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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Apr 15. 2016

나라별 '사귀다' 표현에 담긴 지향성


봄입니다.

10센치의 '봄이 좋냐'라는 노래로

쓸(씁)쓸한 기분을 달래 보는 봄입니다.


꽃들이 피고 지며

연인들이 맺어지고 정리됩니다.

만나고 헤어지는데 계절이 따로 있겠냐만은

봄날의 연인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애틋합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
우리는 '사귀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인생에서 말할 일, 들을 일이

기억조차 못 할 만큼 많지만은 않은

"사귀자"는 3음절은

여느 단어와는 분명히 다른

꼬물꼬물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새삼스럽게

'사귀다'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사귀다 (사귀어/사귀니)
동사 [... 과/... 을]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


사전적 의미로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랑을 전제로 교제하다' 보다 포괄적입니다.

모르던 두 사람이 얼굴을 익히며 친하게 지낸다면

우리는 모두 '사귀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사귀다'

남녀 간의 연애관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좁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친구나 직장동료는 '사귀기'보다는

만들고 생기고 친해집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귄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우리처럼 '보편적인 관계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본 뜻을 지닌 '사귀다'처럼

사실상 '두 사람 간의 연애 관계'

전용(專用)하고 있을까요?

혹은 다른 뜻으로도 함께 쓰이고 있지는 않을까요?


당장 생각나는 나라에 대한 조사를 해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귀다'라는 표현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인간과 관계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각 국의 가치관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니

너무 진지하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번 들여다보죠.


대한민국  표현: 사귀다 [sagwida] / 본래 뜻: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
중국  谈恋爱 [ tánliàn'ài ]  / 사랑을 속삭이다, 사랑을 말하다
일본  付き合う [Tsukiau]  / 교제하다, 동행, 행동하다
미국  go out with [goʊ-aʊt-wɪθ], date [deɪt] / 함께 나가다, 날짜
프랑스  sortir avec [sɔʀtiːʀ-avεk] / 함께 나가다
스페인  salir con [säˈliɾ-kon] /  함께 나가다




우리나라부터 가겠습니다.


한국은 보수적이고 관계지향적입니다.

서로의 얼굴이 익고 친해지는 관계를 뜻하는

'사귀다'라는 표현을

'커플이 맺어짐' 이라는의미로 한정시켰습니다.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요.


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우선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교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사람 간의 관계질서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한국에서는

연애를 여러 종류의 인간관계 중 하나로 여깁니다.

따라서 기존의 넓은 의미의 '사귀다'

'매우 사적이고 특별한 사귐'으로 지칭되는 것에

거부감이 적었을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녀 사이에서 '썸 탄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썸'은 아시는 것처럼

'Something'의 줄인 표현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인데요.

이 또한 우리의 관계지향적 사고에서 발상된

재밌는 신조어가 아닐까요.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남녀 간의 사귐을 곧 연애로 인지하는

보수적인 사회문화 배경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해지는 것이

'사귀다'의 본래 정의라면

그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사귄다'는 것은

곧 연인으로서 사귀는 것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남녀 간에는 친구가 없다"의 철학이

단단하게 전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마디로 돌직구입니다.


谈恋爱 [탄리안아이] 말하다/사모하다/사랑하다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합니다.

다른 관계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연애관계만을 위한 표현입니다.

'사랑하다' 그 자체에 포커스 되어 있습니다.

관계에서도 돌아가지 않고 화끈하며 실리적

중국인들의 존재감이 느껴졌습니다.





일본은 관계지향이면서도

남녀에 대한 비대칭적 인식이 드러납니다.

付き合う [츠키아우]의 기본 뜻은

우리나라의 '사귀다'의 본 뜻과 비슷합니다.

한국처럼 관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른 의미로서 함께 사용되고 있는

'동조하다' '동행하다'에 주목해 봅시다.

이끄는 사람따르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여성을 남성의 3보 뒤에서 따라오게 하며

순종적인 여성상과 가부장적 남성상을 중시했던

옛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미국의 경우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먼저 go out with은 말 그대로

'누구누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다'입니다.

연애를 집이나 일터, 학교 등 건물을 벗어나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으로 이해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해

집단에 소속되어 늘 함께 움직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점심을 먹든, 퇴근을 하든, 공부를 하든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한 서양인들에게

굳이 누군가와 함께 나간다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했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date입니다.

date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즐겨 사용되고 있습니다.

(* 다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date를 사귀는 관계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행위로써 사용합니다. 연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는 영어 표현인 "They've been dating for 9 months" 와는 달리 우리는 데이트를 9개월 동안 하지는 않죠.)


date의 가장 심플한 뜻은 '날짜'입니다.

나의 하루 중에서 특정 시간을 할애해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것

연애하는 행위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영미권 사람들에게

연애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함께 쓰고,

공간을 함께 이동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과 같은 유럽 국가들도

영미권의 발상과 비슷합니다.

프랑스 'sortir avec'[서티-아베크]와

스페인 'salir con'[살리르-콘]는

문자 그대로 '함께 나가다'라는 뜻입니다.

이런 행진스러운 표현을

연인들이 사귀는 행위로

간접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6개 국가들의 표현을 알아보니

아시아 3개국, 서부 3개국간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한중일 3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연애를 바라봅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알게 되고 친해지는 뜻을 가진 표현

남녀 간의 연애관계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관계의 출발점

숨김없이 표현했습니다.


한자문화권인 3국 공통으로

순우리말 '사귐'의 한자 표현인 '교제' 가 있습니다.

다양한 관계를 포괄하는 개념인 '교제'

세나라 모두, 딱딱한 어감이지만 '이성교제'와 같이

사랑하는 관계로서 사용되고 있는 점도

저의 어설픈 추론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은

모두 어디론가 나갑니다.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가 몸에 밴 이들이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행동을 하는 것은

곧 연인 같은 특별한 관계를 뜻함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관계 중에서도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특별한 친함입니다.


이외에

각국의 습관과 가치관,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더 나은 표제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사귐'이라는
순수하지만 비이성적인 인간의 감정과 관계로

사용되는 말을 국가별 또는 동서양 문화권으로

비교해 봄으로써 한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형성해 온 공통의 사회문화

드러내 보는 시도였습니다.


맥락은 다르고

표현방식도 제각각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

어느 나라나 같겠지요.



사랑합시다



[inspired by 이어령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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