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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노트 06. “보통 날, 특별한 식사”

이제 시작이네. 힘내게!

by 사무엘



서울 외곽,

봄바람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조용한 식당.

햇살은 부드럽게 식탁 위를 쓰다듬고,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전직 사장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기에도 어색함 없는 관계.

말 한마디에 시간의 간극이 스르르 사라졌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때로는 나무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야.”


그분의 말은 바람처럼 가볍고, 물처럼 스며들었다.

위로 같았지만 위로를 넘었고,

격려 같았지만 오히려 신뢰와 확신에 가까웠다.

말 한 줄이 어깨를 내려앉게도, 다시 일으켜 세우게도 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분은 내게 말했다.

“1년쯤은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지 않겠나.”

박사 논문을 마무리해보라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앞에 펼쳐질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내 커리어를 이렇게 정리해주셨다.

“자네는 노사관계, 리더십, 조직문화 같은 회사의 핵심을 누구보다 깊이 다뤄왔고,

그걸 자료화하고 성찰해온 보기 드문 인재라네.

박사 학위는 자네에게 마지막 퍼즐 조각이야.

그 조각이 맞춰지면, 자네는 날개를 단 셈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내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눈을 떴다.


“자네는 아직 50대 중반이잖나.

지금이야말로 그라운드로 다시 들어갈 기회일 수 있네.

경기장에 재입장한 선수처럼 말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선다고 믿었던 무대는 끝이 아니라

막이 오르기 전, 숨을 고르는 웅크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봄바람을 맞으며 느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마치 누군가 내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말해준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자네가 사회에 펼칠 것들이, 참 고맙고 기대되는 일이야.”

보통의 날을 특별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오래도록 기억될 한 끼였다.

그날의 식탁 위엔 음식보다 더 많은 말들이 놓여 있었고,

그 말들이 내 인생의 다음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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