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한 단어 『비』, 김심슨님의 글
온종일 비가 내린 덕분에 방에 틀어박혀 권태로운 하루를 보냈다. 빈둥대는 와중에 최근 가입한 글쓰기 모임에서 ‘비’를 가지고 글을 써보자고 연락이 왔다. ‘비’를 가지고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영감 좀 얻어 볼까 싶어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봤지만 영 허사였다. 난 역시 글 쓰는 재주는 없다 싶어 소재를 찾아 옛 노트를 뒤적거렸더니, 기가 막힌 시 한 수가 눈에 띄었다. 19세기 서헌순이 쓴 <우영(偶詠, 우연히 읊다)>이었다.
山窓盡日抱書眠
石鼎猶留煮茗烟
廉外忽聽微雨響
滿塘荷葉碧田田
온종일 산창에서 책을 안고 자다 깨니
솥에는 아직도 차 끓인 김이 서려 있다.
발 너머 문득 들리는 가랑비 소리,
연못 가득한 연잎이 푸르디 푸르구나.
시를 보니 ‘근대 시’를 가르쳤던 국문과 교수가 생각났다. 부전공으로 신청한 국문과 첫 수업은 ‘근대 시’. <우영>은 ‘근대 시’를 담당했던 교수가 알려준 것이다. 교수는 S대에서 눈 밖에 나 우리 학교로 왔다던 소문을 증명하듯 아주 괴팍했다. 시를 알려준 날도 <우영>을 칠판에 휘갈겨 쓰며, 국문학도라면 시 한 수는 외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성질을 부렸다.
‘근대 시’ 시간인데 조선 시대 한시를 쓰라네. 칠판을 보며 멍하니 있는데 당장 노트에 받아 적으라고 교수가 노성을 질러, 부랴부랴 시를 노트에 썼다. 교수는 시 하나 못 외우는 것들은 제발 어디 가서 국문과 학생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잔소리 퍼붓고, 주위 애들은 잔소리가 익숙한지 열심히 필기하고, 나는 왜 이 수업을 신청했을까 후회했던 것이 세상에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때는 받아 적느라 몰랐는데 비 오는 날 <우영>을 다시 읽으니 제법 운치가 있다. 어차피 비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고 그 김에 게으름 좀 피우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비 오는 날 방에 갇힌 19세기 서헌순과 지금의 내가 같은 권태를 느낀다.
찾아보니 서헌순은 판서를 역임했다 하니, 나보다 바쁘면 바빴지 덜 바쁘진 않았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오는 날 방에서 한가롭게 쉬는 게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좋아서 시 한 수 적어놓고 짐짓 우연히 지은 척 <우연히 읊조리다>라고 제목 짓지 않았을지? 혼자 별 생각을 다 한다.
괴팍한 교수는 우리에게 <우영>을 알려주며, 시란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란 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니들이 국문학도면 서점 가서 시집 한 권 사 읽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핏대 세우던 교수. 전공 교수보다 그가 뇌리에 더 남아 있다.
그의 말대로 시집을 사서 읽었다면 옛 노트를 뒤적이는 일 없이 ‘비’에 대한 글을 술술 쓸 수 있었을까. 글 써보겠다고 노트 뒤적이다가 대학 시절 교수까지 생각이 뻗치는 게, 새삼 웃기고 어이없다. 빗소리 들으며 기분 좋게 늘어지니, 때로는 권태로운 날도 나쁘지 않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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