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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pr 29. 2020

영영 끝나버린 나에 대한 연민

4월의 단어 『옛사랑』, 공교롭게도님의 글





4월, 공교롭게도님의 글쓰기


옛사랑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제목이 이문세의 '옛사랑' 그리고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이유의 목소리로 이문세의 '옛사랑'을 듣고 있다. 이문세의 노래와 김광규의 시 모두 옛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결이 약간 다르다.



이문세의 '옛사랑'은 첫사랑과도 일정 부분 공유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김광규의 시가 전하는 옛사랑에 마음이 흠칫 내려앉는다. 어쩌면 옛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전혀 모를 고등학생 때 김광규의 시를 먼저 배웠기 때문에 김광규의 시에 무겁게 내려앉은 정서를 옛사랑이라고 지레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옛사랑을 글로 배운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옛사랑이 무엇인지 알 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나도 옛사랑을 절절하게 곱씹으며 고개를 떨굴 지도 모르겠다.



생각건대 옛사랑은 이미 실패한 사랑이다. 그리고 '옛-'이라는 접두사 때문인지 특정 시점 이전의 전부를 가리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말인즉슨, '옛-'이 수식하는 그 '사랑'의 대상은 그 특정 시점 이후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한다.



선언의 이면에는 그 특정 시점 이후 그 사랑은 이미 끝난 것이고 다시 시작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단절과 체념이 자리한다. 그러니까 옛사랑이란 현재에 이미 사라져버린 어떤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조차 없다. 이에 비해 첫사랑은 반복되는 사랑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다.



여러 개별적인 사랑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필 첫번째를 첫사랑이라고 하고 그 뒤에 첫사랑과 나란히 할만한 것들이 두번째, 세번째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이후의 사랑에 견줘서 첫사랑이 유독 애틋한 이유가 그 애정의 깊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먼저 맞는 매가 아플 뿐이다.



그리고 옛사랑은 언제나 최소 중년 이상의 1인칭의 목소리로 표현되며, 항상 현재에 서서 과거의 특정 시점을 바라볼 때만 가능한 표현이다.



지금 옛사랑을 추억하면 남는 것이라곤 과거의 순수함과 대비되는 시궁창같은 현재의 초라함뿐이다. 아름답던 옛사랑을 떠올리지만 이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 회한을 느끼는 동시에 속물적인 합리화를 한다.



바꿔말해, 옛사랑은 나의 노화를 새삼스레 환기한다. 하지만 첫사랑의 회상은 딱히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20대에 떠올리든 40대에 떠올리든 70대에 떠올리든 첫사랑의 그 시절은 일종의 통과의례로 기억되며, 그 때의 서투름과 풋풋함이 선연하게 다가온다. 그러기에 옛사랑이 전하는 감정에 비해 훨씬 밝고 가볍다.




지난 날의 무르익지 못했던 사랑을 이제는 웃으면서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떳떳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첫사랑은 나의 성장을 반영한다.




기실 옛사랑은 첫사랑과는 애시당초 결이 다른 감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첫사랑보다 훨씬 복잡하고 착잡하고 답답한 감정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첫사랑은 모든 사람이 하나씩은 품고 있겠지만, 옛사랑은 일생토록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옛사랑이란 누군가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나', 치열하고 순수하게 살았던 '나'를 향한 사랑에 추억이라는 보정까지 덧입혀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멋있던 '나'를 훈장으로 여기지 못하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나'를 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로 퇴색해간다. 그래도 변해버린 그들을 추잡스럽다고 마냥 욕할 일은 아니다. 과거의 '나'를 내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굴 줄 아는 사람은 적어도 염치라도 있는 사람이다. 옛사랑조차 잊어버린 자들은 얼마나 뻔뻔한 사람들일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지. 십중팔구 내가 '그대'에게 차였을 것이다.



설령 차이고 나서 어렵사리 이어진다한들 그것은 아마 '그대'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또한 변하기 때문에 첫사랑은 역시나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이처럼 첫사랑은 나와 '그대' 사이 평면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 그 중에도 빛났던 순간의 갈무리이다.



그런데 옛사랑은 나와 '나' 사이, 나와 사회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염치와 몰염치 사이, 그러니까 나라는 인격과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 길항의 총체를 반추하면서 느끼는 겸연쩍음이다. 인생의 완숙기에 이르러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문득 떠오르는 부끄러움. 이것 또한 어른의 조건일 것이다.



나도 아마 옛사랑을 입에 올릴 때쯤이 되면, 철지난 첫사랑을 운운하며 웃고 떠드는 이보다 완숙한 옛사랑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이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다음주에 큰 선거가 있는데, 몇몇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역겨운 구석이 있다. 그들은 정말 옛사랑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잊기 위해 부러 크게 지껄여대는 것일까. 다음주의 선거로 그런 자들이 일소되기를 바란다. 



 




Written By. 공교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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