언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걸까? 골프장에 나가면 모든 클럽을 다 쳐봐야 할 텐데.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느긋한 마음은 사라지고 조바심이 난다. 연습장에서 나를 뺀 다른 모든 회원들은 드라이버를 연습하고 있는 것 같다. 재미는 없고 집에서 눕고 싶은 몸을 끌고 연습장에 따박따박 나와도 실력은 늘지 않고 이대로 계속해야 하는 건가 싶어지는 순간이 또 찾아왔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은 자신의 무능을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대도 실망도 없다. 나는 골프를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골프를 시작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시부모님이 알고 계신 게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라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말이다. 연습장에 등록할 때 지금은 클럽을 살 필요가 없다고 연습장에 있는 연습용 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은 팬에서 부쳐지는 김치전보다도 쉽게 뒤집어졌다. 골프를 시작하고 2개월 만에 여성 풀세트*로 클럽을 구매하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럴 때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주로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를 떠올려보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며 행복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런 거다.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은 다른 세상의 나를 상상해본다. 그 세상에서는 첫사랑이었던 남자 친구와 이별하지 않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이별의 아픔으로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쥐었던 것과 같은 아픔을 알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이번에는 골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미래의 나를 떠올려 본다.
-6살과 2살인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었다. 우리 네 명은 쪽빛 하늘 아래 나무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색을 나타내고 있다. 만산홍엽과 대비되게 잘 관리된 잔디는 여전히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더 공을 더 잘 진다며 의견이 분분하다. 나도 내가 잘 친다고 주장은 하지만 나보다 가족들이 더 잘 친다 한들 질투나 부러움 따위의 감정은 조금도 없다. 그저 가족 모두 건강하고 이렇게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고 행복하다.-
내가 지금 골프를 접는다면 상상 속 미래의 우리 가족 모습을 완성시킬 수 없다. 이 미래를 나는 포기할 수 있을까? 아. 니. 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독서모임 지정도서가 선정되면 일단 총페이지를 확인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일수로 나눠보는 사람이 아닌가? 내가 상상하는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적어도 스무 살 정도를 더 먹었을 것이다. 앞으로 20년이 넘었다고 따져보면 못 할 일도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클럽 총 11개. 하나를 1년 6개월씩 붙잡고 있는다 해도 16년 6개월 정도가 걸린다. 3년 6개월 동안이 남는다. 7개의 클럽 정도는 2년씩 붙들고 있어도 되는 시간이다. 조바심 낼 필요가 전혀 없다.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할 수 있지. 그럼. 남들은 3개월 만에 하는 일을 설마 20년 이상 연습하고 못할 만큼 내가 또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다.
*내가 구매한 클럽 풀세트는 드라이버 , 페어웨이 우드 4번, 유틸리티 4번, 6~9번 아이언, PW, AW, SW 그리고 클럽을 담을 스탠드백도 구매했다. 양심상 퍼터는 골프장에 나갈 실력이 되면 구매하기로 했다. 사람마다 구매하는 클럽은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