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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n 12. 2024

인간 나미래 08

이야기 쪽방에서 만들어 본 소설입니다.

6개월간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정 때문에 수면 부족으로 미래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간다.

꿈은 이루어지는구나. 그렇게 바라던 다이어트 성공인데. 뭐 그다지 내가 원하는 몸매는 아니지만......


시간이 없어.

아 비루한 몸뚱이. 아직도 생물학적 한계에 부딪혀 못하는 게 있다니.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어도 되는 몸이면 얼마나 좋아? 

그럼 24시간 가상세계에 가서 역사를 바꿔놓을 텐데.

인공지능과 아바타에 의해 운영되는 세상이라고 해도 미래는 모든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식구들의 지지가 있었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미래가 Futurepirate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수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어째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말해도 믿지도 않을 텐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 그래.'

남한테 부탁했다가 누군가 아이디를 훔쳐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미래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에 맡길 수도 없으니 직접 하는 수밖에.  




"사장님. 아이 진짜 싫다고요. 이건 저가 아니에요. 이건 다른 가수들도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

"하지만 Futurepirate, 대중이 그걸 원해.  그리고 일정에 굳이 나와서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과거의 방식을 버리라고.  과거에 일하던 방식대로 그런 사고방식으론 안 된다고. 빠르게 변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야지. "

"사장님, 제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뭔지 잊으셨어요? 저만의 시대를 뛰어넘는, 현실과 가상을 잇는 진정성 때문이라고. "

"진정성은 무슨....  아줌마인 거 다 아는데. 아바타들이 신기해서 한번 들은 거 가지고. "

"아줌마가 어때서요. 현실세계의 저를 지금 깔보시는 거예요? 아줌마는 진정성 있으면 안 돼요? 아  안 돼요. 전 제 색깔을 지킬 거예요. "

"야, 네가 무슨 예술하는 줄 알냐? 관둬. 너 같은 거 하나 더 만드는 거 일도 아니거든. 게다가 요즘 너 따라 새로 만들어진 아바타들이 그렇게 많은데 유일함 좋아하네. 처음에나 신기하지. 영상 수준하며 노래 수준도 지짜 촌스러워서. 발전 좀 해라.  무식한 걸 아날로그라고 퉁치지 말라고. 진짜 아날로그 하는 애들이 너 같은 애들 때문에 고생하는 거야. 보자 보자 하니까. 지가 다 하는 줄 알아요. 인공지능은 말이나 잘 듣지 인간들은 고집만 세요.  내가 인간이 만든 아바타 쓰나 봐라. "


언젠가부터인지 소속사가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한 트렌드라며 강요하는 노래, 의상, 무대도 점점 미래가 원하던 것 하고는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싸움이 잦아진다.


'저건 내가 만든 아바타인데.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아. 내 얘기가 아니잖아. 진짜 내 노래가 아니라고. '




6개월 만에 futurepirate의 행사 일정이 끝나고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소속사와 약속했다.

말이 좋아 휴식기지 잘렸다. 

널브러진 옷가지들

썩어 문드러진 반찬들

마지막 청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화장실

6시가 훌쩍 넘었지만 아무도 식탁 앞에 모이지 않는다.

'아우 구질구질해. '

'미니 버스 속 우리 집은 온통 대리석에, 옷장엔 온갖 옷들이 가득하고, 쪼글거리는 주름살도 없는데

어우 꼴 보기 싫어. '



어디서부터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청소가 습관인 적도 있었는데 미니버스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젠 일상이 엉망이 됐다.



7: 00 pm


그래도 오래간만에 휴가니까 가족들 얼굴은 봐야지. 가족 단톡장에 문자를 날린다.

어디야?
난 친구집.
나 회사야. 저녁 먹고 들어갈게. 둘째는 어린이 집에 있으니 데려와야 해. 저번처럼 잊어먹지 말고.



' 어머 까먹었네. '




돈이 입금된 순간 미래는 자연주의 어린이 집에 둘째를 등록했다.

탄소세다 기후변화다 뭐다 해서 진짜 산과 바다가 있는 곳에 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가는 건 어렵지만 그 대신 기술로 온갖 자연을 재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얻으면 잃는 것도 있는 거지.

학교 문을 들어서면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온다.

뭐 어차피 같은 원소로 만들어진 것이니 진짜나 차이도 없는 돌멩이들로 꾸며진 연못방에서는 마음껏 올챙이 잡기도 할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조그만 날파리만 봐도 악악 거리던 막내가 불만이 없다는 거다. 자연인데 모기, 파리, 날파리 같은 벌레들은 하나도 없다. 흙을 아무리 파도 예측불허한 번데기 껍질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벌레가 있긴 하지만 귀찮게 아무 때나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철저하게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용 로봇 벌레다. 심지어 너무 징그럽지 않게 적당하게 귀엽게 만든 탓에 막내도 더 이상 벌레를 보며 기겁을 하진 않는다.

사계절 바꿔가며 다양한 기후의 지역을 재현하는 학교가 가능하는 건 기술이 준 선물이다.



수입도 없고, 일이 없을 때야 손수 가르치고 하나하나 데리고 다녔지만 유아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미래보다야 전문가가 낫지 않겠냐며 과거를 설득했을 때 과거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과거도 자연에서 아이를 기를 수 있다고 보여주자 더 이상 버티지는 못 했다.  

자연인데. 있어도 가지 못하는 자연보다야 가짜여도 가까이 있는 자연이 낫지 않나.




"엄마, 오래간만에 엄마랑 같이 목욕하고 책 읽으니까 참 좋다. "

"그래? "

"근데 엄마 요즘은 왜 이렇게 책 많이 안 읽어 줬어?"

"응. 엄마가 너 읽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게 돈 많이 버느라 그래."

"엄마 회사가?"

"막내야. 요즘은 회사 가서 돈 버는 세상이 아니야. 너 친구 아빠처럼 엄마도 컴퓨터에서 돈 버는 거야."

"진짜? "

"그럼. 엄마 엄청 유명한 가수야. 보여줄까?"

"이거 엄마 아닌데? 엄마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엄마 이상해.  난 엄마랑 같이 많이 읽는 게 더 좋은데.

"...... 알았어. "



9:00 pm

'이 시키는 몇 신데 안 들어와?'

야 너 어디야?
응. 나 별다방. 나 학교 수업 듣는 중이야.
이 시간에 무슨 수업이야. 빨리 들어와.
뭐야. 나 이제 온라인 수업하니까 들어야 해. 조금 있다가 갈게.
온라인 수업? 누가 바꿨어?
엄마가 저번에 마음대로 하라고 그랬쟎아?
내가?
언제?
왜 저래.






미래를 준비하며 살았을 뿐인데 내가 뭘 잘 못한 거야?

뭐가 잘 못 된 거지?  

현실은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내가 미니버스에서 시간당 버는 돈이 얼만데 이렇게 청소나 하고 있을 때야?

왜 다들 감사를 모르는 거야?

아직도 옛날 방식을 못 버린 과거는 어쩔거니?

걸레질 조금 했다고 아픈 이 비루한 몸뚱이는 어쩔거니?

이래도 나 정말 현실로 돌아와야하는 게 맞는거야?

벗어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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