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조의 호소 Sep 21. 2018

깨어있고 싶지만 변화를 거부한다

지루함과 새로움 사이에는 인력이 있다

 내 동생은 도전적이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주말만 되면 나들이를 가자며 나를 꼬드긴다. 집순이인 나는 10번 중 7번은 거절을 한다. 동생이 이거 하자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집에 있어야만 하는 핑계를 늘어놓는다. 마지못해 끌려 나갈 때면 신기하게도 “나오길 잘했다”며 만족을 하고 돌아온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게 싫었다기보다는 시도 자체를 두려워했던 거다.


 사실 나의 뇌는 지루한 걸 못 견딘다. 뻔하거나 상투적인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진득하니 좋아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에 확 꽂혀 미친 듯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을 하다가도, 오래지 않아 금방 식어 버린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기질까지 있어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웬만한 사람에게 금세 호감을 가졌다가 쉽게 질리기도 한다.


 반면 내 몸은 변화를 꺼린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푹 움츠러들고, 되도록이면 안전한 상황을 유지하려 한다. 미적지근한 관성이 거센 변화의 바람을 밀어내는 형국이다. 지루함도 싫고 변화도 거부하니, 정말이지 골치 아픈 체질이다. 나처럼 ‘고여 있는 물’은 인생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쭉쭉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으면서도 제자리걸음만 하며 똑같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는 게으른 생을 살다 죽은 영혼들이 벌을 받는 ‘나태지옥’이 나온다. 그 지옥은 거대한 원형으로 생겼는데, 한 번 그 안에 들어가면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달려야만 한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거대한 기둥에 깔려 죽거나 식인 물고기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를 이보다 더한 지옥에 가둬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나도 치열하게 흐르면서 살았었다. 멋진 광고쟁이가 되어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광고학과로 편입을 하고, 밤을 새워 공모전에도 출품해 보고, 졸업 후엔 광고회사를 다니며 신나게 아이디어를 짰다. 샤워할 때도, 지하철을 탈 때에도 온통 머릿속엔 광고 생각뿐이었다. 적어도 이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늘 깨어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지금의 나처럼 ‘고여 있는 사람’을 혐오했다. 자기 발전도 없고, 아무런 야망도 욕심도 없는 사람을 보면, ‘무기력 병’이 옮겨 붙진 않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다 광고를 그만두게 되었다. 열심히 몰던 양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텅 빈 시간 속에서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진정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오랜 되새김 끝에, 어릴 적부터 꿈꿨던 소설작가의 꿈을 되찾기로 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그런 글.


 좋은 글은 틀을 깰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 먼저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루함을 밀어내는 힘으로 변화를 끌어당겨 보련다. 그 힘으로 나를 가두고 있는 작은 세계부터 망치질해볼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먹곤 있지만 성숙하긴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