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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Apr 06. 2024

09화 여름 이야기

뉴질랜드 밀레니엄 여행기 9화

어린 시절 나는 여름 방학이면 충청도 깊은 시골에 있는 친가에서 몇 주를 보냈다. 지금도 귀농하는 도시 사람들이 자주 찾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시골 마을이다. 해마다 그런 곳에서 여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시골집을 찾는 연례행사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70~8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돼지고기를 수출하던 시기였다. 일본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육류 소비도 폭증했고 자국 내에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국에 양돈업을 위탁했다. 분뇨 처리 등 일이 더럽고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절감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우리나라 시골은 온통 분뇨 냄새로 뒤덮여 있었다.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면 즉시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반대로 분뇨 냄새를 맡게 되면 이제 시골로 접어들었구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골을 좋아할 수 없었다. 시골 사람들은 더럽고 미개하다고 여겼다. 물론 초등학생이었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생각이었다(지금은 초등학생이라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산업 인프라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면 어디라도 비위생적이고 비합리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 나도 첫 해외 여행지가 일본이었는데 그때 별것 없는 시골 마을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완전 시골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관광을 염두에 두고 관리하는 지역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관리하는 시골과 그렇지 않은 시골(그러니까 야생)은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시골에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관리했답니다!’라고 자랑하는 듯한(촌스러워서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온갖 구조물이 아무 데나 설치되어 있는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흔적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다니기 편리하게 관리하는 편이 그대들이 원하는 관광객 증진에 훨씬 더 도움 될 것이다.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당시는 농촌 봉사라는 명목으로 시골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기보다 술 먹고 떠드는 데 더 열심이었던 여름 한정 이벤트가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여름날의 시골은 덥고 끈끈하고 샤워도 할 수 없었고 화장실은 다시 생각하기가 괴로웠다. 


라떼는 자연을 찾아다니는 무리 사이에서 여성 멤버가 잠자리가 불편하다거나 씻고 싶다거나 하는 내색을 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었다. 언젠가 국립공원 산장에서 양치질하다가 자연을 파괴하는 몰상식한 짓을 한다며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무리와 잘도 어울렸던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밤새 고기 굽고 술 마시면서 떠들던 주제에 양치질 좀 한다고 환경 파괴자라고 몰아세우던 그 놈이야 말로 진짜 사이코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컵라면 먹는 녀석들이 왜 하필 국립공원 산 정상까지 올라와서 술안주로 고기를 굽는가? 고기는 집에서 굽든가 하고 일단 자연 안으로 들어왔으면 조리가 필요 없는 주먹밥 같은 간소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근처 야생 동물들이 밤새도록 냄새에 소음에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잠시 진정하고 다시 뉴질랜드 여행기를 써보도록 하자. 아니, 그런데 농촌 봉사에 관한 이야기 하나만 더. 아무튼 그때 나는 농촌 지역에 봉사하기 위해(……) 첩첩 산골 어느 곳으로 향했다. 그 시골 마을은 이름은커녕 어느 지역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겪었던 화장실만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골집 화장실은 전통적으로 본채와 떨어진 마당 한편에 별도로 세워져 있다. 심하면 축사와 나란히 두기도 했다. 농촌 봉사를 떠난 그곳의 화장실은 엄청 멀었다. 원래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오래된 시골집이라면 밤에는 절대 화장실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국룰이 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도무지 어디에 붙어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다시 물어서 찾아간 화장실은 그때까지 보았던 화장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듯했다.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빗장을 지르는 나무문과 볏짚을 얹은 초가지붕이 화장실보다는 헛간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문을 열 때 들리는 끼이익하는 소리까지 으스스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다. 텅 빈 황량하고 네모난 흙바닥이 전부였다. 그리고 한쪽에 얌전히 꽂혀있는 삽 한 자루. 그랬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 생각이 맞다. 이 정체 모를 사각의 공간은 화장실이었다. 그곳에 놓여있는 삽은 매번 자기 손으로 직접 땅을 파헤친 뒤 다시 흙으로 묻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화장실의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이렇게 큰 죄였던가? 아무리 자기 손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가혹한 화장실이 아닌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아니, 몸이 약하거나 병든 사람은 또 어쩌란 말인가. 땅을 팔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는 자들은 살지도 말라는 뜻인가?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의문을 던지는 화장실이 아닐 수 없었다. 


넓은 흙바닥, 네 개의 벽면, 두 개의 문(들어온 맞은 편에도 나무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삽자루 하나. 혼란에 휩싸여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반대편 문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상대도 움찔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삭막하고 기이한 공간에서 말없이 마주 선 남녀. 


고양이도 위기 상황에서는 생리현상을 잊는다. 도대체 혼자 삽질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어쩌려고 이런 화장실을 만든 것일까? 나는 도시로 돌아가는 날까지 절대 화장실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덕분에 여학생들은 동네 이장님댁 최신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이상하다. 남학생이라고 그 화장실이 괜찮았을까? 분명 나처럼 그런 무자비한 화장실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남학생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 - 나중에 알았는데 있었다고 한다. 설마 나와 마주친 그 남학생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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