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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Nov 26. 2024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Istanbul arkeoloji muzeleri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ahmet Camii, 아야 소피아 모스크 Ayasofya Camii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스탄불 역사지구에 포함되어 있는 과거 오스만 제국의 유적 톱카프 궁전, 테오도시우스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의 첫 번째 안뜰을 둘러보고 두 번째 안뜰로 들어가기 전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잠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서 둘러본 아나톨리아 반도에 대하여 잠시 생각에 잠긴다.


1300년경 아나톨리아 beyliks의 대략적인 지도 / CC BY-SA 3.0 (creativecommons.org)


아나톨리아 반도는 세계사적으로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지역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동서양의 문명과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한 뜨거운 땅이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비티니아(Bithynía), 지금의 튀르키예 북서부 마르마라 해, 보스포러스 해협 및 흑해에 인접해 있는 소아시아 내륙의 조그만 땅을 다스리는 베이 공국(Osmanlı Beyliği)으로 출발한 오스만 제국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며, 세계사적으로도 중세와 근세사를 구분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장한 ‘오스만 제국의 꿈’* 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북부 지역까지 지배하며 명실상부한 지중해 지역의 강자로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에게해 문명 등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과 세력 간 충돌로 세계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그릇과도 같은 아나톨리아 반도, 유럽 땅 동쪽 끝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오랜 역사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Fatih Sultan Mehmed’s Land Transport of The Ottoman Navy from Galata into Golden Horn by Fausto Zonaro (1854–1929). / File:Kusatma Zonaro.jpg - Wikimedia Commons



* Osman's Dream

Main article: Osman's Dream

Osman I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a local religious leader of dervishes named Sheikh Edebali, whose daughter he married. A story emerged among later Ottoman writers to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men, in which Osman had a dream while staying in the Sheikh's house. The story appears in the late-fifteenth-century chronicle of Aşıkpaşazade as follows:


He saw that a moon arose from the holy man's breast and came to sink in his own breast. A tree then sprouted from his navel and its shade compassed the world. Beneath this shade there were mountains, and streams flowed forth from the foot of each mountain. Some people drank from these running waters, others watered gardens, while yet others caused fountains to flow. When Osman awoke he told the story to the holy man, who said 'Osman, my son, congratulations, for God has given the imperial office to you and your descendants and my daughter Malhun shall be your wife.


The dream became an important foundational myth for the empire, imbuing the House of Osman with God-given authority over the earth and providing its fifteenth-century audience with an explanation for Ottoman success. The dream story may also have served as a form of compact: just as God promised to provide Osman and his descendants with sovereignty, it was also implicit that it was the duty of Osman to provide his subjects with prosperity. Istanbul arkeoloji muzeleri


오스만의 꿈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만의 꿈이다.

Osman I 세는 셰이크 에데발리(Sheikh Edebali)라는 지역 종교 지도자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며 그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오스만은 셰이크의 집에 머무는 동안 꿈을 꾸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후기 오스만 작가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15세기 후반 Aşıkpaşazade 연대기에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그는 거룩한 사람의 가슴에서 달이 떠올라 자신의 가슴에 가라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배꼽에서 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 그 그늘이 세상을 뒤덮었다. 이 그늘 아래에는 산들이 있었고, 각 산기슭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흐르는 물에서 물을 마셨고, 다른 사람들은 정원에 물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샘을 흐르게 했습니다. 오스만이 깨어났을 때 그는 그 이야기를 거룩한 사람에게 들려주었고, 그는 '내 아들 오스만, 축하한다, 신이 너와 네 후손에게 황실의 직위를 주셨고 내 딸 Malhun이 네 아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꿈은 제국의 중요한 기초 신화가 되었으며, 오스만 가문에 신이 주신 땅의 권위를 불어넣고 15세기 청중에게 오스만 제국의 성공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습니다. 꿈 이야기는 또한 콤팩트의 한 형태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신이 오스만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그의 신하들에게 번영을 제공하는 것이 오스만의 의무라는 것도 암시되어 있었다. 이스탄불 아르케올로지 무젤레리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Osman_I]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고대 동양 작품 박물관 Ancient Oriental Works,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 Tiled Kiosk Museum 등 세 개의 주요 단위로 구성된 복합 박물관이다. 튀르키예 최초의 박물관인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엔 고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수메르인, 바빌론인, 아시리아인 등) 문명의 유적은 물론이고 오스만 제국, 아라비아반도 및 소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 등 백만 점의 유물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 유물 수집은 정복자 메흐메트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869년 제국 박물관(Müze-i Hümayun)이 설립되면서 오늘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토대가 이루어진다. 당시 제국 박물관(Müze-i Hümayun)은 예니체리의 무기 창고 및 전리품과 황실 유물을 소장하였던 아야 이리네 (agia Irene)의 수집품을 토대로 설립되었으며, 메흐메트의 통치 기간에 지어진 타일 키오스크 Tiled Kiosk Museum는 1880년 복원을 마치고 개장하여 오늘에 이르는 박물관이다.


Bust and memorial plaque to Osman Hamdi Bey in the foyer of the main building / Public Domain 


오스만 제국의 고고학자이며 박물관장인 오스만 함디 베이 (Osman Hamdi Bey)는 1887~1888년 Mount Nemrud , Myrina, Kyme, other Alolia Necropolises and Lagina Hekate Temple 그리고 Sayda(Sidon,)에서 발굴 작업을 수행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대리석 석관 등 수많은 석관과 유물을 가지고 돌아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하는 고고학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다.



오스만 함디 베이 Osman Hamdi Bey가 수행한 Sidon King Necropolis 발굴에서 이스탄불로 가져온 알렉산더 석관, 우는 여자 모습이 부조된 관(Sarcophagus of the Mourning Women)리키아 석관(Lycian sarcophagus of Sidon Lycia) 및 타브니트 석관(Tabnit sarcophagus)과 같은 유물을 전시하기 위하여 타일 키오스크 건너편에 지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건축가 Alexandre Vallaury의 설계로 지어졌으며당시 오스만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게 지어진 신고전주의 건축양식(neo-classical architecture)의 건축물이다

고고학 박물관 페디먼트(pediment)**에는 튀르키예어로 'Asar-ı Atika Museum(고대 작품 박물관)’이라 쓰여 있는데술탄 압둘 하미드 2(Sultan II. Aldulhamid.)의 서명(Tuğra, 모든 공식 문서와 서신에 부착된술탄의 붓글씨 또는 인장)이다.


** 페디먼트(pediment)

기둥으로 지지되는 수평으로 가로지른 상인방과 결합되는 삼각형태의 고전 양식 건축 구조물, 엔타블러처(Entablature). 파르테논 신전과 프랑스 파리의 Sainte-Marie-Madeleine 교회는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의 엔타블러처임.




알렉산더 석관(Alexander Sarcophagus, Büyük İskender Lahdi)



알렉산더 석관(Alexander Sarcophagus, Büyük İskender Lahdi)은 레바논 시돈 근처의 묘지에서 발굴된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시대(Hellenistic period)의 석관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저부조 조각으로 표현한 석관이다. 알렉산더가 이수스 전투(Battle of Issus (333 BC)) 직후 임명한 시돈 왕 압달로니무스 (Abdalonymus)는 기원전 311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죽기 전에 미리 준비되었을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이 석관은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 아니라 압달로니무스의 관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는 것이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학설이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측면의 고고학적, 역사적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 석관이다.



슬픈 표정의 여인들이 부조된 석관(Sarcophagus of the Mourning Women)



석관에 부조된 여인들의 표정이 상당한 슬픔을 묘사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 여인의 복장을 한 18명의 서로 다른 슬픈 표정의 여인들은 아마도 관에 안장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인 듯하다.     




타브니트 석관(Tabnit sarcophagus)


Skeleton of king Tabnit / File:Osman Hamdi Bey. Squelette du roi Tabuit. Paris, 1892.jpg - Wikimedia Commons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타브니트 Tabnit 석관은 페니키아 시돈왕 타브니트 1세 (기원전 549-539년 재위)의 석관으로, 이집트 상형 문자와 페니키아 문자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발굴 당시 방부액에 뜬 상태의 거의 완벽한 미라로 발견된다.




리키아 석관(Lycian sarcophagus of Sidon Lycia)


Lycian sarcophagus at the 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s                            

Creative Commons — CC0 1.0 Universal


리키아 무덤의 모양과 비슷한 리키아 석관은 기원전 430~420년에 만들어 진것으로 추정되는 석관으로, 멧돼지 사냥과 사자 사냥, 그리고 켄타우로스와 스핑크스와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이 외에 석관과 석관의 파편, 묘비, 조각상, 두상 등 전시유물들을 잠시 이곳으로 옮겨 왔으니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란다. 


박물관 전시 사진자료를 첨부

기원전 550년에 키루스 대왕이 세운 고대 이란 제국으로,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으로도 알려져 있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유물
사자상
고대 그리스 도시 키지코스, 오늘날 발리케시르주 미시아(Mysia)에서 발견된 기원전 6세기 전차
이스탄불의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있는 세 개의 Daskyleion 비석 중 하나, 1958년 튀르키예 북서부의 Dascylium에서 발견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Okeannis)
asclepius와 hygieia의 대리석 부조, 기원전 5세기 후반
수확과 농업의 올림포스 여신 데메테르(Demeter) 여신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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