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한 지(구력) 67일.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PAR3 전용 골프장으로 갔다. 날씨가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한낮은 아직 여름이었다. 패션은 원래 계절을 앞서 가지 않던가. 매장에서 추천받아서 산 상의는 하이넥 니트였다. 에어컨을 켠 실내연습장에서만 연습하던 나는 볕 좋은 날 실외 골프장의 더위는 알지 못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새 골프화를 신고 평소보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뛸 뿐이었다. 남편과 함께 운동을 가는 동안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시겠다며 집으로 오셨다. 추석 명절이라 평소보다 차가 막혀서 예상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셨다. 부모님을 기다리느라 출발이 늦어져서 함께 하기로 한 동반자들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부부 3쌍은 두 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성인 여섯이 원을 그리듯 서서 한 손을 내밀었다. "뒤집어라 엎어라" 손등을 내민 팀과 손바닥을 내민 팀으로 나뉘었다. 우연히도 부부가 같은 팀이 된 경우는 없었다. 나는 6명 중 구력이 가장 짧았다. 욕심도 뭘 좀 알아야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평소에 입지 않는 짧은 치마도 입은 김에 초록 잔디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이나 남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반자들은 매 순간 초보자를 배려했다. 본인의 경험에서 얻은 여러 팁들을 속성으로 알려주었다. 앞팀과 뒷팀의 경기 상황을 파악하고 공을 쳐야 할 타이밍을 파악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그저 공을 치라고 할 때 스윙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7번 아이언이 공의 정확한 위치를 때리는 순간 나는 소리. 딱과 땅 그 사이 어디쯤, 뭔가가 깨부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 그리고 동반자들의 한껏 격양된 응원의 소리. "나이스" 흔히들 낚시를 하며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낚싯줄을 감아올릴 때 손맛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높고 뜨고 멀리 나가는 공을 쳤을 때 아이언 헤드에서 시작되어 샤프트를 타고 그립을 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진동의 감각이 좋았다. 실내 연습장에서 공을 스크린 날려 보낼 때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한번 재미를 느끼니 다음번 홀에선 더 공에 집중하게 되었다. 선순환이었다. 더운 날씨도 모기에게 내 피를 나눠주는 것도 괜찮았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몇 번째 홀인지 모른 채 정신없이 9홀을 돌았다. 전반이 끝났으니 잠깐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물과 커피를 마셨다. 초보자를 계속해서 신경 쓰고 챙겨야 했던 동반자들은 나보다 더 지쳐 보였다.
공을 잘 맞출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날아가는 공을 보며 내가 손맛을 느끼게 될 줄도 상상도 못 했다. 운동을 하면서 내가 재미를 느끼다니 세상에! 이런 게 초심자의 행운인가 싶었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 없었다. 연습장에서 연습하던 대로 하나의 동작만 반복했으니 아무 생각 없이 공에 집중해서 몸에 베인 습관으로 공을 쳤을 뿐인데 연습장에서 느꼈던 회의와 번뇌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 알고 보면 실전에 강한 편일까? 용기가 차오른 김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제안했다. 내일도 친정부모님이 집에 계실 예정이니까, 아이들이 잠들면 둘이 나가서 스크린 골프를 쳐보자고. 이렇게 재밌는 걸 그동안 나 빼고 하고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흥분된 상태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남편이 찍어준 영상을 보고 또 보며 SNS에 올린 사진과 영상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