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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Aug 26. 2019

보노보 지니, 지니의 램프 속 진이, 그리고 민주

[책 리뷰] 진이, 지니 (2019)

정유정 작가의 책은 「종의 기원」 이후로 두 번째이다. 「종의 기원」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지만, 이야기의 흡입력은 오래간만에 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진이, 지니」의 첫인상은 좀 어리둥절했다. 「종의 기원」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나를 끌고 갔었는데, 「진이, 지니」의 표지는 아주 산뜻했다. 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책을 들었고, 프롤로그에서부터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가 나와서 기뻤다.


진이, 지니. 정유정. 2019. pp.386.


이 이야기를 이끄는 세 주인공은 침팬지를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영장류 센터 사육사인 이진이, 그리고 보노보 지니, 부유하는 청년 김민주이다.  


보노보는 침팬지, 인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세 영장류 중 하나이며, 인간과 가장 유사한 DNA를 가졌다고 한다. 인간과 보노보의 DNA는 98.7%가 일치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사람끼리 DNA가 일치하는 비율과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검색해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DNA 차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작게는 0.1%에서 크게는 3%까지 다르다고 한다.


비슷하기 때문에 끌린 것일까? 침팬지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침팬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온 이진이는 한 달간 콩고민주공화국의 왐바 캠프에서 캠프 연수를 했을 뿐인데 보노보와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이진이는 보노보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마저 잊고 그들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했다.


왐바 캠프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데, 1974년 일본 영장류학자 가노 다카요시가 보노보 연구를 위해 설립했으며, 콩고민주공화국 에콰테르주 밀림에 있다. 현재도 세계 각지의 동물학자들이 보노보 연구를 위해 방문하고 있고, 페이스북 페이지 Bonobo Research at Wamba (https://www.facebook.com/bonobo.at.wamba/)에서 왐바의 연구자들(대부분 일본 출신 연구자)이 보노보에 대해 쓴 글이나 보노보를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지난 2월엔 암컷 보노보들의 평화로운 관계에 대한 글도 올라왔다. (번역은 캡처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Source: Facebook / @bonobo.at.wamba
(위 포스팅 번역)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 사회는 평화로워 보입니다. 보노보들이 같은 그룹 내에서나 다른 그룹과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죽인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그룹의 보노보들은 평화롭게 교류합니다.
지난해 8월, 왐바에서 식별된 4개 그룹 중 가장 큰 그룹인 보노보 E1그룹을 추적하던 중, E1그룹이 PE그룹과 PW그룹과 마주쳐 세 그룹의 암컷 보노보들이 쓰러진 나무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무려 50마리 이상이 그 쓰러진 나무 주변에 있었어요!
암컷들은 약 한 시간 정도 사회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서로 교류했고, 성체 수컷은 이 암컷 모임에 접근할 수 없었어요.(청년기 수컷 한 마리만 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암컷 보노보들의 관계가 평화로운 보노보 사회의 핵심 요소인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종으로 분류된 보노보. Source:  국제자연보전연맹


이진이는 보노보와 콩고민주공화국 왐바에서 사랑에 빠졌는데, 귀국을 위해 왐바를 빠져나와 들린 킨샤사에서 큰 사건을 겪고 이 업계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만 발견되는 보노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적색 목록에 "위기 (Endangered)"종으로 분류되어 있고, 주 분포지를 중심으로 한 추산에서는 약 2만마리 정도가 존재한다고 알려져있다. 이 숫자마저도 보노보가 거주하는 밀림이 벌목과 화재로 매해 파괴되고, 보노보를 사냥해서 식용으로 쓰거나 밀거래하는 사람들 때문에 감소세에 있다. 보노보 밀거래꾼과 킨샤사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구글 지도 때문에 이진이는 자신이 유인원 관련 일을 하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킨샤사에서 기념품을 사고 싶었을 뿐인데, 아래 구글 지도 캡처처럼 참 도움 안 되는 정보 덕분에 길을 읽고 폭풍우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뒤로하게 된 것이다.


킨샤사의 Shop을 검색했는데 별게 나오지 않는 구글 지도.
구글 지도에서 킨샤사의 기념품(Souvenir)을 검색했더니 Souvenir라는 이름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이 곳에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건 소설이랑 큰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구글 맵에서 검색이 잘 안된다고 해서 킨샤사에서 기념품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금 검색해보니 Je Gagne Ma vie라는 기념품 가게(https://www.facebook.com/Galerie-dart-Je-Gagne-Ma-Vie-2040093586283730/)도 있고, 많이 복잡해 보여서 외국인이 가도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 시장인 Marché Gambela에서도 기념품을 살 수 있다는 정보가 나왔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회상을 제외하면 딱 사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유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라고 불렀다.


그 사흘의 시작점은 이진이가 킨샤사에서 돌아온 지 7개월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충청북도의 한국과학대학교 영장류 연구센터로 복귀하여 일을 하고 있었고, 킨샤사에서의 일로 진로를 바꾸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려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진이는 독일 베를린에 가서 철학 공부를 하려고 했다.


한편, 이 이야기 속 조력자 김민주는 '갈 곳이 없어서' '산꼭대기 원숭이 동물원'을 찾아왔다. 김민주는 '모차르트'다. 그는 소리를 잘 기억하고 구별하며, 소리 뒤에 숨은 감정을 잘 읽는 능력을 가졌지만, 뭔가 저지를 용기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뭘 해야 할까' 고민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청년으로, 가족에게 쫓겨나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은 고시원 이웃의 죽음을 접한 뒤, '사는 것이 시시해진 병'에 걸려 이리저리 떠돌다가 외딴곳에 있는 영장류 연구센터 부근까지 왔고, 진이와 지니, 그리고 지니/진이를 만났다.


지니는 보노보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한국으로 밀수되어 어느 호숫가의 별장에 갇혀 살다가 화재를 틈타 탈출했고, 119 구급요원과 이진이, 그리고 이진이의 스승에게 잡혔는데, 그날 밤 교통사고로 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소설에서 진이는 이 상황을 '지니의 램프'에 갇혔다고 표현했는데, 진이의 영혼은 지니의 램프 속에서 콩고의 열대 우림을 누비기도 하고, 램프를 나와 지니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다루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리뷰 내용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리둥절하겠지만, 이 책은 인간 영혼의 여정을 아주 색다른 방법으로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앞부분을 쓰면서 어디까지 소개를 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내가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읽고 느꼈던 놀라움과 흥분을 느끼길 바라면서, 이번 리뷰는 이야기 전개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알면 이야기가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만한 내용만 다루었다.


짧다면 짧은, 사흘의 이야기가 거의 삼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풀어져있지만, 책에 한번 빠져들면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정유정 작가가 서울과 일본, 베를린을 오가며 취재하고 연구한 끝에 내놓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보노보 몸속에 들어간 인간의 영혼'이라는 설정이 전혀 어색함 없이 아주 능숙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극적인 반전을 만드는 흥미로운 장치와 중간중간 미소 짓게 하는 소소한 재미도 곳곳에 숨겨져 있어 책 읽는 내내 더위도 잊고 울며 웃으며, 아주 몰입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소설 속 주인공들을 따라 여러 감정을 쏟아낸 뒤라 아주 시원했다. 보노보가 사는 열대 우림을 달리며 바람을 맞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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