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을까? 내일의 나도 지금과 같은 사람일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 건 다행인데, 내 몸은 빠르게 좀 변해줬으면 좋겠다. 어제 연습장에서 1시간의 연습은 내 몸에 쌓이지 않고 밤사이 휘발된 것만 같다. 골프를 시작하고 남편과 함께 골프 예능을 자주 보게 되었다. 모델 출신의 배우는 골프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방송에 나와서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줬다. 평소에 골프를 잘 친다고 소문난 연예인들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기 마련이던데. 과거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미래의 근사한 나를 상상해도 힘이 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나와 누군가를 비교해야 한다면 과거의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겠지만, 항상 꼭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삼기 마련이지. 마음의 지옥문을 여는 일.
이 좋은 가을날, 나는 왜 음침한 닭장에 스스로 갇히는 걸까? 이런 마음으로는 연습에 집중할 수 없다. 연습장에 도착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프로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한번 볼까요?"
나는 프로의 말을 듣고 어제와 다른 스윙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종의 테스트를 받는 느낌이다. 나나의 뭔가를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시간은 기회로 느껴져 설레기도 하고 위기로 다가와 부담스럽기도 하다. 오늘은 7번 아이언 레슨을 마무리하고 드라이버로 넘어갈 수 있을까? 기대는 몇 번의 스윙을 한 뒤 바로 자책으로 변하게 된다. 나아진 게 없네.
"세리머니 클럽에 나온 여배우는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골프장에서 엄청 잘 치던데 저는 왜 그럴까요?"
프로는 이런 질문을 너무 자주 들었던 걸까? 대답하기 전에 한숨부터 먼저 나오나 보다.
"3개월이라도 누구는 하루에 몇 시간씩 밥 먹고 공만 쳤을 수도 있죠. 하루에 한 시간도 겨우 연습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보이지 않은 노력의 시간과 비교하면 안 돼요. 일단 연습 시간을 늘리세요."
괜히 약한 소리를 했다가 프로에게 정곡을 찔리고 부끄러워졌다. 발 뻗을 자리를 잘못 찾았다.
채찍보다 당근이 필요한 순간인데. 같은 연습장에 다니던 지인이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던 걸까? 함께 PAR3 연습장에 가보지 않겠고 제안했다. 나에게 나보다 먼저 골프를 시작하고 연습장을 추천해줬던 친구였다. 이 친구의 제안이라면 무조건 가야지. 그런데 PAR3 연습장은 뭐지? 이럴 땐 남편을 찾아야지.
골프장은 18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 9홀, 후반 9홀. 18홀은 보통 PAR3 4개, PAR4 10개, PAR5 4홀로 구성되어 있다. PAR3는 처음 공을 치는 장소(티박스)에서 홀컵까지의 거리가 가장 짧다. PAR3의 티박스에서는 드라이버를 사용할 수 없다. 드라이버는 PAR4, PAR5 처음 공을 치(티샷)는 클럽으로 가장 길고 공을 가장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클럽인 드라이버를 사용할 수 없다. PAR3 연습장은 아이언과 아이언보다 짧은 거리를 보내는 웨지 그리고 퍼터를 사용해서 공을 홀인 시켜 보는 연습장이다. 퍼터는 그린에서 고을 굴려 홀인시키는 클럽이다. 웨지와 퍼터는 연습장에서 꺼내본 적이 없지만 실외로 나가서 계속해서 연습했던 7번 아이언으로 공을 날려 홀컵 근처 어디까지 나가는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제자리걸음과 같은 연습에 지쳐있었는데 실외 연습장으로 나간다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았다. 연습장에 나가기 전에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고 혼자서 골프웨어 매장으로 들어섰다. 실력은 프로가 아니지만 복장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평소엔 입지 않는 짧은 치마와 그에 어울리는 화이트 셔츠를 구매했다. 그리고 상의와 컬러가 같은 니싹스를 샀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골프화가 있길래 미리 사두길 잘했다.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날 보며 남편은 골프장 가는 것도 아니고 PAR3(연습장) 가면서 골프웨어 사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럴 땐 또 남들과의 비교를 거부하지. 남들이 뭐 중요해? 내가 사고 싶고 살 수 있으면 사는 거지! 당근을 줄 때는 확실하게 줘야지. 곧 골프장에 나갈 건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