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00 pm
막내가 잠들자 미래는 또 슬그머니 나와 컴퓨터를 켜 본다.
나 같으면 저렇게 안 만들지.
저게 뭐야. 옛날에 아이돌들이 다 했던 거 아냐.
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
턱은 또 왜 이렇게 뾰족하냐.
동글동글 얼마나 좋아. 복스럽고.
옷도 비슷하고. 아우 재미없어.
이 정도는 돼야 혁신이지.
원래 매력은 상반된 게 적당히 섞여 있어야 빛을 발하는 거라고. 이 사람들아.
머리 스타일, 옷, 신발까지 고르고 키와 몸무게도 설정했다.
왜 몽실이가 생각나지?
아냐 아냐. 마음에 들어. 딱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자.
3: 49 am.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오호라. 또 횡재했구먼.
미래는 아침 루틴을 모두 건너뛰고 평소와 달리 컴퓨터부터 켜고 앉는다.
얼마를 공들인 습관인데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아우 볼수록 정감 가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감각 있다. 감각 있어.
아바타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어디부터 가볼까? '
'어 슈퍼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왜 앞으로 안 가지. 벽에 막혔군.
카트는 어떻게 미는 거야. '
키보드를 다 눌러봤지만 소용이 없다.
'그냥 들어가지 뭐.
직관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더니 직관은 무슨. '
미래는 시프트 키를 눌러본다.
'어라? 갑자기 왜 벙벙 뛰는 건데. '
'흉내는 열심히 냈군.
희한하네. 그냥 시장 가서 사면 될 걸 왜 여기서 사 먹는 거야? 먹지도 못하는 걸.
나도 시장에 가서 과자 하나 사볼까.
어떻게 계산하는 거지? '
채팅창에 쳐보자. 누가 가르쳐 주겠지.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나?
단축키를 공부해야겠어.
그래도 혹시 도둑이라고 몰릴지 모르니 놓고 와야지.
피식. 나도 참. 가상현실 게임에서 경찰에 잡혀가기라도 하겠냐.
" 헤이, 뭐 하셔?"
"전 남친하고는 어떻게 해어지셨삼?"
"전 남친하고는 어떻게 헤어지셨삼?"
"전 남친하고는 어떻게 헤어지셨삼?"
'모야 이 거슬리는 말투는. '
'어 어. 내 아바타를 왜 카트에 실은 거야.'
"내려줘 내려줘."
'아 실제로 만났으면 한대 콱 쥐어 박는 건데 뭐야 저건.
게임 좀 한다고 이래도 되는 거야?
아바타라고 이렇게 막 해도 되는 거야?
어어 이거 나 놀리는 거 같은데?
이 더러운 기분 뭐지?
가상현실도 천국이 아니었군.
녀석. 기본적인 매너도 없는 애들도 많은 이런 데서 맨날 뭘 하고 있던 거야? '
6:00 am
아 진짜 한마디 해야 하는데.
이거야 원 속 터져서.
아침 하러 가야 하니 일단 봐준다.
목요일.
미래가 시장을 보는 날이다.
"엄마 케이크 사줘."
"그래. 간만에 케이크 먹을까?"
"케이크가 얼마요? 30만원이요? "
"아이 참 사모님도 여기 수제쟎아요. 재료도 다 유기농이고. "
"네. 제가 지갑을 안 가져와서 다시 올게요. "
한 치의 오차 없이 계산된 기초 수급 예산엔 수제 케이크는 사치다.
기계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먹는 것에 관대한 미래 입맛엔 뭐 인간이 만든 거나 맛도 별로 차이 없고 심지어 모양은 더 예쁘기까지 하다.
기초 생활 수급자들을 위해 가격에 맞춰 만드는 것이니 가격이 제일 중요하다. 유기농이니 원산지니 그런 걸 굳이 마케팅으로 이용할 필요가 없으니 정보는 사치다. 결국 필요하면 먹을 테니 선택지를 굳이 많이 줄리가 없다. 가격이 싸다는 독약 말고는 못 먹을 것을 넣은 것도 아니다.
꼬장꼬장하고 의심 많은 과거는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할 게 뻔하다.
'수제가 별거냐. 밀가루나 사가야지. '
막내는 미래가 구운 케이크를 한 입 먹더니 슬쩍 밀어 놓는다.
" 안 먹을래."
" 맛없어?"
"응. 퍽퍽해. 다음에 시장에서 사주면 안 돼? "
손맛에 대한 기억은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다.
모르는 게 약인건지 아는 게 병인건지.
뱃속에 들어가면 결국 똥이 될 텐데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무슨 소용이람
그런데도 어쭙잖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진화가 덜 되서인지 모른다.
과거는 털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살아야지 별 수 있나.
11:45 pm
새벽 시간만으로 단축키를 마스터하기엔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하다.
'아까 골탕 먹인 그 시키 가만 안 두겠어.
아이디가 뭐였더라.
미니버스에서 뭔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큰 녀석은 내가 지킨다. '
작은 녀석이 잠들자마다 살금살금 당당하게 탈출한 미래는 슬쩍 큰 녀석 방을 본다.
방문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미니버스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도 서둘러 미니버스에 접속한다.
'훗. 이 정도야 껌이지.
어우 빨래 안 해서 좋구먼.
오늘은 좀 상큼하게 입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