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지팡이를 든 요정이 나타날 것만 같은 동화 속 마을 파샤바 계곡
파샤바 계곡 Paşabağ Vadisi 요정의 굴뚝(파샤바라르 박물관과 유적지)
오르타히사르 Ortahisar에서 출발한 지프사파리 투어는 괴레메 국립역사공원, 로즈밸리 gül vadisi, 연인들의 계곡 Aşıklar Vadisi 등 괴레메와 차우신 Çavuşin 지역의 숨은 골짜기들을 약 두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여행 방법 중 하나였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기사들이 투어 가이드를 맡았고, 그들과 함께 와인 한 잔으로 축배를 들며 지프사파리 투어를 마무리했다. 이후 그들은 다음 일정인 파샤바 계곡 Paşabağ Vadisi, 요정의 굴뚝(파샤바라르 박물관과 유적지 Paşabağları Müze ve Örenyeri)을 향해 길을 떠났다.
Paşabağları Müze ve Örenyeri 중 파샤 Paşa는 정치, 군사적인 고위 관료나 장군에게 수여되는 호칭이다. 영화 ‘오스만 제국의 꿈’을 보면 고위 관료를 부를 때 ‘XX파샤’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유럽의 백작, 공작 등과 같은 오스만제국의 작위이다. bağ은 포도밭, Müze 박물관, ve 접속사 그리고, Örenyeri 고고학 유적지를 의미하는 튀르키예 말이다.
오후 3시 30분, 그들은 차우신 지역의 파샤바 계곡에 도착했다. 유료입장이기 때문에 별도의 개찰 형태의 입구를 통하여 입장해야 했고, 오후 3시가 넘어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입구를 지나자 언뜻 보기엔 카파도키아의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으나, 지금까지 본 지형과는 미묘하게 다른 요정의 굴뚝 모양의 암주(Hoodoo)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곳을 굳이 ‘유적지(Örenyeri)’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지질학적 형성 과정뿐만 아니라, 초대 기독교인, 이슬람교도들까지 이곳에 동굴 주택, 교회, 모스크 등을 짓고 생활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파샤바 계곡의 요정 굴뚝은 Aktepe 지역 가파른 언덕을 따라 유적지를 이루고 있는 젤베 야외박물관 Zelve Açık Hava Müzesi 세 개의 계곡 중 하나였다. 과거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인들의 피난처이자 정착지였던 젤베 지역의 계곡에는 성상 파괴 이전의 교회 모습인 발리클리 킬리세 Balikli Kilise (Fish 물고기), 위줌뤼 킬리세 Üzümlü Kilise (Grapes 포도), 지금은 완전히 무너진 게이클리 킬리세 Geyikli Kilise (Deer church 사슴 교회)와 곡물을 가공하는 방앗간, 와인을 만들고 저장하는 와이너리 등의 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마을로 광장과 이슬람 모스크 Zelve Camii,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인 젤베 수도원 단지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 파샤바 계곡엔 버섯 모양의 상단부 암석이 세 개 달린 요정 굴뚝 중 하나에 기적을 행한 뒤 세상의 이목을 피해 이곳에 은거하며 수도 생활을 한 성 시므온의 이름으로 지어진 예배당이 그대로 남아있다.
카파도키아 요정의 굴뚝 지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대개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화산재가 덮여 이루어진 응회암과 용암이 쌓인 카파도키아의 산은 일 년에 약 7㎝가량 깎이며 2단계 형태인 봉우리가 되고 이후 풍화와 침식이 이루어지며 3단계인 마치 모자를 쓴 것 같은 버섯바위 형태가 이루어져 요정의 굴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후 마지막 4단계는 응회암이 세월이 지나며 풍화되어 머리에 이고 있는 버섯 모양의 암석이 떨어져 나가고 일 년에 27㎝씩 깎이고 깎여 땅 또는 땅이 되기 직전의 형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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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바 계곡으로 들어서자 요정의 굴뚝이 형성되는 지질의 침식과 풍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완만한 언덕과 산, 버섯 모양의 바위, 그리고 상단부의 버섯 모양 암석이 떨어진 형태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동화 같은 풍경이 여행자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어린 시절 특별한 기억이 떠 올랐다. 어렸을 적 그림 같은 시골마을에서 그야말로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취학 전 1년간 꿈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어린아이 조막손을 펴 놓은 것 같은 산수가 어우러져 그려내는 우리네 산하와 같은 풍경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파샤바 계곡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진한 갈색을 띤 버섯 모양의 바위가 손주들 군것질거리인 초코송이라는 과자와 너무나도 많이 닮았다.
단층 형태가 확연히 보이는 언덕과 산을 올려다보니 현재도 풍화와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빗물이 흘러내린 자리는 계곡의 형태로 침식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고 계곡 아래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드러나기 시작한 작은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요정의 굴뚝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봉긋하게 솟은 산 아래에 빼곡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응회암 바위기둥이 마치 식물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저 언덕과 산도 또 다른 요정의 굴뚝으로 가득 찰 것만 같았다.
3백만 년 전 신생대의 격렬한 화산 활동이 빚어낸 파샤바 계곡은 마치 거대한 자연의 조각 작품 전시장과 같았다. 화산재가 쌓이고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은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갖가지 형태의 요정의 굴뚝으로 변모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마치 신비로운 요정의 나라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저마다 카메라에 이 특별한 순간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파샤바 계곡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넘어,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이 이곳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벨기에 만화 '스머프'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화 속 스머프들의 집을 닮은 요정의 굴뚝들 사이를 걸으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파샤바 계곡에서는 요정의 굴뚝 사이로 튀르키예 기마경찰인 잔드르마(Jandarma)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물개와 오리를 닮은 바위 앞에는 두 명의 기마경찰이 마치 정렬하듯 서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고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기마경찰들은 친절하게 다가오라며 관광객들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뾰족한 기둥 위에는 마치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듯한 요정의 굴뚝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아래로는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는 사람들의 그림자와 함께 독수리처럼 우뚝 선 요정의 굴뚝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요정의 굴뚝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비슷한 굴뚝들이 여럿 보였는데, 그중 하나에는 성 시므온의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응회암 위에 크고 작은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빼곡히 늘어선 파샤바 계곡은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았고, 그들은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산책로를 따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곳곳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은 동굴들이 간헐적으로 보였다. 골짜기 사이로 솟은 요정의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손톱만 한 크기로 보였다. 둥근 평면 형태의 침식지형 위로 올라간 사람들 역시 이 이색적인 풍경에 완전히 매료된 듯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인공적으로 꾸며진 여행지나 인기 명소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모두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뭔가를 인증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맞춤형 여행지들 말이다. 하지만 파샤바 계곡의 요정의 굴뚝은 그런 장소들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히 다른 성격의 여행지이다. 이곳에서는 그저 파란 하늘을 베개 삼아 눕고 싶을 만큼 자연의 아름다움에 몸을 맡길 수 있다. 끝없이 푸른 하늘과 맞닿은 언덕 위에 올라 파샤바 계곡을 내려다보고, 요정의 굴뚝 사이를 걷다 보면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멀리 낮은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을 내려다볼 때는, 마치 동화 속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흐르면 상단부가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요정의 굴뚝, 두세 개의 굴뚝이 서로 마주 보거나 연결된 기묘한 버섯 바위들로 가득한 이 골짜기를 걷다 보면, 누구나 어릴 적 특별했던 기억 한 조각쯤은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파샤바 계곡은 그렇게 사람들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특별한 장소다.
눈이 많이 내리면 소나무 가지가 부러진다. 세월이 지나고 풍화와 침식이 거듭되면 언젠가 요정의 굴뚝은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풍화되지 않은 조금 더 단단한 지형들이 드러날 것이고 또 새로운 형태의 요정의 굴뚝이 생겨날 것이다. 단순하지만 한치의 다름도 없는 자연의 이치와 자연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인간은 그저 아주 잠시 지구에 머물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요정의 굴뚝이 형성되기까지 몇 백 만년의 시간 중 필자를 포함하여 모든 여행자들은 여름 한 철 메뚜기처럼 그저 아주 잠시 찰나적으로 다녀가는 셈이다. 이 골짜기에 형성된 모든 것이 그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알조차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오랜 세월 갖은 비바람으로 깎이고 또 깎여 만들어진 경이로운 자연, 파샤바 계곡 요정의 굴뚝이다.
열기구 기념품들이 가득 매달린 출구 상점을 지나며, 마치 마술 지팡이를 든 요정이 나타날 것만 같은 동화 속 마을을 잠시 떠난 그들은 드디어 현실 세계로 돌아와 파샤바 계곡의 요정의 굴뚝을 뒤로했다. 이국 땅에서 연말을 맞이한 그들은 괴레메 시내에서 간단히 안주와 맥주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는 연말을 기념해 특별한 만찬을 준비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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