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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8. 2022

남녀노소

아이들이 감기 걸리면 진료받는 소아과 옆에 창원 NC파크 프로야구장이 있다. 20년 여름. 둘째를 임신했을 때 서울에서 놀러 온 야구 찐 팬인 친구와 함께 세 가족이 처음 가봤다. 당시 5세였던 첫째는 야구장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어 해서 친구와 헤어지고 3회인가? 6회인가를 보고 나왔다. 6살이 되고 친구 가족의 초대로 야구장에 갔을 땐 야구장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어린이집에 이어 유치원도 함께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 그런 것도 같고, 1년 사이에 아이가 자랐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즐거웠던지 올해도 아이는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아서 계속 미루다가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날 겨우 갈 수 있었다. 태풍 소식에 남편이 일을 쉬었기 때문이다. 3세인 둘째를 생각하며 3층의 가족석을 예약했다. 가족석을 예약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한 남편이 신의 한 수였던 걸까? 우리는 1회부터 9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을 지킬 수 있었다. 첫째는 NC팀을 응원했다. NC는 연패의 늪에 빠져있었다. 2회 말 NC가 1점을 내고 3회 초에 바로 상대팀에게 2점을 내주며 역전당했다. NC를 응원하는 첫째는 이기는 경기를 보고 싶어 했다. 응원하는 팀이 질 수도 있다고, 그래도 실망하지 말고 즐겁게 응원하며 경기를 보자고 다독였다. 다독이면서 딸이 응원하는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다행히 그날 NC는 홈런도 날리고 짜릿한 역전승을 했다. 기분 좋게 집으로 가는 길 둘째는 카시트에서 잠들었고 딸은 물었다.

"왜 여자 선수는 없어?"

여자도 야구 선수가 있지만 여자와 남자가 야구 경기를 함께 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줬다. 딸은 여자 야구 경기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고 여자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다.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에서 좌타자로 활약 중인 동생은 누나가 골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뭐 운동이 되냐고 물었다. 어쩜 그렇게 온동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하는 건지, 우리 남매 말고도 골프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던 내가 연습장에서 1시간 정도 100번의 스윙을 하고 나면 겨드랑이와 목덜미 그리고 이마에 땀이 뽈뽈뽈 올라와있다. 한겨울 실내연습장에 반팔 티셔츠를 챙겨가서 갈아입고 연습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공이 잘 맞지 않아서 동생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하면 따뜻한 위로 대신 냉담하게 한마디 한다. 야구는 날아오는 공을 맞춰야 하는데, 멈춰있는 공 맞추는 것 가지고 뭘 그러냐고. 내가 야구를 해보지 않아서 어떤 반격도 못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동생이니까 시작만 한다면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배울 것도 같아서 더 대꾸를 못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억울한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꾹 삼킨다. 막연하게 동생도 언제가 골프도 시작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냥 내 바람이다. 동생과 함께 잔디 위에서 공을 칠 그날을 기다려 본다.


남편이 형과 함께 운동을 했듯이 나도 동생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남동생에게 골프를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골프를 시작하면 야구를 시작했을 때보다 취미에 투자해야 할 비용이 늘어날 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야구를 시작한다고 해도 동생과 내가 같은 팀에서 경기를 뛰거나 상대팀으로 만나 함께 경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한 팀으로 경기를 하지 않을 테니까. 운동 친구가 되자며 나를 이 세계로 끌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남편보다 시작은 늦었지만 더 늦어지지 않게  나도 시작할 마음을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원한 아이들이 할머니 댁에서 저녁을 먹고 놀고 오겠다고 하면 남편과 나는 기다렸다는 듯 스크린골프 예약을 한다.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운동이 생겼다. 그리고 또 기대한다. 아이들이 커서 함께 할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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