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 비호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협약을 체결한 양국 정부
4월 14일 목요일, 영국 정부와 르완다 정부가 영국에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입국한 비호 신청자(Asylum Seeker)를 르완다로 보내 심사받도록 하는 협약에 서명했다. 유럽이 이주자들을 유럽 대륙 밖에 묶어두기 위해 다른 대륙의 경제 발전과 난민 정착촌을 지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이미 온 사람을 더 멀리 있는 나라로 보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다. 영국의 이런 행보에서 이민 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책임 회피와 이주자·아프리카 혐오가 느껴진다.
참고로 유럽 대륙에서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이주한 이주자와 난민은 2021년 2만 8천여 명이었다. 이는 2020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숫자라고 한다. 이 협약을 체결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엔 하루 동안에만 600명의 사람들이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왔다. 작은 배나 냉동탑차 등을 타고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작년 12월엔 사람들을 밀입국하려던 배가 가라앉으면서 2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영국 내무장관인 프리티 파텔(Priti Patel)과 르완다 외무장관인 빈센트 비루타(Vincent Biruta)는 "르완다-영국 이민과 경제 발전 파트너십(Rwanda-UK Migr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Partnership)"에 서명했다. 이 협약의 주요 내용은 르완다 정부는 영국 정부가 보내는 비호 신청자를 받아들이고, 영국 정부는 르완다 정부에 1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제공해 르완다로 보낼 비호 신청자를 지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돕는 것이다.
이주자를 르완다로 재배치하고 자기 계발, 이주자를 위한 일자리에 투자함으로써 우리 양국은 불법 이주를 일으키는 국제 기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범죄 조직을 키우고 선량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구조를 흔들 것입니다. (르완다-영국 공동 성명서 中)
양국 정부가 협약을 통해 생길 수 있는 긍정적 변화로 내세우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비 합법적 이주자를 들여오는 범죄 조직의 사업 모델을 흔드는 것이고, 둘째는 국제적으로 경제적 이주의 원인이 되는 불균형한 경제적 기회 문제를 직접 다룬다는 것이다.
두 번째 내용인 불균형한 경제적 기회에 대해 양국은 국제 이주 위기의 근본 원인이 불균형한 기회에 있다고 보고 있다.
뿌리 깊은 세계 불평등 때문에 수백만 명이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은 분쟁, 박해 그리고 다른 위협으로 인해 강제로 떠돌게 됩니다.
이는 영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이민 체계에 엄청난 압박을 줍니다. 이런 상황은 취약한 사람들이 자기 생명을 불법 밀입국 조직에 맡기고, 결국에는 비극을 맞게 합니다.
이 기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향후 르완다 사람과 이주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중등 및 고등(대학) 교육, 직업 교육, 언어 교육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르완다 정부는 영국에서 오는 비호 신청자들도 르완다 법에 따라 보호받고, 르완다 사람과 동등한 일자리 기회를 얻고,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보험에도 가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협약 내용이 발표된 이후, 영국 국내는 물론이고 르완다 야권,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영국 사무소의 래리 보티닉(Larry Bottinick) 사무관은 이 협약이 "낙담스럽고 불필요하다"며, 유엔난민기구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 협약의 비용은 지나치리 만큼 비싸고,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해결책이 아니라 (이주자)구류를 퍼뜨리고, 밀입국을 늘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협약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가하는 협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련 영상)
보티닉 사무관의 말처럼, 영국과 르완다는 이 협약을 세계 이주 위기의 해결책으로 선전하지만, 사실 이 협약을 통해 해소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영국의 이주 위기뿐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이주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이주 위기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의 이주 위기가 극에 달해 넘치기 시작한 이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 초기, 시리아 난민들은 요르단, 터키 같은 이웃나라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이들 국가의 난민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달한 2014년부터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숫자가 급증했다.
서아시아가 이렇게 위기를 겪는 동안 아프리카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아프리카 내 강제 이주자(난민, 국내 실향민, 비호 신청자 등)는 2011년의 리비아 내전과 아프리카의 뿔 지역 가뭄을 겪으며 급증했고, 2010년에서 2019년 사이에만 세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은 이들 대륙보다 늦게 이주 위기의 영향을 받았고, 강제 이주자를 받아들여야 할 국제적 책임은 덜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비호 신청자를 아프리카 대륙의 르완다로 돌려보낸다는 발상은 돈을 쥐어주고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영국이 협약을 맺은 르완다는 영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다. 르완다 인구는 약 1,300만 명이고, 영국 인구는 6,700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국토 면적도 영국이 르완다보다 10배 정도 넓다. 하지만 르완다가 받아들인 강제이주자(난민, 비호 신청자 등)는 12만 명이고, 영국이 받아들인 강제이주자는 13만 명으로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자국 시스템에 부담이 크니 르완다로 비호 신청자를 보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라는 사람의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에 주목해보자면, 그는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영국에 넘어오려는 이주자들에게 '영국에 오면 아프리카로 보내버리겠다'라는 엄포를 놓으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2002년 우간다를 방문한 뒤 The Spectator에 "CANCEL THE GUILT TRIP"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여기엔 이런 대목들이 등장한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우리가 한때 그곳을 지배했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지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90퍼센트의 우간다인들은 석기시대의 상태로 살고 있다. 진흙으로 둥근 움막을 짓고 바닥을 파서 불을 지피고, 라피아(식물의 이름)로 장판을 만들어 침대로 사용한다. 기대수명은 42세이다.
블레어가 생각이 있다면, 아프리카에서 안타까워할 게 없다. 우리에게 휴가를 즐기러 여기 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머치슨 폭포(우간다 머치슨 국립공원의 폭포) 보다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빅토리아 호수의 작은 섬을 사라고 할 것이고, 호텔과 TV와 휴대폰 회사에 투자하라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운명에 가장 좋은 것은 옛날 식민종주국이, 혹은 그 나라들의 시민들이 다시 한번 아프리카를 향한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다. 단, 이번엔 죄책감을 느끼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의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태도에 대해선 2019년 5월에 다뤘던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theafricanist/73
문제는 영국에만 있지 않다. 르완다 외무장관은 협약 서명 이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웃 나라인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우간다, 탄자니아 같은 나라 출신 사람들은 받지 않길 선호한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르완다 야권은 르완다의 인권 상황과 연결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르완다의 미등록 야당인 DALFA Umurinzi는 르완다 시민들도 정치적, 경제적 망명자가 되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다며, 국내의 정치와 경제 문제를 해결한 뒤 다른 나라에 이주자를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해야 할 것이라 비판했다. (관련 기사)
이번 협약의 당사국인 영국 정부도 작년 1월, 르완다 정부에 초법적 살인, 구금 중 사망, 강제 실종, 고문에 대해 투명하고 믿을 수 있으며, 독립적인 조사를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관련 자료). 르완다의 국내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이번 협약으로 이주하게 될 비호 신청자들이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주 위기는 국경의 문제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국경을 넘어설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이 사는 나라 국경 밖에서 일어나는 전쟁, 인권 침해,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국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고통에 관심 갖고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나아가 국적과 인종을 넘어 모두를 그저 사람으로, 이웃으로 생각할 때 이주 위기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