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전진 vs 타이밍
나는 요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난 원래도 결정 장애다.
어렸을 땐 고를 일이 없었다. 엄마가 골라주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원칙을 따르면 됐다.
중2 때까지 메뉴를 못 골라서 친구가 골라주는 대로 먹었다.
처음엔 내가 욕심이 없고 착해서 선택을 못하는 줄 알았다.
웬걸. 아니다. 난 너무 욕심이 커서 선택을 못한다.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앞머리를 자르면 김태희가 될 수없고, 앞머리를 기르면 수지를 포기하는 비장함이랄까.
거울을 보면 잘라도 안 잘라도 둘 다 될 수 없다. 눈에 훤히 보이는 실로 웃음이 나오는 원대한 꿈이다.
그래도 한쪽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희망같은 욕심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찾는 결정장애 응급처방약은 저지르는 거다.
나 좋다던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와 내가 좋아하는 신랑사이에서 나는 순전히 내 직감만 가지고 선택을 했다.
그냥 느낌대로.
그렇게 내린 결정들에 후회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백 프로 후회한다는 것에 내 똥배를 걸 수 있다.
다른 쪽을 선택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후회해도 소용없을 땐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한 선택에서 제일 멀리 갈 수 있는데까지 가는 수밖에.
이번엔 좀 다르게 결정해볼까 싶어 이 책, 저 책 뒤적이던 중 이은영 작가의 선택의 기술을 읽어본다.
요즘 들어 브런치에서 남들은 알고 나만 모르던 유명한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는 행운을 자주 마딱드린다.
누구에게나 있음 직한 일에 대한 이은영 작가의 갈등과 선택에 많이 웃고 공감했다.
이작가를 포함해서 내가 찾아본 선택을 잘하는 방법을 세가지로 추려본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양쪽의 장단점을 나열하고 비교해 본다.
자신의 직감을 믿는다.
요즘 미국에선 대선 후보들 사이의 선택을 놓고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무법과 무능 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법의 잣대를 잘도 피하는 듯 보이지만 도덕적인 잣대가 영 위험해 보이는 후보자가 가진 사업 수완, 정치적 능력을 밀어줘야 할 것인지
도덕적으론 더 나아 보이나 무능하고, 무능의 원인이 누구나 맞이하는 노화이니 인간적으론 안쓰러워도 먹고살 걱정에 대한 위험을 무릅써야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장단점을 나열해 봤지만 모르겠다.
나라의 운명이 달렸는데 직감을 믿어도 될까?
공감으로 호소하는 무법과 발전가능성이 있는 무능 중 골라야 하나?
법이 무너진 나라와 가난한 나라 중 어느 쪽을 더 참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서 골라야 할 판이다.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자가 있으면 되는데 인생은 참 희한하게 그런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내 문제에서는 타이밍이라는 선택지가 갖는 딱 하나의 장점을 전진이라는 쪽의 수많은 장점이 이기질 못한다.
전진할 이유는 만 가지인데 영 마음이 불편하다.
그럼 타이밍을 기다리면 되지 않냐고.
말하지 않았나. 전진할 이유가 만 가지라고.
좀 더 머리가 차가운 사람들은 수치화를 이용해서 모든 위험을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How to Measure Anything by Douglas Hubbard
말 그대로 뭐든지 계산해 준단다. 사랑, 부모와의 관계, 우정, 인간애
결정을 잘한다는 사람처럼 나도 좀 편하게, 현명하게 살아보려고 가르쳐준 계산기를 돌리려는데
딱 브레이크가 걸린다. 계산기를 두들길수록 하고 싶은 쪽이 생긴다.
저 밑 단전에서 직감이 꼬물거린다.
선택이 어려우면 글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스로에게 묻고 직감의 소리가 들리길 기다리는 것도.
포기한 선택지로 생기는 모든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하며 주저앉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안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 그래서 결국 해내는 사람은 해내더라는 말이 있는거구나.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택의 기술,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