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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Feb 29. 2024

우리들의 책.습.(관). 31 개학

책.습.관. 라디오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방학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이렇게 묻습니다. 

" 방학 동안 뭐 했어?  " " 어디 갔다 왔어?" 

그런데 이 단순한 질문이 아이들 얼굴에 생기는 변화를 보면 할까 말까 망설이게 됩니다. 

저는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제가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거든요. 


미국 겨울 방학은 2주 정도입니다. 작은 거에라도 기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인지 서로 누가 더 먼 곳을 가나 싶은 경쟁처럼  2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방학 동안 별의별 재미난 곳들을 다녀옵니다. 

이렇게 어디라도 갔다 온 아이들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 하와이요." " 캔쿤이요." "한국이요." "플로리다요." 합니다.

그래서 그중 한 녀석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어깨만 으쓱합니다. 

인상은 안 쓴 걸로 보아 나쁘진 않았다는 이야긴가 봅니다. 

그래서 그다음 녀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다음 녀석이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까 어깨만 으쓱 한 녀석이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옵니다. 

" 저도 거기도 가봤어요." 

자기 차례에 조명을 쏴 줄 때는 이야기 안 하고 다른 사람 차례에 자기 얘기를 끼어 넣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아무 데도 가지 않은 아이들은 

"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하며 시무룩해합니다. 

슬슬 장난이 발동합니다. 

그래서 한 녀석에게 

"24시간 돌처럼 눈도 꿈쩍 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 " 

하니 피식 웃습니다. 

"넷플렉스 한 번도 안 켰다고? " 

하자 큭큭 웃습니다.

"솔로지옥 봤어?" 하자

그제야

" 아 그거 아껴뒀어요. 그 대신 다른 거 봤어요." 

드디어 문장으로 말합니다. 

이제 너도 나도 왁자지껄 자기가 본 영화, 드라마 이야기를 떠들어 댑니다.

한국어 말하기 연습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사실 한국어 말하기보다 어려운 것은 자기 삶에 조명을 비추는 일입니다. 

적당한 허풍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허풍까진 아니어도 자기만의 삶에 조명을 비추어 구석구석 살펴보고 재밌는 거리를 찾아내는 일,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아이들이 모르고 지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조명을 쓸 줄 모르니 일기 쓰기가 그저 칸 채우기 숙제입니다. 

비싼 돈 들여 비행기 타고 굳이 오지나 유명 관광지에 못 가더라도 집 앞 놀이터에서 논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난 방학인데 말이에요. 어제는 그네 타고 놀고 오늘은 썰매 타고 놀고 내일은 야구하고 놀고, 같은 놀이터여도 이렇게 놀면 같은 놀이터가 아닙니다. 놀이동산도 되고, 썰매장도 되고, 야구장도 되는 마법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말이죠. 그래서 개학이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개학에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작꿀이에게 묻습니다. 

"작꿀아, 선생님이 방학에 뭐 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이야기할 거야?"

"응. 나 집에서 엄마랑 강아지 놀이했다고 말해 줘야지."

저도 모르게 제 머리가 갸우뚱합니다. 

'미국에서 제일 큰 수족관에서 고래 상어 본 거 벌써 잊었나?' 

아, 아이들이 처음부터 못 하던 게 아니었군요.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 습. 관.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31-e2geicd

https://youtu.be/jy7sT5vq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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